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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06. 2024

아내 스마트폰의 '알림'을 지워라!

농담들 3 : 웃지 못할 해프닝

꽤 오래 숙고한 결과, 아내와 나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끝없이 딴소리를 하고,

"까사미아에서 봤는데 이 그림 너무 이쁘지 않아?"

"브런치에 어떤 피아니스트가 글을 썼는데 모차르트가 천재면 바흐는 신이라면서.. 표현이."

서로 듣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음악하는 사람이 글 쓰면 멋있겠네."

"그 그림 프린트 된게 20만원이면 좀 비싸지 않나?"

돌연 서로의 말을 따라가지만 또 엇갈린다. 괜찮다. 



나는 매운맛 아내는 순한맛, 나는 E 아내는 I, 나는 포근하게 자고 아내는 춥게 자고..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 같아도, 우리는 마트 산책하면서 붕어빵 사먹는 것을 좋아한다. -이거면 충분.


딱 한가지만 빼고! 절대 양보 못해!


아내는 문자고 카톡이고 스마트폰의 각종 알림을 없애지 않는다!!

아예 안 본다는 게 아니고 볼 것만 쓱 보고 놔두기 때문에 알림창에는 읽지 않은 알림이 가득하고, 노란색 카톡 배지 위에는 언제나 3자리 숫자가 상주하고 있다.  

스마트폰 확산으로 디지털 신세계가 열리면서 부부의 '심각한' 성격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나는 단 한개의 알림도 내버려두지 않으며, 읽지 않을 바에야 '차단'하거나 차라리 알림기능을 꺼버린다. 

그러나 아내는,

"안 읽으면 되지. 귀찮게."

이게 말이 되나? 계속 눈에 띄고 신경을 벅벅 긁는데 저 빨간색 3자리 숫자를 어떻게 내버려 두냔 말이다. 


참다 참다, 어느 햇볕이 좋은 날 거사를 결심했다. 

'오늘 내가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답답해 죽든, 미치든 둘 중 하나다.' 


아내가 분리수거를 하러 나간 틈을 타 식탁 위에 두고 간 아내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빌어먹을 잠금장치, 패턴이 뭐였더라. 이렇게 돌려서 꺾었든가? 아니네. 다시. 

쉽게 하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시작해서 Z였나? 실패. 

거듭되는 실패로 한번만 더 틀리면 30초간 대기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


에이, 설마 이건 아니겠지? 아내가 바보도 아니고. 단순 기억자. 맞다. 아, 이럴수가~


일단 알림창을 밑으로 스크롤해서 각종 광고를 모두 날려버리고, 그 다음은 문자에 들어가서 '모두 읽음'으로  처리했다. 

마지막은 카톡인데. 동시에 읽음처리 할 수도 없고 일일이 대화방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유일한 방법은 카톡의 배지에 숫자가 표시 안되게 설정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숫자가 없으면 카톡 온지도 모를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중요하면 이렇게 놔두겠어? 에라 모르겠다.


저질러 버렸다. 

분리수거를 마친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TV를 보는데, 그때서야 나는 중대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내의 프라이버시'


이런 미친놈, 니가 강박증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아무리 부부라도 허락없이 스마트폰을 '해킹'해서 엿보다니.. 그것도 범행 흔적을 지우기는 커녕 모든 알림을 없애 놓고 왔으니 이제 뭐라고 하지? 

모른다고 잡아뗄까? 북한 해커의 소행이라고 우길까? 니가 한 거 아니야, 라며 큰소리 칠까? 

사방팔방 머리를 굴려도 해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솔직히 말하고 처분만 기다리자. 그게 목숨이라도 부지할 방법이다. 나에겐 지켜야 할 가정의 평화가 있지 않나. 희생하자. 어차피 이번 생은 욕심없다. 인기소설가가 될 것도 아니고.  


혹시 기분이 언짢지는 않나? 분리수거하느라 땀을 흘리지는 않았나? 온갖 눈치를 보며 처분만 기다리기를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그 사이 스마트폰을 봤어도 열 번은 봤을 것인데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자기 방에서 뭐해?"

올 것이 왔다. 나는 죄인의 몸과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거실로 나갔다. 아내는 스마트폰을 내밀며 물었다. 

"이 티셔츠 어때? 20% 할인쿠폰 왔는데 살까?"


그렇다. 아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애초에 문자와 카톡의 빨간 숫자가 없어진 것을 신경 쓸 정도라면 3자리 숫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는 사실. 그래도 언젠가 들킬 것 자수하는게 낫다는 옳바른 판단을 내렸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저기, 내가 거기 알림들 다 지웠어."


나의 난데없는 고해성사 모드에 아내는 별것 아니란 투로 답했다.


"그래? 뭐하러 그랬어? 또 생길텐데."


우리 아내는 천사인가? 무신경한 건가? 내가 스마트폰을 아무렇게 열람해도 끄덕 없을 정도로 청정하다는 것인가? 

다시 불안감이 덥쳐왔다. 내 아이폰도 보자고 하면 어쩌지? 

볼테면 봐라. 나도 당당하다. 흥! 

게다가 난 알림이 하나도 안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청정하다. 



"A Lannister always pays his debts"

라니스터는 언제나 빚을 갚는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독에는 구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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