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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pr 12. 2016

가슴

그는 나에게 최적화하기를 실행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어릴 때 하던 연애는 심장이 막 터질 것 같거나 쪼일 듯이 아팠거든. 뭔가 일이 생기면 심장부터 쿵 떨어질 것 같았고. 그렇게 혹사시켰으니 심장이 고장 날 것 같았는데 반칠십을 넘기자마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난 거야. 이유 없이 심장이 빨리 뛰기도 하고, 지금도 그래!”


그와 마주 앉아서 시무룩하고 불편한 기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얘기를 듣던 그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으로 치우친 가슴 쪽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지금까지 내 몸에 손을 한 번도 댄 적이 없는 사이였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야외의 카페테라스에 앉아 있어서 그 상황이 사뭇 당황스러웠다.


내가 놀라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엔 그의 행동은 자연스러웠고 손바닥에서 사심이 느껴지기보다는 전해지는 온기 탓에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내치지 못하고 가만히 그의 손이 내 심박을 느끼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심박 안 느껴지는데?”

종종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심박이 요동치는 게 느껴지는데 심장 부근에 손을 대면 심장이 있는지 조차 느껴지지 않는 일. 내가 더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자 그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랑 있는데 심장이 빨리 뛰는 건 당연하지.” 

농담인 걸 알면서도 그 말에 안심이 되어 피식 웃었다.


“이렇게 어딘가 아프기 시작하니까 야외 활동도 힘들어. 금방 피곤해진다니까.” 

“그럼 쉬었다 갈까?”

이번에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갑자기 유턴을 하고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모텔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정색하며 무슨 짓이냐고 하기엔 호감이 전혀 없는 상대도 아니었고 조금 전의 일로 아닌 척해도 성적 긴장감 같은 게 생겨서인지 그가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휴일 오후 모텔에서 함께 뒹굴어도 나쁘지 않을 상대의 능청스러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목적이 분명한 장소에서 쭈뼛거리고 싶진 않았다. 나를 욕망하는 태도에 휘말리고 싶어 졌다. 그럴만한 상대, 그럴만한 상황이었다. 그는 내 심장에 손을 올려놓을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감싸 안고 키스를 시작했는데, 알고 지낸 1여 년의 시간 동안 내가 여자로 안 느껴지는 건가 혹은 저 남자 게이가 아닐까 싶었던 의문을 종식시킬 그런 입맞춤이었다. 


여자의 가슴에만 집중하는 건 애송이 같은 태도라고 말했지만 그건 가슴의 크기로 여성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자신의 애정결핍을 가슴을 통해서만 풀려고 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이지, 키스를 하면서 슬며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적절한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어루만지는 것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행동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에만 취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키스의 강도와 알맞게 손의 악력을 조절하는 능력은 남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자기 쾌락에는 객관화되어 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도구로 사용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 자체에 심취해 있는 게 아니라 내 반응에 따라 손을 움직였다. 말로 어떤 지시나 요구를 할 필요 없이 나의 호흡과 신음의 정도에 따라 내 몸이 원하는 감각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행동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남자들은 여자의 몸에 무지해서 일일이 가르쳐야 하고, 나름의 경험을 쌓았다고 자부하는 남자들은 내겐 맞지 않는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해서 그걸 교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최적화하기를 실행한 사람처럼 움직였다. 그런 가상한 노력을 지켜보며 그에게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이 되어 줄 필요가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손을 느끼며 섬세하게 반응했다. 


애무에서 흥분도가 높아질 때 남자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여자들의 고조되는 신음에 따라 애무하던 강도나 속도를 갑자기 높이는 것이다. 현재의 속도와 강도가 만들어낸 흥분이라는 걸 모르고 더 세게 빠르게 해버리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좋아지기보다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손끝으로 유두에 자극을 주며 만져나가며 내가 만족스러워하며 신음이 터져 나온 순간의 강도를 잘 유지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몸 안에서 뭔가 치솟는 느낌이 올라오려는 순간에도 그 정도를 지켜나갔다.  


뭔가 대단한 녀석에게 내 몸을 맡겼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을 만지는 손길만으로도 그는 내게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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