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죽은자도 사생활이 있다

by 시sy

박민혁은 조금 불안했다. 약속된 일주일이 또 넘었는데 지현우에게 아무 연락이 없었다.


‘정말 그 여자를 못 찾았단 말인가? 그보다 그 여자, 지현우와 무슨 관계일까? 아무 사이도 아닌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여자를 찾는다 해도 스위스은행 계좌를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인계가 성공해서 노인네가 그 여자에게 푹 빠진다고 해도 스위스 은행 계좌를 말해줄 이유가 있는가? 처음부터 너무 즉흥적인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입 꽉 다물고 죽은 아버지의 기억 데이터에서 뽑아낼 수도 없고, 조금만 미리 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상한 건 요즘 박장우가 민혁을 보자는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못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꼭 아웃라인 통화를 하고 온갖 불만을 쏟아냈던 노인네가 이렇게 조용하다니.. 젊어진 육체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꽤 마음에 들었던 것이 틀림없다.


자꾸 연락해서 괴롭히지 않는 건 좋은데 아예 연락이 없으니 그건 그것대로 불안하다.


‘뭔 일 있는 거 아니야?’


내친김에 모털 컴퍼니에 아웃라인 면회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박장우에게 통화를 요청했는데 처음 있는 일이 벌어졌다. 박장우가 거절한 것이다.


“이유가 뭐래요?”


박민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묻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다.


“저희는 모릅니다. 그냥 요청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응답하질 않아? 뻔질나게 요청할 때는 언제고?’


“잘 살아있는 거죠?”


“네?”


“내 말은, 어떤 문제 있는 건 아니냐고.. 그러니까 사라졌다거나, 완전히 죽었다거나. 그거 있잖아요?”


“아, 의식이 소멸됐는지 걱정하시는 거라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 모니터 보이시죠? ‘엑티브’로 돼 있다는 건 의식활동이 정상이라는 것이구요, 동시에 활성화돼 있다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기술팀 엔지니어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박민혁을 쳐다봤다.


“혹시 좀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CCTV 같이.”


“그게. 규정상 금지돼 있습니다. 최근에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정부 방침이 더 강화됐고, 또 원래부터 거주민 동의 없이 생활하는 모습을 모니터하는 건 못 하게 돼 있습니다.”


규정상 금지? 말이 애매하다. 규정상 금지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박민혁은 엔지니어들이 공무원처럼 뻣뻣하게 나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수는 있는데 못 한다는 거죠?”


“아뇨. 저희 권한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네 할 수 없습니다.”


“그냥 잘 있는지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내가 보호자입니다. 박장우씨는 내 아버지고. 잠깐만 보겠다는 건데, 그래도 안 돼요?”


“안 됩니다. 지금 아웃라인 면회 요청해놨으니까 접속되면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안된다고 하니까 더 궁금하고 짜증난다. 돈이면 뭐든지 되는 세상에서 겨우 컴퓨터 따위가 맘대로 안 된다니..


“진짜 짜증나네. 아니 솔직히 이 안에 있는 것들이 그게 살아있는 거도 아니고, 영혼도 아닌데,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다 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얼마 줄까? 가격표는 없어?”


박민혁이 있는 대로 짜증냈다. 그러자,


“더 소란 부리면 시큐리티 요청하겠습니다.”


직원 한 명이 인터콤 전화기를 들었다. 위협이다. 박민혁은 결국 돌아섰다. 그리고 후회했다. 지현우 모르게 통화하려고 그가 없을 때 온 것이 잘못이었다. 지현우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했을 것이었다.


아웃라인 면회실을 나가려던 박민혁은 문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말했다.


“참, 내가 보호자로 있는 거주민이 한 명 더 있는데, 윤지호라고, 하는 김에 그쪽도 면회 신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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