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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May 30. 2024

세비야 구시가 미로에서 길 잃은 사정

농담들 1 : 웃겼으면 좋았을 것들

코로나 유행 전에 스페인 세비야에 놀러갔을 때였다.

서머타임으로 해가 길어진데다, 밤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현지인들의 분위기에 젖어

우리는 늦게까지 구시가지를 돌아다녔다. 

세비야 구시가지는 이민족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골목길을 좁고 미로처럼 만들어 놓은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둑어둑해지자 우리는 길을 잃고 말았다. 

같은 길만 반복해서 돌기를 여러번. 사람마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사람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게 낫겠다. 체력 고갈될라. 목도 마르고."


곧 지나갈 사람을 기다리는 것도 꽤 시간이 지났다. 어두어지자 관광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밤을 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할 무렵, 2명의 외국인이 나타났다. -그쪽 입장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외국인이다. 


"You lost!"  >> 너네 길 잃었지?

"Yes!" >> 구해줘 제발!


"Me too!" 


외국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자기들도 길 잃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왜 웃지? 미친놈들인가? 그게 왜 자랑스럽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스인이었기에 할 줄 아는 영어가 나보다 적었다. 

우리 둘, 저쪽 둘, 4명의 눈동자가 오고가며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감싸고. 

시간은 한없이 흘러갔다.   


마침내 체력은 한계, 배까지 고팠다. 서있을 힘도 없어 대부분 망연자실 바닥에 주저 앉았는데.

동틀 무렵 청소를 하는 것 같은 현지인이 지나가다 우리를 발견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싱겁게 웃었다. 우리는 구세주를 발견한 것 마냥 모두 좋아했다. 


"Help me. we lost."

"????"


그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영어는 한단어도 할 줄 몰랐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웃기만 할뿐 우리를 도와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뭐 이런데서 길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바보들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바보들인데도.


하는 수없이 우리는 그가 청소를 마칠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그는 이상한지 계속 우리를 돌아봤지만 웃음을 잃지는 않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했는데.. 

아마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등신들아. 난 지금 집에 가는 거야."


그렇다. 그를 따라간 우리들은 구시가지를 빠져나오기는 커녕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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