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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r 26. 2016

뼈를 매만지는 것은 확고함을 어루만지는 기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보는 날이 있다. 섹스 후에 일어난 미세한 몸의 변화를 살펴보며 전날 밤의 일을 복기하곤 했다. 영역표시를 하듯 섹스의 흔적을 서툴게 남기는 남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나눈 사이는 반길 수밖에 없다.


남자의 취향이 확고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키가 커서 체격이 있어 보인다 싶어도 대부분이 마른 남자였다. 마른 몸에서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살갗에 드러나는 뼈의 굴곡이었다. 내 몸에서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뼈를 상대의 몸에서 보이는 게 좋았다. 알몸의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툭 튀어나오는 뼈를 매만지는 것은 확고함을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를 탐하는 일이 고조되어 움직임이 격렬해질 때마다 남자의 뼈가 내 몸에 강하게 부딪혀오고 그것은 멍 자국을 남기곤 했다. 쉽게 멍이 잘 남는 편이어서 허벅지 안쪽이나 팔의 연한 살에도 뼈의 모서리에 부딪혀 푸르스름한 흔적이 남았다. 그 순간의 아픔은 증명처럼 새겨지곤 했다. 서로를 견딜 수 있는 사이. 골반 뼈로 서로를 지그시 누르는 순간은 결코 고통일 수 없었다.


뼈대를 세우는 일처럼 남자의 튼튼한 뼈를 확인하는 건 관계의 굳건함을 믿는 일이었다. 등을 돌린 채 잠든 남자의 견갑골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릴 때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안도감이 느껴지곤 했다. 나를 꼭 끌어안을 때 어깨를 감은 팔의 뼈가 누르는 힘에 안심하고 평정을 찾았다. 


남자의 뼈에서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존재했다. 마주 앉은 남자의 뼈에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웠다. 브이넥으로 파진 티셔츠 사이로 살짝 보이는 쇄골의 윤곽에 묘한 흥분을 느끼곤 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티셔츠 위로 드러나는 견갑골의 움직임을 바라보기 위해서 남자 뒤에 서서 지켜보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땐 당장 그에게 달려들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야 했다.


뼈에서 분비되는 조골세포 호르몬인 오스테오칼신은 뼈가 칼슘을 붙잡고 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생산하는 것도 도와준다. 뼈가 튼튼한 남자는 정자의 생식력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남자의 뼈에서 느껴지는 강인함에 매료되는 것은 본능적인 간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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