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정 Apr 28. 2016

겨드랑이

누군가의 냄새가 그립다는 건 결국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가 다녀간 뒤 침대에 늘어진 채로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었다. 그는 이제 없다. 우리는 앞으로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상황이었다. 조금 전까지 들뜨고 황홀하게 치솟았던 기분은 홀로 남겨진 뒤 곤두박질쳐 바닥에서 처참하게 비애를 뿜어내고 있었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쓸쓸해졌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침대 시트를 벗겨내고 이불과 베개 커버도 다 걷어서 세탁기에 넣어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가 입고 있었던 티셔츠는 차마 던져 넣지 못했다. 그의 체취가 남은 이 티셔츠만이 이곳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것 같았다.


그의 향수를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들은 포근하고 안정감을 주는 따뜻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안기면 우선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가 그리웠던 냄새를 코 안으로 가득 밀어 넣었다. 그러면 그라는 실체가 선명해졌다. 냄새로만 존재하던 그가 이렇게 내 눈 앞에 있구나. 내가 안고 만질 수 있구나.


페르시아어로 ‘부야’라는 단어는 냄새, 그리움, 사랑이라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냄새가 그립다는 건 결국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새끼 간에 체취를 옮김으로써 애착을 형성한다. 사람도, 연인도 마찬가지다. 서로 간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중요한 기능을 하는 건 만질 수도 없는 후각이다. 실체도 없는 기운이 은밀한 상황의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마음에 들지 않은 체취를 가진 사람과 침대에 뛰어들 여자는 없다.


허리하학적인 체취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에는 아랫도리에서 풍기는 냄새보다는 겨드랑이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체취에서 남성성을 느끼곤 한다. 물론 청결을 잘 유지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맞는 페로몬이 작동할 때를 의미한다. 아무나 겨드랑이를 들이민다고 성적 충동이 자극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내게 겨드랑이를 쓰다듬는 일은 다리 사이에 손을 밀어 넣는 것보다 더 깊고 신뢰하는 사이임을 의미했다. 체취를 만들어내는 그곳을 빠뜨리지 않고 애무하고 체취를 기억하겠다는 것은 관계의 유지를 의미했다. 욕정에 사로잡혀서 그날 하루만이라는 전제를 두고 짐승처럼 서로를 탐하는 사이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훗날 떠오르게 될 무언가를 새겨두지 않는 편이었다.


냄새는 만질 수 없는 분위기일 뿐이지만 실체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만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한다. 강아지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상대의 냄새를 수집하려고 들 때의 나는 분명 그를 사랑하는 것이었고 그런 내 모습은 당연히 사랑스러워 보였다. 강아지를 쓰다듬듯 나의 정수리를 쓰다듬어주는 그의 손길에서도 느껴지는 건 그런 감정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