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力하다] 패트론 patron
오늘 내가 당신과 데낄라를 마시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음껏 취해보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다음날 낯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음을 뜻한다. 덧붙여 한 가지 필요한 요소는 패트론이어야 한다는 것.
영화 <데드풀>에서 위즐이 운영하는 용병들을 위한 바에서 웨이드 윌슨이 술을 시키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데드풀이 되기 전, 바에 있는 용병들끼리 싸움을 붙이기 위해 오럴섹스라는 의미를 가진 블로우잡(Blow Job)을 주문한다. 이후 웨이드 윌슨은 암이 발병하게 되고 치료를 위해 비밀 실험에 참여한다. 불사의 재생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유전자가 변형되는 과정에서 전신의 피부가 흉측하게 일그러져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같은 얼굴을 가지게 된다. 바네사를 찾아가 보지만 길거리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자신의 얼굴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보며 차마 그녀 앞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다. 괴로운 심경으로 위즐의 바에 들어와 주문하는 것이 ‘데낄라 쓰리샷’ 덧붙여 ‘패트론’을 주문한다.
그렇게 주문한 술을 마시는 장면도,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도 없다. 두 번째로 술을 주문하는 씬은 술을 마셔야 할 정도로 괴로운 심경을 나타낼 뿐 그다지 중요한 장면도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들렸다. 패트론, 데낄라를 주문하면서 패트론이라고 정확히 요구하는 목소리를! 심지어 투샷도 아닌 쓰리샷이었다.
마시고 죽겠다고 생각한다면 데낄라처럼 좋은 술도 없다. 그랬다.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면 역시 데낄라다. 심지어 패트론이다. 그걸 이해하는 슈퍼히어로라니!
데낄라 브랜드 중 하나인 패트론은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다. 최상급의 데낄라로 분류되는 만큼 이름값을 하는 술이다. 데낄라는 용설란이라고 부르는 블루 아가베를 원료로 만드는데, 51%만 넣어도 데낄라로 분류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호세 쿠엘보가 51%의 아가베를 이용해서 데낄라를 만들고 있다.) 패트론은 100% 블루 아가베만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마시고 죽자고 들이부어도 다음날에는 숙취 없이 되살아 날 수 있다. (재생 능력을 가진 데드풀처럼)
패트론의 병에는 꿀벌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에 풍기는 부드럽고 달콤한 꿀의 맛과 잘 어울리는 시그니처이다. 패트론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까지 더해져 고급스러운 맛과 향을 갖춘 완벽한 데낄라다.
데낄라는 그 숙성 과정에 따라 증류한 그대로 담아내는 블랑코, 60일 이상 1년 미만의 기간 동안 숙성하는 레포사도, 1년에서 3년 사이의 숙성을 거쳐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고급스럽고 깊은 향과 맛을 지니게 되는 아네호로 구분된다.
자연 발효와 증류 이후에 어떤 작업도 더해지지 않은 블랑코는 데낄라 본연의 톡 쏘고 화끈거리는 아가베의 맛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지만 특이한 향 때문에 소금과 라임을 먼저 먹어 데낄라의 향을 상쇄시키곤 한다. 블랑코로 분류되는 패트론 실버는 패트론 시리즈 중에서 가장 저렴하지만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숙성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음에도 맛이나 향에 전혀 문제가 없는 데낄라다.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목 넘김이 좋게 부드럽고 달콤하다. 패트론은 안주 없이 그 자체로 즐겨도 충분하다. 소금이나 라임 같은 걸 번거롭게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데낄라다.(패트론은 자체의 맛을 즐기기 좋은 술인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패트론을 먹는 정석이라는 정해져 있는 술은 아니다. 소금과 라임을 곁들여 먹는다고 패트론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비싼 술의 맛 자체를 그것이 해친다고 경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즐겁고 신나게 먹자고 마시는 술이다. 태어나서 어제 처음 패트론 먹은 사람처럼 엄숙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패트론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데낄라 제조 과정이 수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특히 패트론의 독특한 병 모양도 그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유리 세공업자가 수작업으로 만들어서 각 병마다 울퉁불퉁한 질감이 다르다. 제품의 시리얼 넘버도 수제로 기입한다.
패트론은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패트론을 마신다는 흥분감에 넘쳐 보디샷을 시도하려고 하는 남자들은 언제나 피곤하다. 테낄라의 에로틱한 지점은 데낄라를 마시는 여러 가지 방법(슬래머, 슈터, 보디샷) 중에 ‘상대방의 몸에 레몬즙과 소금을 뿌리고 핥아먹고 원샷을 한 후 상대방이 입에 물고 있는 레몬이나 라임 조각을 빨아먹는’ 보디샷 때문일 텐데, 레몬즙을 상대의 어떤 신체 부위에 뿌릴 것인가에 따라 상당히 유혹적이고 에로틱한 술이 되곤 한다. 흥미로운 건 멕시코에서는 이런 방법이 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우스울 수밖에 없는 지점인데 그럼에도 남자와 단둘이 데낄라를 마시다 보면 항상 보디샷을 시도하려고 든다. 데낄라를 잘못 배워 가지고 말이다.
패트론을 8잔쯤 스트레이트로 마셔서 아무리 정신없이 취한 상태라고 할지라도 밀폐된 공간에 두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바나 클럽에서 그런 시도를 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만나면 취기가 확 달아나버린다. “다음엔 네 손등이 아니라 목덜미를 핥을 거야.” 에로틱한 시도는 좋다. 분명 흥분되는 말이다. 그러나 야한 짓이라는 건 정말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켜보는 다른 눈들이 존재하는 특히 나의 단골 바에서 취기를 빌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무례하다. 우리는 그렇게 추한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술기운이 주는 무모함에 휩쓸려 쓸데없는 용기를 내는 남자들은 패트론을 마시는 순간을 망쳐버리기 십상이다. 가만히만 있어도 절반은 갈 텐데, 오늘 밤은 불태울 예정이었다가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면 이성의 끈을 붙잡게 된다. 정색하게 만든다. 패트론으로만 가능하다면 좋으련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함께 마시는 사람이다. 사람이 진상 짓을 하면 아무리 훌륭한 술도 아까워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