콜센터 알림 소리에 잠을 깼더니 책상 앞이다. 어제도 소설을 쓰다가 그냥 잠든 것이다. 비활성 메모리를 지우기 위해 하루에 20분은 자야한다고 들었지만 지호는 무시하고 있었다.
‘죽으면 영원히 자는 건데’
침대는 늘 정리된 상태, 처음 며칠을 빼고 눕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다보면 하루 이틀 지나 저절로 잠들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거나 잠이 오는 방식이 아니라 어느 순간 정신을 잃는 방식이다. 꼭 프로포폴로 마취당하는 느낌, 주사기의 우윳빛 액체가 몸속으로 주입되는 것을 보고 있다가 3초도 되지 않아 ‘툭’ 의식이 끊긴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꿈을 꾼다. 꿈은 언제나처럼 제 맘대로여서 해석도 불가능하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꿈을 꿨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느낌이 기억난다. 나쁜 꿈,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
콜센터 알림은 아웃라인 면회 요청이었다. 메시지를 읽어보니 ‘보호자 요청’이다. 보호자면 박민혁,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왜 지호의 보호자를 자청했는지, 뭘 원하는지도 알 수 없다. 지현우는 보호자 전화를 받지 말라고 당부 했다. ‘그건 또 왜?’
지호는 전화기 알림창을 보면서 고민했다. 연결해서,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면 박민혁이 말해줄까? 저번처럼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거면 연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뭘 원하는 거지?’
살아있을 때라면 당연히 궁금하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떠나온 세상이다. 그쪽 세계와 연결되고 싶지 않다. 지금 그녀와 연결돼 있는 유일한 현실의 끈은 지현우일뿐 나머지는 꿈보다 더 허망한 것들이다.
지호는 콜센터 알림창을 지웠다.
‘뭘 할까?’
노트북을 덮고 집안을 서성거렸다. 극도로 단순화된 하루, 그녀의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소설 쓰거나 산책하거나 영화 보거나 밥 먹기, 끝.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을 똑같이 한번 더 살아봐요. 그것도 살아있을 때는 절대 하지 못할 일이니.’
박장우가 한 얘기다. 그러나 지호에게 어제의 개념이 모호하다. 뭘 할 때마다 시계를 본 것도 아니어서 어제 이 시간에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하늘을 보고 시간과 날씨를 가늠한다.
살짝 눈을 감고 어제를 기억한다. 그 어제란 지난번 눈 뜨고 처음 했던 것이다. ‘커피를 사러 갔어’ 그녀는 집을 나갔다.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12월에 비, 어제와 같다. 어제 눈 뜨고 커피 사러 갈 때에도 비가 왔었다. 우산을 찾으러 집에 들어갔다. 우산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어제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우산 찾는 척하며 신발장을 뒤졌다. 바보 같으면서 재밌다.
손바닥에 비를 적셔보니 꽤 차다. 옷장을 뒤져 어제 입었던 재킷을 꺼내 입고, 비를 가려줄 만한 모자를 찾았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커피 파는 곳까지 걸었다. 조금 춥지만 센서티브를 낮추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코끝으로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비가 오니 솜사탕 냄새는 옅은 단감 냄새로 바뀌었다. 포에버월드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힘없이 팔을 찰랑거리며 손등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을 즐겼다. 자유롭다. 죽어서 자유롭다. 진정한 영적 자유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다르다. 어제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일회용 커피컵의 뚜껑을 열고 커피향을 맡았다. 이건 어제와 같다. 커피 크레마의 고소한 향이 한결같다.
그때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려온 승용차가 지호 옆을 지나쳐가다 속도를 늦췄다.
박장우는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네트워크에서는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장소를 지호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곳은 차가 필요하기에 처음으로 승용차를 몰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비가 온다. 현실세계와 달리 포에버월드는 비 온다고 차가 막히지 않았다. 차를 가진 거주민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오히려 승용차 타이어가 도로를 가르며 빗물을 튕겨내는 소리가 경쾌하다. 창문을 조금 내렸다. 빗물이 스며든다. 조금 더 내렸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힌다. 차가운데도 상쾌하다. 팔을 내밀어 떨어지는 비를 맞았다. 그러다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비는 폭신한 눈으로 바뀌고, 눈을 배경으로 윤지호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쯤 되면 운명 아닌가?’
“작가선생~”
그녀가 돌아본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그녀가 돌아보며 던져주는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살아있을 때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시후씨다. 어디 가세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당신한테 가는 중입니다. 어서 타요.”
지호는 기분 좋게 박장우의 옆좌석에 앉았다.
“시후씨가 시킨 대로 어제와 똑같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시후씨 때문에 다 틀렸어요. 이렇게 나타나면 어떡해요?”
“내탓이라 이거요? 그럼 내가 책임지지.”
박장우는 서서히 차의 속도를 올리며 말했다. 지호는 안전벨트를 하려다 말고 물었다.
“벨트 안 해도 되죠? 또 죽을 것도 아니고.”
듣고 보니 그렇다. 안전벨트도 습관일 뿐이다. 살아있을 때의 습관.
“하긴 속도위반한다고 잡을 경찰도 없고, 내 안전벨트도 풀어주겠소?”
그냥 던진 말인데 지호는 박장우의 오른쪽 허벅지 옆으로 손을 넣어 딸칵하며 안전벨트를 해제했다. 그녀의 손이 닿았다. 두근.
“그런데 우리 어디 가요?”
“살아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 이 세상의 끝.”
“정말 그런 곳이 있어요? 어디에요?”
“가보면 압니다.”
흥분된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차가 멈췄다. 짙은 안개가 끼어있고 눈은 그쳤다. 안개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차에서 내리자 5미터쯤 앞에 진입통제 표지판과 함께 도로가 끝났다. 표지판 뒤로 무엇이 있나 자세히 살펴보니 2차선 도로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어떡해요?”
“걸어 들어가면 됩니다. 이쪽으로 와요.”
박장우가 앞장서며 윤지호를 이끌었다. 어찌나 안개가 자욱한지 몇 미터만 떨어져도 앞이 안 보일 것 같다. 박장우는 차단벽 옆에 난 틈으로 몸을 옆으로 해서 안으로 스윽 들어갔다. 윤지호도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십여 미터를 걸었더니 거짓말처럼 2차선 도로는 사라지고 없었다. 게다가 온통 안개로 가득해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다.
“저 뒤를 봐요.”
박장우가 걸어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그들이 타고 온 자동차 안전등이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돌아갈 때는 저 방향으로 가야 해요. 안 그럼 여기서 미아가 되는 겁니다. 혹시 나와 떨어지더라도 저것만 보면 돌아갈 수 있어요. 알았죠?”
얼마 오지 않은 것 같은데 꽤 멀어 보인다. 지호는 박장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떨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럼 다행이고.”
박장우는 지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박장우는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계속 걸었다. 30분 이상을 걸었는데 신기하게도 멀리 깜빡이는 자동차 안전등은 그대로였다.
“얼마나 왔을까요?”
지호는 불안하게 돌아갈 방향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는 그런 거리 개념이 없는 곳 같아요. 이제 그만 가도 될 것 같소. 자, 주변을 보시오.”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봤다. 모두 똑같다. 처음에 안개라고 생각했던 자욱함은 안개가 아니었다. 그냥 온통 하얀색으로 치장된 백색공간.
“와, 진짜 신기해요. 하늘도 바닥도 전부 하얀색이에요.”
지호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어봤다. 스폰지 같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이곳은 포에버월드에서 개발 중인 곳 같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고.”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어요?”
“4년은 의외로 긴 시간이더군. 지루해서 별짓 다 하다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차를 달렸더니 이런 곳에 도착했지 뭐요. 처음에는 좀 무서웠지만, 까짓 한번 더 죽기밖에 더하겠소? 하하하.”
“그렇네요. 우린 정말 두려울 게 없어요.”
지호는 깨달았다며 갑자기 손을 놓고 총총 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잠깐!”
지난번 블타바 강과 마찬가지로 지호는 말릴 새도 없이 백색 속으로 사라졌다.
“작가선생! 지호씨! 윤지호!”
불러도 대답없다. 박장우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스템 관리자가 홈타운으로 돌려놓나?’
사방이 하얗게 똑같은데 찾으러 다니는 건 의미 없었다. 박장우는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지금쯤은 윤지호도 길을 잃고 당황하고 있을 것이었다. 제발 그녀가 너무 무서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말대로 여기서 죽을 염려는 없지 않은가?
사방이 하얀색뿐이니 시간 감각도 사라졌다. 10분쯤 지난 것 같기도 하고, 1시간이 넘은 것 같기도 했다. 지호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정녕 무엇일까? 만약 창조주가 있어 만물을 창조했다면 이와 같은 빈 공간에서 우주를 창조했을까? 시간도 공간도 무의미하다’
박장우는 윤지호가 자동차 안전등을 보고 돌아갔을 수도 있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깜빡거리는 노란 불빛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속으로는 수백 번이나 윤지호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면서. 그 대상이 신이든 시스템이든 간에.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불빛을 쳐다보며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즈음,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를 껴안는 것을 느꼈다.
“찾았다!”
그 손길이 그녀라는 것을 안 순간, 온몸에 퍼지는 안도감이란.. 이제 육체가 있건 없건, 이 모든 게 환상이든 아니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박장우는 허리를 휘감은 윤지혼의 손을 잡았다.
“다시는 놓지 않겠소.”
그리고 뒤돌아서 그녀를 안았다. 말 그대로 그들 둘뿐인 백색 세상에서.
“걱정했어요?”
“아니, 뭐 그다지.”
“걱정한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맞는데?”
“아니오!”
지호는 박장우의 승용차 보닛 위에 앉아 끝없이 자욱한 안개를 보며 물었다.
“진짜 죽으면 저런 곳을 무한정 걷는 게 아닐까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말아요.”
“그게 왜 무서워요?”
“아무것도 없는데 걷기만 하면 지루해 죽을 거 아니요?”
“그런가?”
“지호씨는 좋아하는 소설도 쓰지 못하고 그냥 걷기만 하는데 그게 좋아요?”
“난 좋던데.”
이 여자, 말이 안 통한다. 그래도 좋다.
“난 어떻게 찾았어요?”
“그냥 불빛 보이는 곳으로 뛰었더니 시후씨가 걷고 있던데요? 어렵지 않았어요.”
심지어 어렵지도 않다. 포에버월드 4년보다 이 여자를 만난 4주가 더 값지다. 진짜 공기를 숨 쉬고 살았던 평생보다도 낫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그럴 건데요.”
“맘대로 하시오.”
박장우는 본닛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지호는 본닛 위에 누웠다. 다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서 그녀를 덮는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계속 놔두면 그녀가 눈 속에 묻히지 않을까?
그녀는 어찌 저리 자유로운가?
“비결이 뭐요?”
“무슨 비결이요?”
“강물에 뛰어들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그렇게 맘대로 할 수 있는 비결.”
“반대로 하는 거에요.”
지호도 몸을 일으켰다.
“살아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것 투성이었잖아요.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지금 되는 것도 나중에 잘못될 수 있으니까 안 되고. 그래서 여기서는 하면 안 될 것 같은 걸 반대로 하는 거에요. 용기를 조금 내서.”
용기라, 살아있을 때도 필요 없던 용기가 죽고 나서 필요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