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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12. 2024

사주에 불火이 많으면 예술가 팔자? 1

농담들 4 : 웃으면 안 될 이야기

얼마전 공부한 음양오행설과 사주팔자 덕택에 나도 기본적인 사주풀이가 가능해졌다.

놀면 뭐하나, 하는 가벼운 마음에 아들의 사주팔자를 오행으로 바꾸어 봤는데, 

불火이 4개나 있는 것 아닌가?  


불火이 많으면 예술가의 기질이 있어 대성하거나 폭망한다는데.. 불이 3개도 아니고 4개나.  

아내에게 쪼로록.

"사주팔자 이거 완전 구라인듯. 울 아들이 예술가 팔자래! 걔가 어딜 봐서?"

그러나,

"맞는 거 같은데. 어릴 때 장구 치던거 잊었어? 그림도 잘 그렸고."


그렇다. 오래 전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장구 천재였다. 정확히는 국악 천재.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음악교육 하나는 시켜 볼까 해서 집 근처 국악원에 아이를 맡겼다. 

도레미도 잘 모르는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그렇고, 타악기면 유아 스트레스도 풀고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아이는 장구를 잡았고, 알고 보니 국악원의 원장은 인간문화제로 지정된 선생님이었다. 대박.


장구를 배우고 나서 쪼꼬만 녀석이 종이상자를 두드리며 노는 것을 귀엽게 보고만 있었는데, (장구는 시끄러워서 집에서 칠수 없다) 어느 날부터 '덩기덕 덩 더러럭~' 등 휘모리 장단과 같은 각종 장구 장단을 입으로 외우는 것이 아닌가? 


나도 학교에서 배울 때는 국악의 장단이 그리 길 것이라 생각 못했는데 듣고 있으니 10분 이상 장단 외우기가 계속 될 때도 있었다. 덩, 덩기덕, 쿵, 더러러, 몇 개 되지도 않는 의성어를 조합해 만든 장단이 저리 길다니.. 한국말도 명확하게 못하는 넘이 그리 긴 장단을 줄줄 외우는 것을 보고 그저 기특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이 국악 발표회를 한다고 해서 쏘니 6미리 캠을 들고 구청의 강당으로 향했다. 전부다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너의 흑역사를 기록해주리라! 다짐하며.    


아들은 아래 위 한복을 번듯하게 입고 다른 꼬망이들과 함께 앙상블로 민요를 부르며 흥을 돋았다. 부채까지 들고. 폼 나온다. 저거지. 재롱잔치가 따로 없네.


그리고 8인 사물놀이가 시작됐는데 장구를 들고 있어야 할 아들이 꽹과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처음 봤음.

나중에 들었지만 원래 꽹과리를 잡기로 했던 형 어린이가 아파서 못나오는 바람에 대신 잡았다는.. 

아무리 어린이 놀이잔치라고 해도 강당까지 빌려서 하는데 저렇게 막해도 되나 걱정이 됐지만... 


공연이 시작됐다. 아는 분 다 아시겠지만 사물놀이에서는 꽹과리가 제 1 바이올린과 같다.

때앵~ 하는 차분한 울림과 함께 우리 아들 머리 위로 단독 조명이 떨어졌다. 저거 저거 저래도 되나? -걱정 때문에 촬영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고 있음.


하지만 걱정과 달리 신나는 사물놀이의 난타가 이어지고, 그 흥겨움 만큼은 대학로에서 봤던 사물놀이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와, 제법인데. 그런데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어린이가 가장 어린 울 아들이라는 것을. 


이어 장구나 북소리는 잦아들고 꽹과리의 카덴차가 홀로 시작됐다. 공연장의 적막을 오직 꽹과리의 깨갱거리는 소리만이 가르는데 이건 뭐... 미쳤다!

어두운 강당의 두꺼운 공기층을 어린애가 두들기는 꽹과리 소리 하나로 완전히 찢어버리는 것 아닌가? 

내 눈은 자체 줌인 기능을 발휘하며 울 아들의 얼굴에서 눈으로 집중됐는데, 꽹과리의 리듬이 절정에 이를 때 아이의 눈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정말 미친듯이 두드리는데 혼이 쏙 빠지는 듯했다. 


이 같은 감흥은 나혼자 느낀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학부모들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꽹과리의 솔로가 끝나자 전체 사물놀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어나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헐.

그리고 나는 아들의 사물놀이를 하나도 녹화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너무 놀라서. 


모든 공연이 끝나고 국악원 원장(인간문화제)과 인사했다.


"아드님이 국악에 재능이 있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시면 제대로 가르쳐서.."

"네. 네." (뭘 제대로? 설마 국악을?)


집에 돌아와서 나는 심각하게 아내에게 말했다. 


"국악 그만 배우자. 저러다 인간문화제 되겠다."


아내는 내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그래야겠지?"


다음에 계속)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알바 때문에 잠시...  그리고 '국악천재'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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