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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Dec 18. 2015

주객을 전도하다

[酒力하다] 진토닉 Gin & Tonic


나의 첫 번째 책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의 절반은 진토닉으로 이뤄졌다. 낮에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어두워지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바에서 진토닉을 마시고 사람들의 연애사를 듣거나 연애 놀음을 즐겼다. 무모하게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잘 써지진 않았다. 나의 경험을 재구성한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잘 짜인 설명문을 만드는 것인데도 글을 쓰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진토닉의 청량감으로 그날 그날 쓰기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밤을 보냈다.


일주일이 있다면 7일을 바에 들릴 정도로(물론 일요일은 휴무였다) 어느새 단골이 되어 버린 그곳은 와인바로 시작했지만 어째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바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진토닉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고객의 성향을 고려하여 진토닉을 특화하면서 바 사장님은 다양한 프리미엄 진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여름에는 특유의 쓴 맛이 상큼한 봄베이사파이어 진이나 시트러스 계열의 풍미가 강한 탱커레이를 베이스로 한 진토닉을 자주 마셨고 겨울에는 고든스 진에 오렌지를 넣은 것이나 핸드릭스에 로즈티를 우려내서 만든 진토닉을 마시곤 했다.


진토닉은 특별한 칵테일 제조 도구 없이 얼음과 진과 토닉 워터 그리고 첨가할 가니시만 있으면 손쉽게 만들 수 있고 자기 취향대로 비율을 조절할 수 있으니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칵테일이다.     


쉽기는 하지만 진토닉은 진과 토닉 워터의 종류 그리고 배합 비율에 따라 다양한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진은 주원료인 주니퍼베리를 주요 풍미로 가지고 있지만 각 제품마다 혼합되는 카다멈(생강과의 식물 씨앗), 계피, 자몽 껍질, 레몬 껍질, 오렌지 껍질, 감초, 쿠베브(후추과의 향신료) 등 식물과 허브류를 첨가하여 다양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보타니스트 진은 식물학자(botanist)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멘톨, 애플민트, 코리앤더(고수) 등 22가지 식물 추출물 에센스를 함유하고 있기에 가니시로 과일류를 첨가하는 것과 달리 허브를 매칭 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진 브랜드 고유의 맛과 향을 파악한 뒤 그 맛에 어울리는 가니시를 첨가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가진 고유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하이볼 글라스의 진토닉이 정석이라면 (물론 여전히 언더락 잔에 진토닉을 내놓는 곳도 있다.) 요즘의 진토닉 트렌드라면 벌룬(와인) 글라스에 화려한 가니시의 비주얼을 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유행을 이끌어낸 것은 바가 아니라 스페인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엘불리(El Bulli)였다고 한다. 손님에서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마친 셰프들은 진토닉을 즐겨 마시곤 하던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진토닉을 와인잔에 담아내면서 스타일에 혁신적인 변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참고로 벌룬 글래스에 담아내는 스페니쉬 진토닉을 유행시킨 엘불리는 2011년에 문을 닫았다.)


이런 유행에 발맞춰 봄베이사파이어 진은 프리미엄 버전인 스타오브봄베이를 출시하면서 브랜드 특유의 사피어이블루 빛을 가진 전용 벌룬 글라스를 선보였다. 블룸 진 역시 병목 라벨에 그려진 고혹적인 문양을 하이볼과 벌룬 글라스에 그대로 옮겨 놓은 전용 글라스를 선보였고 더 나아가 블룸진 전용 토닉워터도 함께 출시하였다.

 

토마스 헨리, 노르딕 미스트와 같은 프리미엄 토닉워터의 등장과 함께 진토닉 역시 더욱 진화하기 시작했다. 토닉워터와 진을 섞은 진토닉은 전 세계적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즐기는 대중적인 칵테일이다. 진의 70%는 진토닉으로 소비되는 만큼 진토닉에 대해서는 풀어놓을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토닉 워터’에 집중할까 한다. 그리하여 주객의 전도!


그림 . ㄱㅎㅇ  -   토마스헨리가 좀 젊어졌네요. 전 좋습니다



애초에 진토닉이라는 칵테일의 기원을 살펴보면 토닉 워터를 무시할 수가 없다. 17세기 영국은 인도에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면서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다. 18세기 인도 내부 반란으로 무굴제국이 쇠퇴하자, 영국은 인도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지배권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도의 무더운 날씨와 말라리아로 영국군이 하나 둘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말리라아 예방 및 자양강장에 효과가 있는 키니네(Quinine, 꼭두서닛과의 나무껍질을 건조한 키나 껍질) 워터를 마시게 할 필요가 있었다. 키니네는 쓴맛이 아주 강했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영국 군인들은 향이 강한 자국의 진과 섞어서 마시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진토닉의 유래가 되었다.


이것이 영국에 전해지면서 레몬, 오렌지, 라임, 키니네(규 군피의 진액) 껍질 등에다 당분을 배합하여 만든 토닉워터가 19세기에 개발되었다. 무색투명하고 탄산을 포함한 토닉워터는 쓰고 시큼한 맛이 난다. 이후 키니네가 독성을 함유하고 있고 용혈 작용을 일으키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대부분 키니네 향만 첨가되어 생산되고 있다. 미국, 유럽, 호주 등지에서는 키니네가 첨가된 토닉워터가 판매되기도 하지만 그 함량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토닉워터에는 키니네 향만  첨가되어 있을 뿐 키니네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토닉워터를 칵테일의 부재료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외국에서는 자양강장제로 쓰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토닉워터 자체에 과일시럽을 섞어 소다수로 판매하기도 한다. 사이다보다 달지 않은 탄산음료이다.


토닉워터의 종류가 빈약한 한국은 진로에서 만드는 토닉워터나 코카콜라사에서 제조하는 캐나다드라이 이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진토닉은 진과 토닉의 비율이 1:1에서 1:2로 토닉워터가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토닉워터의 맛도 진토닉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토마스 헨리’의 등장은 새로운 진토닉의 맛을 기대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기존의 토닉워터는 단맛이 강한 편이기에 드라이한 진토닉을 즐기지 못해 못내 아쉬운 마음은 토마스 헨리가 달래 줄 것이다. 토닉워터의 변화만으로도 진토닉의 차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느껴본다면 진만큼이나 토닉의 중요성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 토닉워터는 354mL 정도에 약 130kcal의 열량이 들어 있으니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수는 없다는 것이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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