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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20. 2024

<매트릭스>의 철학 "선택은 환상이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마법 같은 말이 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굿윌헌팅>을 보면 심리학 교수인 숀이 천재소년 윌에게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어린시절 겪은 가정폭력은 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죠.

https://youtu.be/y30CWYpba18?si=uZqxcVCvDkcxEayK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마법의 말은 모든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100% 내 잘못인게 뭐가 있을까요? 1%만이라도 타인의 잘못이거나, 주어진 상황 때문이라면 어떤 부정적 결과는 결코 내 잘못만은 아닙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1~4편 내내 인과율을 강조합니다. 모든 현상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고 개인의 선택은 환상이거나 희망사항이라는 주장이죠. 

<매트릭스 2>의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예언자 오라클은 네오에게 캔디를 권합니다. 네오는 자기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오라클이 알고 있냐고 묻고, 오라클은 예언자니까 당연히 알고 있다고 답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나요?"

"그걸 모르면 오라클이 아니지."

"이미 알고 있다면 난 어떻게 선택을 하죠?"


알고 있다는 것은 결과가 정해져있다는 것이고, 네오의 선택도 이미 정해져있으니 개인의 선택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오가 <매트릭스>속 빌런 프로그램인 메로빈지언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됩니다.  

네오와 모피어스는 키메이커의 행방을 묻지만 메로빈지언은 왜 찾는지 이유를 묻습니다. 이유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 되물으니 메로빈지언은 이렇게 네오를 비웃습니다. 


"넌 이유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너는 누가 여기로 가라고 하니까 여기로 왔고 그 말에 따른 것뿐이다. 이 세상의 불변하는 하나의 진리는 인과율 밖에 없다. 액션&리액션, 코즈&이펙트(cause and effect)"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일반적으로 원인과 결과라고 하면 'cause and result'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영화는 굳이 'effect'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게 뭐가 다를까요? 


아시다시피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과관계를 부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부정한 인과관계는 굳이 따지자면 원인과 'result'에 가깝습니다. 경험적 관찰에 따른 연쇄현상들은 겉보기에 인과관계가 있어보이지만 믿을 수 없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법칙이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침 닭이 울면 해가 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effect'는 다릅니다. 이 단어 자체에 어떤 원인으로 인한 결과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알고리즘에 따른 추론결과는 'result'가 아니라 'effect'입니다. 이 때문에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는 네오의 모든 행동은 이미 결정돼 있던 것이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상은 어떨까요? 이곳에도 알고리즘과 같은 법칙이 지배하고 있을까요? 만약에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무모순적 법칙이 있다면, 우리는 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 조차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주법칙의 결과죠. 게다가 내가 잘했건 못했건 성공했건 실패했건 이 모든 것도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우주가 탄생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라 내가 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럼 어떡하죠? 내 선택은 정말 무의미한가요?  

그 답도 영화 속에 있습니다. '정해져 있는데 선택을 어떻게 하냐'는 네오의 질문에 오라클은 이렇게 답합니다. 


"선택은 이미 했고 네가 해야 할 일은 그 이유를 아는 것이다."


곱씹어 생각하면 선택을 누가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로 했는지, 누가 시켜서 했는지, 아니면 그런 선택을 하도록 키워졌는지, 간에 결과는 같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선택의 이유를 아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존재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독교 신학의 예정설과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개인의 선택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흥미로운 주장들도 있구요. 그건 다음 기회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건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앞으로 철학 커뮤니케이터의 글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 <철학자의 수다>라는 제목으로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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