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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1. 2016

D

꼭 짝을 짓고 연애를 해야 하는 건가


“우리가 만난 것도 벌써 5년이 다 되어 가는 거 알아? 신기해. 그렇지 않아?”

그런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일일까? 과연? 나는 이토록 가망 없이 망가진 게 5년이나 된 건가 싶어 아득한 기분이었다. 사랑을 믿지 않게 되어버린 게, 사랑 없이 무표정한 마음으로 남자와 몸을 섞은 게 5년이나 되었다고?


남자는 들떠 보였다. 그동안 왜 그렇게 바빴냐며 궁금하지도 않은 나의 안부를 물었다. 해줄 대답이 없었다. 섹스 스케줄을 맞추는 건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각자의 사정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쪽의 사정에는 호르몬까지 가세한다. 남자는 생리 중일 때 섹스 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한 달에 일주일을 제외하고 3주를 두고 둘의 가능을 조절해야 했다.


나는 가임기와 배란기에 윤기가 흐르고 아름다웠지만 그 시기에는 섹스를 하지 않았다. 가임의 가능성은 늘 열려있는 법이지만 가장 위험한 그리고 최고조로 발정이 돋아난 그때에는 어떤 남자도 안지 않았다. 그러니 남은 3주에서 닷새가 또 줄어든다.


그러면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정도의 빈도로 남자와 만났다. 호텔 로비에서 서먹하게 인사를 하고 프론트 데스크에 어색하게 서서 체크인을 했다.


남자와 나누는 섹스가 만족스러웠던 적은 손에 꼽혔다. 하지만 섹스를 하지 않고 잠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채우는 게 아니라 몸을 메꾸는 작업이었다.


나는 왜 이성애자인 걸까? 그런 생각이 최근 자주 들곤 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한창일 때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그러니 남자 만나지 말고 여자 만나세요.’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레즈비언 선언하는 일에 대해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아니라 이성애자가 돌연 나 레즈 하는 그런 일 말이다.) 정치적으로 남성을 관계에서 배제하는 것도 페미니즘 운동의 방법론 중 하나겠지만 나처럼 전형적인 이성애자, 그러니까 사랑도 질렸고, 남자에게도 실망해버렸지만 그럼에도 남자와 섹스 하는 일은 필요한 경우라면 그 말이 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대학생 때 그런 이유로 커밍아웃을 했던 선배를 본 적이 있다. 여성스럽게 나를 꾸미고 그 여성성이 남자들을 자극하는 요소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좀 더 페미니스트적인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내게 와서 충고를 했던 선배였다. 과내에서 연애가 끝장나고 온갖 상처를 다 받은 사람처럼 굴다 남자 따윈 믿을 수 없다며 여자를 만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땐 뭐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른 학과 남자가 좋아져서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신의 여성성을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부각시키려고 부단히도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선배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선배는 자신이 뭐라고 내게 충고할 자격이 있다고 믿은 걸까?


그런 해프닝을 겪고 나서는 타고난 혹은 뒤늦게 깨달은 성정체성도 아니면서 단지 남자가 싫다는 이유로 여자에게 도망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지 않나. 꼭 짝을 짓고 연애를 해야 하는 건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남자가 아니면 여자라도 일대일 관계로 묶여서 누군가의 연인이 되어야만 안심할 수 있는 건가? 남자를 택하지 않고 비연애자로 지내는 것으로도 의도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나. 꼭 그렇게 남자가 아니면 여자여야 하는 건가? 그런 태도로 레즈비언이 된다면 원래 성적 지향이 여성인 다른 여성에게 민폐 아닌가?


나 역시 이런 고민을 두서없이 쏟아냈더니 어떤 이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힐난하며 욕보이려고 애를 쓰더라. 그러든지 말든지 이지만, 그 역시 자신은 마치 하나의 결함도 없는 대단한 페미니스트라도 되는 건지 완장을 차고 페미니스트 감별사 놀이를 하는 꼴이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고 직접 말해주거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는 과정도 없이 마치 내가 자신의 적이라도 된 것처럼 비난하려는 오만한 행동을 보니 그건 페미니스트 이전에 인격적 결함 아닌가 싶었다. 망상적으로 굴면서 그렇게 뒷담화를 할 거면 들키지 않을 정도로 영리하기라도 하던가 싶더라.


어쨌든 일련의 일 덕분에 내 성정체성이 너무나 이성애자임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만 정말이지 요즘 같은 때에는 나는 왜 이성애자인가 싶을 정도로 회의가 밀려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섹스를 정기적으로 필요로 하고 그들과 어떤 정서적 교류도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 같은 것도 부르지 않아. 오히려 남자가 섹스를 하다 흥분해서 내 이름을 부르면 불쾌함과 당황스러움 때문에 그의 뺨을 때리곤 했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겠지만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와 어떤 틈도 없이 겹쳐진 채 딱 달라붙어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이런 걸 계속 해나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지? 그런 관계들로 여럿을 채워 섹스 없이 잠드는 밤이 하루도 없게 만드는 게 무슨 만족감을 내게 줄 수 있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이성애자 여성에게 내려진 가혹한 저주. 아아. 나의 저주를 풀어줄 구원자가 존재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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