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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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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해보는 게 어때서?

한번 해보는 게 뭐가 어려워? 두 번, 세 번 이어지는 게 어렵지. 섹스가 문제라고들 말하지. 섹스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너무 비겁한 말 아니야? 섹스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섹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네가 문제인거야. 네가!


“나랑 자볼래요? 나는 그쪽이랑 하고 싶은데.”

여자가 이렇게 말하면 성공률이 높을 것 같지? 아니야. 남자들이 발정난 개도 아니고 기회만 있으면 섹스하려고 들지도 않는다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엔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게 아니라면 알게 되거든. 섹스란 간파당하는 일이라는 걸. 아니 사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을 거야.


- 그래서 한 번 자고 나면 연락을 끊어버리는 애들 있잖아. 분명 원나잇일 게 뻔한 데도 원나잇은 아니길 바라면서 휘말렸다 하룻밤으로 끝나버린 관계들. 그런 경우에 여자는 지나치게 괴로워하잖아. 도대체 어떤 결심으로 그들과 자기로 했는지 모르겠고, 아니 대체 뭘 기대한 건지 이해도 안 되는데 그러고 나서는 후회하더라고. 그럴 일이 아니거든. 그런 관계에서 내가 훼손될 리 없잖아. 그건 내 매력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도망친 남자들의 비겁함에 있는 걸. (그러니까 섹스하기 전에 내가 왜 이걸 하려는 건지, 이 섹스를 통해 무얼 얻고 싶은 건지 생각이란 걸 하라구. 물론 섹스로 그걸 얻을 수는 없겠지만.)


다시 원래 하려고 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남자들도 두려운 거야. “나는 너를 사랑해. 너 아니면 못 살겠어.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해.” 이런 마음으로 자신에게 부딪혀 오는 여자가 아니라면. “당신이 좋아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볼을 붉히며 어떤 결정권을 자신에게 넘기는 여자가 아니라면 말이야. 남자들은 섹스와 자신을 너무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 섹스 후에 거절 당하는 건 그들에게 오히려 더 치명적인 거야. 그리고 알고 있지. 어떤 여자들은 섹스를 통해 영리한 판단을 한다는 것을. 그러니 섹스가 문제인거지! 섹스를 하고나면 복잡해지는 거라구. 안하고 살고 싶은데 결국 해야 하잖아. 자기반성.


“나랑 연애를 하자는 말인가요?”

남자가 묻더라구. 글쎄, 하면 좋겠죠. 그런데 그건 자보고 나서 결정해도 될 것 같아요. 연애라는 게 나 혼자만의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 당신의 의사도 중요한 거잖아요. 섹스를 해보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공유한 시간과 서로 나눈 솔직한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연애를 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섹스까지 해봐야 확실해질 것 같은데.


이런 나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이어지는 뻔한 대답 있잖아. “H씨랑은 오래 보고 싶으니까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나 때문에 사정하는 꿈을 꿨다고 넌지시 말한 건 남자였어. 쿠퍼액이 나와 미끌미끌해진 페니스를 만지다가 어느새 왈칵 왈칵 끈적한 것이 쏟아져 나왔다며, 그런 재미도 없는 꿈 얘기를 해버렸잖아. 정액만 쏟아낸 게 아니라 나와 좀 더 친밀해지고 싶은 에로틱한 욕망도 흘린 거 아냐?


그래서 돌려 말하지 않은 건데 그렇게 거절당한 게 실은 처음이라서, 상대가 거절 할 줄 몰랐다는 게 참으로 오만하긴 했지. 나도 좀 당황스러웠어. “그래요? 그럼 집에 갈래요. 안녕.” 카페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지. 나는 기쁨을 아는 몸만 가진 게 아니라 부끄러움도 아는 여자라고.


그런데 그가 따라 나오며 우리는 좋은 친구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고, 섹스는 하면 복잡해지고 이런 저런 변명을 계속 늘어놓는 거야. 꺼져. 꺼지라구. 지금은 날 혼자 내버려두라고. 네가 정말 내게 좋은 친구면 내가 다시 너를 찾겠지. 너랑 이야기가 하고 싶어지겠지. 지금은 아니라구. 정말 도망치듯 거리로 나가 택시를 탔는데 전화도 계속 해대더라구.


섹스를 하고 나서 관계가 끊어지는 게 두렵다면, 하지 않아서 끊어질 수 있는 관계도 걱정해야지. 어차피 끝나고 못 보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게 아쉽다면 섹스라도 해보는 게 경험치를 쌓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물론 뭐 이건 내 생각. 내 입장이지.


어쨌거나 남자가 바라는 게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는데 대신 어이없는 소문을 들었지. 자기보다 열 몇 살이나 어린 여자애에게 내가 자신을 너무 좋아해서 곤란했다는 둥, 자기를 좋아하면서도 어린 남자애들이랑 어울리며 헤프게 굴었다는 둥 절반은 맞는데 절반은 틀린 얘기를 마구 해버렸더라구.


그런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줄 알았던 걸까? 하하하. 너무 웃음이 나고 화는 조금 더 많이 나서 바득바득 갈아 버려도 시원찮을 기분이긴 했어. 사이가 틀어지면 그렇게 굴 사람이라는 걸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더니 뭐 아예 태어나길 글러먹은 새끼잖아. 그런 놈에게 내 상냥한 귀를 내어주고 섹스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니. 나야말로 한동안 반성.


근데 어땠을 것 같아? 내가 그 남자랑 자봤다면 말야. 너무나 뻔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그가 날 만족시키지도 못했을 거고, 나는 그의 가증스러움도 알아차렸을 거야. 응. 안 해봤고 지난 일이니까 그렇게 확신해보는 거지. 일종의 정신승리. 하지만 이번엔 이렇게 못되게 굴어도 될 것 같아. 그와는 남자 여자의 그런 원초적 본능보다는 영역을 침범해 온 수사자와 암사자의 대립 같은 거여서 어떤 색정적인 그림이 잘 그려지진 않았어. 그러기엔 그의 육체적 매력도 별 볼일 없었구말야. (사악했나. 이건? 이 정도로 뭘. 난 덕분에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한테 그 남자 조심하라는 경고와 조언까지 들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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