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포에버월드 1호 거주민

by 시sy

“그래서 오빠가 뭐래요?”

“특별한 말은 안 했지만 지나씨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지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현우의 이야기를 들었다. CCTV로 박장우를 감시했던 일이다.


“오빠가 날 의심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아빠는 모르는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고 했죠?”


정확히는 모르는 여자가 아니다. 박민혁과 박지나가 모르고 있을 뿐, 그녀는 윤지호였으니까. 지호가 어떻게 박장우를 만나게 됐는지는 지현우도 모르지만, 그녀는 박장우와 꽤 친해 보였다. 아무리 현실과 다른 포에버월드라 해도 남의 집에 스스럼없이 들어가는 모습이란, 전혀 익숙하지 않다. 꼭 지호가 아닌 것 같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거주민끼리 방문하는 건 종종 있는 일입니다.”


현우가 말했다.


“아빠가 그 여자하고 뭘 했어요?”


박지나가 물었다.


“자세히 모릅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본 게 전부여서. 집에 들어가면 모니터가 작동하지 않거든요.”

“집안은 아예 볼 수 없는 거에요? 아니면 모털 컴퍼니 정책이에요?”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처음 설계할 때부터 거주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들었어요.”

“왜요? 그러면 시스템 관리자가 불편할 텐데. 돈 버는 입장에서 그렇게 할 거 같지 않은데.”


부자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똑같다. 돈 위주의 생각, 돈은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판단의 기준이며 지침이 된다. 부자들에겐 특히 그렇고 가난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모털 컴퍼니 창업자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포에버월드는 모털 컴퍼니 창업자가 1호 거주민이 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주민의 프라이버시를 그토록 신경 쓴 것이겠죠.”

“그럼 그 창업자가 포에버월드에 있는 거에요?”


박지나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디버깅 작업이 오래 걸려서 그는 의식전송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전에 죽었거든요.”

“1호 거주민은 누군데요?”


엉뚱한 관심이다.


“나도 모릅니다.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직 살아있겠죠? 1호면 돈이 엄청 많은 부자거나, 모털 컴퍼니 가족 중 하나일 테니.”


“그런 게 왜 궁금합니까?”

“그냥요. 만든 사람이 이용할 목적이었다면 흥미가 생기네요. 꽤 좋은 곳일 수도 있고.”


박지나는 한 번도 포에버월드가 자기가 갈 곳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건 너무 미래의 일이니까.. 수십 년 후에 기술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포에버월드 버전이 올라가 포에버월드10이 나올 수도 있고, 경쟁 회사가 생길 수도 있고, 그리되면 선택할 수 있는 저승의 종류도 늘어나는 셈이다. 웃기는 일이다. 저승의 브랜드를 고른다니.


“그래봐야 죽는 사람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잘 살아있는 사람이 고민할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여지껏 지나씨가 말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현우의 지적에 박지나는 호기심을 거두고 다시 현실로 돌아갔다.


“맞아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그런 식이라면 오빠가 윤지호씨를 감시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쯤이면 오빠도 윤지호씨가 현우씨의 애인이었다는 것을 알아냈을지도 몰라요.”

“지호는 감시가 어려워요. 위치코드가 없거든요. 위치코드가 없으면 시스템 상 모니터는 불가능해요.”


“그럼 어떡해요? 현우씨도 자주 연락 못하는 것 아니에요?”

“네. 요즘은 거의 못해요. 그쪽에서 먼저 요청해야 하는데..”


지호는 변했다. 그녀는 지현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기술지원’을 내세워 메시지를 남겨도 답신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의식전송된 윤지호는 예전의 윤지호가 아닌가? 모털 컴퍼니 CTO의 말대로 영혼이 전송된 것도 아니고 복사된 것도 아니며, 그저 그녀의 기억을 가진 비슷한 것이 포에버월드에 생성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리 잘된 건가요? 오빠가 그녀를 찾을 수 없다면 요구조건을 말할 기회도 없으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계속 찾을 수 없다면 지호의 계약을 해지하려 들겠죠. 부자일수록 그런다면서요? 쓸데없는데 돈 쓰는 걸 질색하고.”


“그렇긴 한데 기본계약이 있지 않아요? 그동안은 아무리 보호자라해도 맘대로 계약기간을 줄일 수 없다고 들었는데. 거주자 동의 없이.”

“예외조항이 있습니다. 거주민과 연락되지 않을 때. 지호가 딱 그 경우입니다.”



윤지호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그냥 들어와요~ 열려있어요.”


지호는 소설에 집중해 있다가 현관문 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당연히 박장우일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오라 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대신 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왜요? 문 앞까지 마중 나오길 바라는 거에요? 우리가 그 정도 사이까지는 아니지 않나요? 박시후씨?”


문 열었다. 박시후가 아니다. 다른 남자다. 박시후 보다는 훨씬 더 나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뵙네요. 이건 선물입니다.”


처음 본 남자가 꽃다발을 준다. 지호는 꽃다발을 받았다. 습관적으로 꽃향기를 맡았다. 아무 향기가 나지 않는다. 고개를 갸웃.


“문제 있습니까?”

“이거요. 아무 향이 안 나요.”

“이리 줘 봐요.”


남자는 인사하다 말고 꽃을 되받았다. 그리고 냄새 맡는다.


“이상하네요. 제법 비싼 꽃인데.. 디자인 실수인가? 가끔 이런 일이 있어요. 아마 내일쯤이면 향기가 날 거에요. 그때까진 예쁜 모양만 봐주세요. 꽃의 주 용도는 원래 외양이고 향은 부차적인 것이니까.”

다시 준다.

“알겠어요. 꽃은 잘 받을게요. 그런데 누구세요?”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전 제이든입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손제이든. 이름이 이상하죠?”

“아니, 이름이 이상하다기 보다는 지금 상황이 이상한데요. 왜 저한테 꽃을 주고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제야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집 보이죠? 저기로 이사 왔습니다. 그래서 이웃에 인사하러 왔는데 올 때마다 안 계셔서요. 그리고 그 꽃은 이웃에게 드리는 선물이었는데, 지금은 바뀌었습니다. 미인에게 드리는 선물로. 비록 향기는 안 나지만.”


남자는 속이 뻔한 수작을 걸면서도 그 뻔한 수작을 멋들어지게 만들 만큼 멋진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들어와서 차 한잔, 아니다. 이 집에서는 차를 끓일 수 없구나. 그럼 어떡하지?”

“저쪽에 커피하우스가 있습니다. 가보셨죠? 거기서 마시면 어떨까요?”


지호는 쓰던 소설이 마음에 걸렸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좋아요. 마음씨 좋은 이웃님.”

“제이든입니다.”

“네, 제이든 이웃님.”


지호가 아침마다 커피를 사러 오는 곳이다. 박장우와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다 보니 실내는 익숙하지 않았다. 실내는 훈훈한 난방이 켜져 있어서 조금 덥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죠. 이곳은 어차피 컴퓨터 속인데 그냥 사시사철 쾌적한 온도로 맞춰 놓으면 될 것을 난방을 넣고, 여름에는 냉방도 하고. 왜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지호는 제이든의 질문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상한 분이네요. 이웃이라고 꽃을 사오는 것도 그렇고, 지금 하는 질문도 그렇고. 혹시 모털 컴퍼니 관계자는 아니겠죠?”

“그게 이상합니까? 그럼 제 질문은 넣어두세요.”


제이든은 차를 주문했고 지호는 값을 지불하기 위해 F머니 카드를 꺼냈다.


“그것도 넣어두세요. 저는 숙녀에게 얻어먹을 만큼 리버럴하지 못합니다.”


제이든은 지호를 만류하며 자신의 카드를 AI종업원에게 넘겼다. 지호가 물었다.


“자, 그럼 솔직히 말해보세요. 저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에요?”

“아, 이유가 필요한 일이었군요. 그럼 지금부터 그 이유를 궁리해 봐야겠습니다. 난 꽤 오랫동안 이유 없이 살다 보니 어떤 일에 이유가 필요한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지금 같이 차를 마시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제이든씨가 제 집에 찾아왔으니까요.”

“그럼 내가 찾아간 이유는?”


“그건 내가 모르구요. 그쪽이 아셔야죠.”

“나도 모르는데 그럼 누가 알죠? 하느님?”


잊고 살았던 단어다. ‘하느님’


“하느님이 있을까요?”

“어디요? 포에버월드에? 아니면 바깥 세상에요?”


그녀를 바라보는 제이든의 눈빛은 잔잔한 강물 같았다.


“하느님이라면 그 둘의 구분이 없지 않을까요? 전지전능한 신인데.”


지호는 조금 시비 걸고 싶었다.


“아, 그렇네요. 난 바깥 세상은 모르지만, 여기는 좀 알아요. 이곳에 신은 없습니다. 설계자가 있죠.”

“설계자요. 아. 그렇겠네요. 누군가 이곳을 만들었다는 것을 잊고 살았어요.”


“칭찬이죠?”

“네?”

“바깥 세상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는 건 칭찬 아닌가요?”


박장우는 윤지호의 집을 찾아가며 오늘은 어떤 핑계거리를 만들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유가 있으면 좋으니까. 그런데 써먹을 이유는 거의 다 써버렸다. 그녀를 안 만날 때는 틈나는 대로 다음 만날 이유를 궁리했었지만 뭘 어떻게 더 이유를 만드나? 이 뻔한 포에버월드에서.


그래서 꽃을 샀다. 꽃을 팔기만 하지 사는 사람은 없어서 자원낭비라고 생각했던 꽃집에서 장미를 사려는데, 박장우보다 앞서서 꽃을 사는 남자가 있었다. 겉보기에 사오십대처럼 보이는데 속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포에버월드에서 얼마를 살든 얼굴은 그대로니까 속은 푹 삭았을 수 있고, 박장우처럼 몰래 전신 업그레이드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꽃을 사서 윤지호의 집으로 향하는데 남자는 이미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남자를 미행하는 모양새가 됐다. 설마, 했던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그 남자가 윤지호의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저 자식이?’


마침내 지호가 문 앞에 나와 그 남자와 얘기를 나누는데 박장우는 몰래 그 장면을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뭔 얘기를 저리 오래해?’

이야기가 끝났나 했더니 이번에는 둘이 걸어서 커피하우스로 향한다.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이했어. 왜 다른 남자가 꼬일 것이란 생각은 못 했지?’


박장우는 손으로 머리를 치며 또 따라갔다. 커피하우스에서는 조금 자리를 떨어져 앉고 계속 그들을 관찰했다. 대화를 하지만 박장우가 있는 곳까지 들리지 않았다. 남자의 입모양을 보면서 대화를 추측해보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마침내 둘 다 일어났다. 박장우는 제발 둘이 커피하우스에서 헤어지기를 기도했다. 종교도 없는 박장우였지만 그의 애절한 기도는 응답받았다. 윤지호는 남은 커피를 들고 집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산책이다. 박장우는 얼씨구나 하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꽃은 커피하우스에 버렸다. ‘빌어먹을 장미 같으니’

거리를 두고 따라 걷기를 20분.

‘이제 우연히 만나는 척하기는 틀린 것 아닌가? 그렇다고 지호씨를 부르면, 여태 훔쳐봤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 아닌가?’


이런 고민은 한방에 해결됐다. 그녀가 박장우를 불렀기 때문이다.


“계속 따라오기만 하네요. 언제 불러줄지 기다렸는데..”

“알았습니까?”

“당연히 알죠. 아까부터 보고 있었잖아요?”


박장우는 너무 부끄러워서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고 싶었다.


“속으로 내 욕하고 있었죠?”

“내가요?”


“엄청 헤픈 여자라고 생각했을 거 아니에요? 모르는 남자에게 꽃도 받고, 아무하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그건 절대 아니요. 맹세컨데.”


지호가 웃었다.


“이 정도에 맹세 씩이나. 그런데 시후씨도 이건 알아둬요. 당신도 나에겐 모르는 남자에요. 아무 남자기도 하구요. 나 원래 남자친구 있었어요. 아프지만 않았다면 결혼도 했을 거에요.”

“나도 결혼했소.”

‘그것도 두 번이나. 당신 또래의 자식도 있소’


뒷말은 참기 잘했다. 이런 것을 자랑할 때가 아니다.


“와, 결혼. 결혼은 어때요?”

“그런 건 얘기하지 맙시다. 이제 다 없어진 일이니. 거의 전생 얘기나 다름없지 않나요?”

“전생, 좋은 표현이네요. 맞아요. 전생의 인연은 끝난 거겠죠?”


지호는 잠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는 누구요?”


참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머, 질투?”

“아니요.”

“그럼 안 가르쳐줘요.”


지호는 뭐가 재밌는지 계속 웃는다. 웃으니까 됐다. 이걸로 괜찮다. 박장우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다른 모든 것을 괜찮다며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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