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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r 08. 2016

발목

발목을 만져주지 않는다면 훌륭한 한 수를 낭비하는 것이다

그에게 반한 결정적인 순간은 아무렇지 않게 내 발목을 어루만질 때였다. 그 일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일어났다. 운동화를 신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끈을 제대로 묶지 못해 자주 풀려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몸을 숙이기도 전에 그는 내 앞에 웅크리지 앉아 매듭을 묶어주곤 했다. 데이트하며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조건반사장치라도 장착한 사람처럼 매번 그렇게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워서 내려다보이는 그의 정수리를 토닥토닥해주곤 했는데 갑자기 장난치듯 한 손으로 내 발목을 꽉 쥐는 게 아닌가. 발목이 가는 편이라 남자 손에 가볍게 쥐어지는 게 나의 은근한 자랑거리였는데 그것을 발견해주었다는 게 기뻤다.      


산책을 하던 도중이었기에 성적인 뉘앙스가 없는 담백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욕정이 샘솟았다. 그가 내 발목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졌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사이는 이미 충분히 친밀감이 전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발목을 만져주지 않는다면 훌륭한 한 수를 낭비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꺅꺅거리며 좋아하다 보니 순정만화에 흔히 나오는 손목을 붙잡고 끌고 나와 벽에 밀어붙인 뒤 키스를 하는 것만큼이나 짜릿함을 안겨줄 수 있는 부위가 발목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놓치고 있는 몸의 예민한 부위 중 하나이다.     


섹스라는 게 다채로워지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정상위, 기승위, 후배위 셋만 반복적으로 해대는 관계가 있다. 그들은 곧 권태로워진다. 그럼에도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불만만 토로한다. 새로운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믿으며 마주한 상대에게서 지루함을 느낀다. 어느 한쪽을 탓하기 힘든, 경직된 섹스를 하는 두 사람에게 섹스는 즐거움보단 어떤 의무일지도 모른다.   

   

정상위 하나로도 다리를 세우거나 다리를 비틀면 전혀 다른 자극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몸에 잘 맞는 자세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움직임을 주고 요란해 보일만큼 다양한 체위를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여자가 누운 채로 다리를 남자의 가슴팍이나 어깨에 올린 채 지탱하며 이뤄지는 체위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남자들은 여성의 발목을 붙잡게 된다. 고정되어 뉘어진 상체와 다르게 하체는 발목을 잡아서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높이를 조절하거나 좀 더 다리를 벌리게 만들 수 있다. 남자는 발목을 조타 장치처럼 이용하면서 섹스의 주도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단지 발목을 잡는 것 하나만으로도 섹스는 능동적이게 변한다.    

  

평소엔 누군가가 잘 만져볼 일 없는 곳을 성적 행위의 순간에 자극을 받는다면 감각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저 발목을 꽉 붙잡는 것에 멈추지 말고, 아킬레스건이나 어린 듯 단단한 복사뼈에 입을 맞춰주는 다정함을 드러내는 것도 섹스 도중 감동을 만들어내는 요소가 되어준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는 탓에 너무나 연약하고 가녀린 발목에 하루의 피로가 몰리게 된다. 서로의 발목을 쓰다듬는 일은 서로의 노곤함을 다독이는 일이기도 하다. 스킨십이란 성적 자극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마음으로 매만져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마음에 자연스럽게 합일의 욕망이 샘솟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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