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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13. 2024

사주에 불火이 많으면 예술가 팔자? 2

농담들 5 : 웃으면 안될 것들

1에서 계속)


상황의 심각성은 진작부터 예고돼 있었다. 우리만 몰랐을 뿐. 

국악발표회가 있기 꽤 전부터, 종이박스 두드리기로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집 장구천재는 집에서 장구를 치게 해달라고 졸랐다. 

마침 장구치는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고, 낮에만 방에서 '조용하게' 치는 것을 조건으로 어린이용 장구를 집에도 하나 장만했다. 

드디어 우리집 시연회. 와, 진짜 잘한다. 국악에 문외한이었던 나도 강약 중강약을 치밀하게 구분해서 때리는 리듬감이 꽤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10분 이상 계속되는 저 장단을 어떻게 다 외운다는 말인가? 


그러나 거기까지! 

발표회에서 꽹과리를 잡고 미친듯이 신명나게 '노는' 모습을 보고 나니 우리 부부는 멘붕에 빠졌다. 

계속 국악을 시켜야 하나, 아직 영어, 수학도 제대로 안 가르쳤는데. 국어도 못하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아들이 잘하는 건 죄다 공부와 거리가 먼 것뿐이었다. 태권도, 장구, 줄넘기 그리고.. 끝. 


"그래, 그만 하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 아들의 국악인생은 그것으로 끝났다. 국악원 원장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래도 음악교육은 이어가야 하지 않나? 고대 그리스에서도 뮤지케 교육은 필수였으니. 실은 초등학교에서도 수행평가 잘 받으려면 악기 하나는 무조건 해야 했다. 

피아노는 너무 많이 해서 경쟁력이 없을 것 같고, 집에다 가져다 놓을 공간도 없고, 비싸고, 뭐 이런 편의적인 이유로 바이올린을 골랐다. 


어린이용 4분의1 사이즈 바이올린이 어찌나 귀엽던지.. 크크.

바이올린 수업이 시작됐고 어느날 퇴근길에 집에서 울리는 기괴한 소리에 나는 기겁했다.


"지금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았어?"

"바이올린 연습 중이야."

"그게 바이올린이었다고? 무슨 곡인데?"

"반짝반짝 작은별이잖아. 그것도 몰라?"

"몰라. 저게 어디 봐서 반짝반짝이야? 차라리 바이올린을 장구처럼 두드리는게 낫겠다."


후회됐다. 그냥 장구치게 둘 것을. 아니면 국악에 재능이 있다고 했으니 거문고라도. 


반짝반짝 작은별이, 그나마 선율을 찾아가기 시작할 무렵 바이올린은 4분의 1에서 2분의 1 사이즈로 바뀌었다. 


"바이올린이 이렇게 비싸?"

"싼 거 산거야."

"2분의 1이 이정도면 원 사이즈는 얼마인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더러운 자본주의. 그 자본주의에 뼛속까지 물든 나. 불가피한 피해자 울 아들.


바이올린은 생각만큼 재미없는지 왜 연습 안하냐, 했다, 거짓말 마라, 해봐라, 싫다 로 이어지는 아내와 아들의 기싸움이 계속됐다. 나는 맨날 바이올린 때문에 싸울 거면 차라리 하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조그만 목소리로, 마음의 소리로)


그러던 어느날, 우리집 초딩이 바이올린 연습 전에 조율을 하는데 아무런 조율기의 도움없이 조율하는 것을 보았다. 


"뭐하냐?"

"조율."

"조율기 안 써?"

"그냥 해도 됨."


설마, 조율이 끝나고 조율기로 맞춰봤더니 내 수준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조율이었다. 뭐냐? 설마 절대음감? 바로 테스트 들어갔다. 으와. 대박!

아내에게 쪼르륵,


"우리 아들이 절대음감이 있어!"

"다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  그럼 너는? 너도 있어?"

"안 해봐서 모르는데."


그래서 정자세로 아들이 바이올린 연습하는 것을 듣기 시작했다. 오, 제법! 낑낑대는 소리로 겨우 반짝반짝 작은별을 연주하던 초딩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곡은 뭐야?"

"모짜르트 잖아. 그것도 몰라?"

"몰라. 비발디도 할 수 있어? 아빠 사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여름."

"(무시)"


그러나 다행히(?) 아들의 바이올린 실력은 또래에서 조금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천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은 바이올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바이올린의 몸통을 턱에 고정하고 뻣뻣하게 서서 로보트처럼 연주하는 스타일이 타고난 자유주의자인 아들하고 안 맞았다.

-하이페츠의 연주를 보라. 정석 바이올리니스트는 거의 로보트처럼 연주한다.  


그리고 얼마 후, 회사 연수에 당첨돼서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1년 살이를 떠나는데.. 

그곳에는 운명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쓰다보니 자꾸 옛기억이 떠올라서 이야기가 늘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웃자고 하는 추억팔이입니다. 제발 다큐로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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