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잃을 건 언제든지 있다.

by 시sy

“용기 하나는 칭찬해주지.”


박민혁은 지현우를 노려보며 말했다. 현우는 박민혁의 눈을 마주보기 힘들었다. ‘용기’를 운운한다는 것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윤지호, 못 찾는 거야? 안 찾는 거야? 지금쯤이면 솔직할 때도 된 거 아냐?”

“그건..”


지현우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찾긴 찾았지만 찾았다고 말 못 한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손해 보신 건 책임지고 변상하겠습니다.”


지현우가 고개 숙여 사죄하자 박민혁은 비웃었다.


“내가 의식전송에 들어간 돈 몇 푼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닌 줄 알잖아. 내 말은 당신이 노력을 안 하잖아. 노력을.”

“노력하고 있는데 정말 찾을 수 없습니다.”


찾을 수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윤지호의 위치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현우가 ‘기술지원’을 빙자해 통화를 요청하면 음성으로 연결될 뿐이다.

박민혁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현우를 쳐다봤다.


“그럼 어떡할 거야? 대책은 있어?”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윤지호씨의 협조가 있으면 추적기를 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윤지호씨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야...”


변명거리로 준비했던 대답이다. 이론적으로 틀린 말도 아니고.


“결국 어떻게 해도 연결이 돼야 한다는 건데, 보호자가 요청을 해도 연결이 안 되니.”

“요청해 보셨어요?”


박민혁이 보호자 면회를 요청했다는 말을 듣고 현우가 화들짝해서 물었다.


“뭐 그렇게 놀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냥 보호자가 강제로 연결할 방법은 없어?”

“알림 소리를 좀 크게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안 받으면 그만이라서. 죄송합니다.”

“죄송한 소리는 집어치고. 참, CCTV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박민혁은 며칠 전에 기술팀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을 기억했다.


“그건 할 수 있는데,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뭔데?”

“첫째는 거주민이 동의해야 합니다.”


박민혁이 표정이 찌그러진다.


“몰래 훔쳐보겠다는 건데 그런 걸 동의할 리가 없잖아?”

“그래서 그건 편법이 가능합니다.”


지현우가 재빠르게 답했다. 뭐라도 하나 긍정적인 대답을 해줘야했기 때문이었다. 박민혁을 계속 자극하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떤 편법?”

“응급상황에서는 동의없이도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면 됩니다.”


“그래? 그런 게 있는데도 기술팀 애들이 그 난리를 쳤네? 두 번째 조건은?”

“위치추적이 돼야 하고 동시에 사적인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집안은 불가능하고 집밖이나 길거리, 공원 같은 데서만 볼 수 있어요.”


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노인네는 가능하고 윤지호는 안 되는 거네? 할 수 없지. 우선 노인네부터 좀 들여다 보자. 윤지호는 위치추적기 달면 보고. 언제 가능해?”

“하루 정도면 준비할 수 있는데, 박장우씨는 왜 보시게요?”


지현우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이 영감탱이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요즘 연결이 안 돼. 연락도 안 오고, 해도 받지 않고.”


그건 지현우도 이상했다. 박장우는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아들 박민혁과 통화를 요청했었다.


“잠깐 보겠습니다. 박장우씨, 시스템상에는 문제없다고 뜨는데, 혹시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나요?”

“뭐 좀 걸리는 게 있기도 하고.”


박지나다. 박장우가 박민혁 몰래 뭔가 꾸민다면 박지나 밖에 없으니까. 현우도 궁금해졌다.


다음 날, 박민혁은 모털 컴퍼니 클리닉을 다시 방문했다.


“그럼 긴급상황을 가정하고 거주민 동의절차는 패스하고 가겠습니다. 동의하시죠?”


지현우가 형식적으로 물었다.


“알았어. 지금 이 인간 어디 있는데?”

“잠시만요. 위치확인 중입니다. 외출했다가 지금 집앞으로 가고 있는데요. 화상으로 연결하겠습니다. 집안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끊깁니다.”


포에버월드 모니터 화면에 공중에서 보는 각도로 박장우가 나타났다. 젊고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촬영 각도 때문에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박민혁은 쉽게 알아봤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아도, 그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부자(父子) 사이었던 것 같은데.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박장우는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내 돈 펑펑 쓰면서 아주 즐겁게 지내시는구만. 그런데 저 여자는 뭐야?”


박민혁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박장우와 조금 떨어져 걷던 여자가 박장우의 집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역시 각도 때문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젋은 여자다. 전신 업그레이드한 박장우와 그럭저럭 어울린다.


“저 영감이 얼굴 바꾸더니 연애질하고 있었어?”


누구지? 포에버월드에 저 정도 젊은 여자는 흔치 않다. 지현우도 자세히 보기 위해 화면을 조금 확대했다. 그래도 뒷모습뿐이다. 옷차림이 수수한 것으로 봐서 유가족이 부자는 아니다.


그러다 지현우는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비명이 터져 나온다.

화면 속의 젊은 여자는 박장우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뒷머리를 가볍게 흔들더니 왼손으로 자신의 목과 함께 머리결을 만졌다. 그러면서 새끼손가락이 하늘을 향했다. 윤지호, 그녀만의 버릇이었다.



박장우의 집에 들어간 윤지호는 집안을 둘러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볼 때보다 안이 더 큰 거 같아요.”

“그런가요?”


지호는 허락도 없이 박장우의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큰 집에서 혼자 사는 거에요?”

“그럼 달리 누구랑 살겠소? 여기 거주민들은 대부분 혼자요. 간혹 여기서 사귄 친구들과 같이 살기도 하지만...”


박장우는 말끝을 흐리며 지호의 눈치를 봤다. 못 들었다. 아쉽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에요.”


지호가 들어가 있는 방은 아무것도 없이 텅빈 방이다. 무조건 큰집 위주로 입주했지만 정작 와보니 들여놓을 가구가 마땅하지 않았다.


“그건..”


박장우가 미처 설명하기 전에 지호는 방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추고 있다. 잘 추는 춤은 아니지만 유리창을 통과해 비스듬히 떨어지는 마른 햇빛 덕에 광채가 난다.


“여기는 춤추는 방 어때요? 바닥이 미끌거려서 나는 좋은데.”

“생각 못 해 봤는데. 잠깐만요.”


박장우가 리모컨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온다. 에드 시런의 ‘퍼펙트’다. 완벽한 순간에 정말 완벽한 음악이 나온다. 음악이 들리자 지호의 춤이 더 자연스럽다.


“발레를 배웠소?”

“어릴 때 잠깐요. 같이 해 볼래요?”

“미쳤소?”


블타바 강 물속에서 빙그르 돌던 지호의 동작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때 그녀는 춤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호는 가슴을 내밀고 앞꿈치부터 사뿐사뿐 걸으며 조금씩 다가왔다. 단순한 걷는 동작도 아름답게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정녕 미쳤나 보다’

지호는 박장우의 어깨에 한쪽 손을 얹고 음악에 맞춰 좌우로 웨이브를 탔다. 박장우는 꿈을 꾸는 것 같다. 꿈속의 꿈을.


“뭐하는 겁니까?”

“하지 말라는 거요. 언제 또 죽을지 모르니까요.”


음악이 끝났다. 춤도 끝났다.

지호는 언제 춤췄냐는 듯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쓸데없이 방을 많이 만들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이거 뭐에요?”

“또 뭐요?”


발걸음 소리와 함께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다. 손에 책이 한 권 들려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이다.


“보면 몰라요? 책.”

“그러니까 왜 이 책이 여기 있냐구요?”


윤지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읽고 있던 책, 그녀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녀를 보는 기분으로 집에서 읽던 책이다.


“작가선생 따라 나도 읽어봤소. 도무지 이런 책을 왜 읽는 거요?”

“1권이네요. 어디까지 읽었어요?”


어디까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몇 주를 읽었는데 겨우 50페이지 근방에서 맴돌고 있다.


“아직 주인공이 방도 안 나갔습니다. 그 친구는 언제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까?”

“호호호, 80페이지쯤 지나면 주인공이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가죠. 그리고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을 베어 물고, 그 맛에서부터 시작되는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여행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그럼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안 된 거란 말이요?”

“아뇨. 이야기는 첫 페이지부터 시작됐죠. 이 소설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 같은 건 의미 없어요. 그저 작가가 생각나는 대로, 사진처럼 떠올리는 추억과 기억에 따라 서술하는 거에요. 그래서 더 매혹적이죠.”


살아있을 때는 뭐든 처음과 끝이 있었다. 시작한 일은 매듭지어야 하고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끝이 끝이었나? 일에 끝이 있었나? 하나의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이 꼬리를 물고 생기고 또 그 일을 처리해야 한다.


박장우는 큰돈이 오가는 부동산 사업을 하다보니 늘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10억을 벌면, 그 10억으로 20억을 벌기 위해 모든 돈을 투자하고, 100억이면 200억을 위해 그동안 모았던 전 재산을 투입했다. 가끔은 시세를 관망하며 한숨 돌렸지만 그럴 때는 꼭 세금문제, 상속문제가 튀어나왔다.


아무 문제없이 평온하게 살 때가 있었나? 이미 삶에도 처음과 끝 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물며 포에버월드에서의 생활은? 매일이 똑같은데 어디가 처음이고 끝이란 말이냐?

윤지호의 빙글빙글 도는 춤이 이런 걸 의미했나?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인가?


“이런 소설을 끝까지 읽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난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소.”

“부디 천천히 읽어요. 그걸 다 읽고 나면 내가 너무 그리워질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 소설 주인공도 나처럼 소설가에요. 그런데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만 있지 뭘 써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요. 그러다 소설이 끝날 때가 돼서야 자기 인생이야 말로 최고의 주제라는 것을 깨닫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써요. 그 기억력이라는 게 어지간한 기록영화 수준이긴 하지만요. 큭큭.”


그녀는 웃고 있지만 웃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당신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다 쓰면 정말 죽을 거란 말이요?”

“전 이미 죽었죠.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그런데 다 쓸 수 있을까요?”


지호는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다. 소설을 다 쓸 때까지만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박장우는 그녀가 영면에 들고 포에버월드에 혼자 남는 자신이 상상되지 않았다.


“나도 최대한 천천히 읽을 테니 당신도 최대한 노력해서 천천히 써요. 시간 많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뭘 해요? 이 큰 집에 초대하고 이게 전부는 아니죠?”

“아직 보여주지 않은 곳이 있어요. 이리 와봐요.”


박장우는 지하층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지호를 불렀다. 나무계단을 내려가니 1층만큼 큰 공간이 나왔다. 개인 영화관이었다.


“세상에. 지하실에 영화관이 있었어. 여기서 수천 개나 되는 영화를 봤다는 거죠?”

“내가 살아있을 때는 이것보다 큰 영화관이 있었는데. 가끔 시사회도 하고. 흠흠.”


“지금 부자였다고 자랑하는 거죠?”

“그럼 뭐하겠소? 작가선생 말대로 이미 죽었는데. 같이 영화 볼 사람도 없고.”


박장우가 조명 꺼진 스크린을 공허하게 보는데 윤지호는 관람석 정중앙에 자리 잡고 앉았다.


“시후씨, 거기서 뭐해요? 영화 보여 줄 거 아니었어요?”

“아, 영화. 무슨 영화 보고 싶어요?”


“눈도 왔으니까 겨울 영화. 「이터널 선샤인」 있어요?”

“있을 거요. 그런데 본 영화 아니요?”


“영화는 본 영화 또 보는 게 제 맛이죠. 팝콘은요?”

‘뭐가 저리 귀여워?’ 저 여자, 사람 홀리려고 작정했다.


“팝콘 트랜스지방이 내 병에 나쁘다고 해서 의사가 못 먹게 했거든요. 난 영화 볼 때 팝콘 먹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 소원 내가 이뤄주겠소. 조금만 기다려요.”


지호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파란 물방울이 아웃포커스로 확대된 모양의 제작사 로고가 사라지면서 주인공 짐 캐리가 잠에서 깨어난다. 창문에서 드리워진 아침 햇볕에 부셔하며 잠을 깨는 모습이 그녀가 포에버월드에서 처음 눈 떴을 때와 유사하다. 그는 잠든 사이, 사랑하는 여자의 기억을 지우고 첫 아침을 맞았다. 익숙함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 생경함이란...


인기척이 나더니 어느새 박장우가 양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주섬주섬 옆에 앉았다.


“마음껏 먹어요. 여기는 병(病)도 없고 지켜야 할 건강도 없는 곳이니.”

“맞아요. 기억만 있는 곳이죠.”


주인공이 뉴욕 인근 몬토크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는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였다. 단지 그녀에 대한 기억을 지웠을 뿐. 그 여자는 기차역에서 또 만나고, 같은 기차 같은 칸에 타고, 같은 기차역에서 내린다. 박장우는 몇 번이나 본 영화다. 저렇게 또 사랑에 빠지는 것이지..


“저 여자, 클레멘타인 나랑 좀 비슷한 거 같지 않아요?”

“그러네요. 엉뚱하고 귀엽고.”


“좋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우리도 언제 저거해요. 재밌겠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위태위태하게 얼어붙은 빙판 위를 걷는 장면이다.

“저러다 또 빠지려고요?”


“비밀 알려줘요?”

“뭘?”


“진짜 재밌는 건 빠지기 직전까지라구요. 못 할 거 없잖아요. 우린 잃을 게 없는데.”

정말 그런가? 잃을 게 없나? 그렇지 않다. 박장우는 잃을 게 있다. 스위스은행에 예금도 있고 윤지호도 있다. 죽고 나서도 잃을 게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난 잃을 게 있는 거 같은데..”


“정말요? 뭐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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