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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Oct 14. 2024

팔려고 만드는 커피가 아니다.

자주 다니는 산책길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커피집이 하나 있다. 벽이고 블라인드고 온통 하얗게 칠해놔서 특색 있기는 한데 주변도 비슷한 색깔이라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더구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부주의해서가 아니다. 거의 1년을 그 앞을 지나다녔는데 간판이 있는지 없는지도 분간되지 않으니 커피집 이름이 뭔지 알게 뭔가? 


안에 손님이 있는 것을 본 것은 두 번쯤 된다. 그외에는 거의 비어있다. 열었을 때도 블라인드를 제대로 걷지 않아 내부가 보이지 않고 주인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잘 모를 정도다. 왜 안 망하지? 이렇게 손님도 없고 1년이면 망할 때가 됐는데. 그렇게 2년이 되어 간다. 


그러다 몇일 전, 'Closed'라는 푯말 옆에 노란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 폐업할 것이니 그동안 감사했다는 뭐 이런 말이 적혀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가까이 갔다. 그래, 그만하면 오래 견뎠다. 바로 옆에만 해도 브랜드 커피전문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독립형 카페가 어떻게 살아남아? 그러나 웬걸?   


/카페는 2시에 오픈합니다/


라고 적혀 있는 것 아닌가?  

이게 말이 돼? 거주지도 아니고 지하철역과 오피스 건물 사이 출퇴근 길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커피집이 아침 점심 장사 포기하고 오후 2시? 미친거 아님? 


어째 첨부터 포스가 심상치 않았다. 지나가다 유심히 안을 들여다 보면 야구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커피 머신 앞에 앉아 멍때리거나 졸고 있었다. 바 테이블 위로는 각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미니어쳐 인형들이 하나, 둘 늘어갔는데 개업할 때는 두어 개 밖에 없던 것이 2년째가 되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득했다. -유일한 변화였다. 


왜 안 망하지? 혹시 건물주? 여기부터 저기까지 모든 가게가 혹시 이 집 꺼? 카페는 다른 가게 감시 목적의 언더커버?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꼭 팔려고 커피를 만들 필요는 없지. 나는 뭐가 다른가? 읽히려고 쓰는 소설이 아니다. 어찌보면 이 카페와 나는 닮았다. 


불행했던 사나이, 빈센트 반 고흐는 21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제대로 인정 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화풍이 완성되지 않았다 생각하고 노력에 노력을 덧씌워 860점의 유화를 완성했다. 27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37살 죽기 전까지 고작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감안하면 미친놈이라 불려도 할 말 없을 만큼 그림에만 몰두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개발하고, 이렇게도 그리고 저렇게도 그리고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갔지만 끝까지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는 동료 화가마저 하나 둘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고갱이 대표적인 경우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이슈가 아니다. 


열심히 하면 곧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언젠가는 알아줄 것이다는 소망으로 후퇴했고 살아 있을 때가 아니라면 미래에 큰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마저도 흔들렸다. -한낱 인간에게 자기확신과 신념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마침내 그의 곁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그림과 외로움만 남았다. 화가라고 하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절대 고독,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나?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빈센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그저 삶을 견디고 있다. 그러나 슬픔은 영원할 것이다."


말년에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삶을 견디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팔려는 것이 아니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뭘 그리려 했던 것일까? 

삶의 본질? 색체와 감정의 표현? (주로 고통이겠지만) 아름다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이런 평가는 모두 그가 죽고 난 후 그림이 수백 억 원을 호가하자 비평가들이 덧붙인 장식에 불과하다.    


고흐와 달리 살아있을 때 이미 저명한 작가가 됐던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즈>를 내놓고 엄청난 욕을 먹었다. 심지어 검열에 걸려 음란물 판정을 받았고 고국 아일랜드를 비롯해 자유의 상징인 영국과 미국에서조차 출판 금지 당했다.  


그가 몰랐을까? 그 바닥의 선지자나 다름 없는 실비아 비치가 독립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선주문 1000권을 받고 출판하지 않았다면 <율리시즈>는 지금 이름없는 원고뭉치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임스 조이스는 썼다. 쓰고 싶어 썼고, 쓸 수 있으니까 썼을 뿐이다. 누가 읽으라고 쓴 것도 아니고 책을 팔려고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나는 결국 이름없는 카페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도대체 어떤 맛의 커피를 팔기에 이 정도의 오만함으로 장사를 하나? 오후 근무를 땡땡이 치고 오픈 시간 2시에 맞춰 갔더니 여전히 Close, 어이없다. 그래서 3시 재방문, 또 실패. 오기가 생겼다. 퇴근할 때 잠깐 차를 세우고 안을 봤더니 아직 Close, 뭐야 벌써 닫은 거야? 안 열은 거야? 이렇게 내가 지는 것인가.. 커피 한 잔 못 얻어 마시고 비참함까지 느꼈다.


다음 날 재도전,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 간판에 흰색 블라인드는 똑같지만 Open이라며 푯말이 뒤집혀 있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뭐 이런 정도에.. 곧 화가 났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을 열었지만 야구모자를 눌러쓴 주인은 제대로 날 보지도 않았다. 어서오라는 말은 당연히 없다. 역시 거만해.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군. 


"커피 팔죠?"


커피집에 와서 당연한 질문을. 나의 분노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정선된 워딩이었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자세히 보니 야구모자 밑으로 비대칭의 기다란 귀걸이가 찰랑인다. 목이 훤히 드러나는 자주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혹시 명품인가? 그 아래는 바 테이블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검지와 중지에 이중으로 체인이 달린 은반지를 끼고 있었다. 


커피를 받아 그자리에서 맛을 보니 그저 그렇다. 일회용컵에 받아 매장 안에서 마시는 모습이 이상했던지 주인은 나를 물끄러며 쳐다봤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나른해. 나른하다. 


"이렇게 늦게 열어도 장사가 돼요?"


 이판사판 물었다. 아무것도 모른 체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네?"

"아침이나 점심에는 안 하는 것 같아서요."


대답이 없었다. 하긴 대답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묻고 싶은 것은 한 가득이었다. 내 문제일뿐이다. 


"가게 이름이 뭐에요?"

"Kitty's Cake 인데."

"어디 적혀 있어요?"

"여기."


손끝으로 가리킨다. 검지와 중지 사이로 반지 2개를 묶은 실처럼 가는 은빛 체인이 반짝거렸다. 엉뚱한 것에 한눈을 팔다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높이 60센티 정도의 입간판이 구석에 세워져 있다. 이름이 못나서 이름표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가게 정체가 뭐지?


"케이크가 어디 있어요?"

"주문만 받아요. 주문하실래요?"


아, 망했다. 결론적으로 이 가게는 커피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맞춤형 수제 케이크를 주문 제작하는 나름의 맛집으로서... 나는 블라이든 틈새로 빛나는 커피머신만 보고 지레 커피집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그렇다해도 오후 2시에 여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매일 오후 2시에 열어요?"

"주문한 케이크는 그전에 연락하고 오시면 드릴 수 있어요."

"전화 주문도 가능해요?"

"네. 블로그나 인스타도."


비극의 주인공도 아니고 실수를 납득하지 못한 나는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연전연패였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났다. 슬램덩크의 명대사처럼, '커피는 거들 뿐'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다른 것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읽히려고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면 난 뭘 써야 하나?

뭘 팔아야 하나? 


p.s) 당신은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까? 그걸 팔게 아니라면 진짜 파는 것은 뭘까요?

p.s) 커피집 아니고 케이크집 이름은 조금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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