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 말미암아 시도될 각종 변태들은 우리 생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
우리는 권태로워지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권태로 말미암아 시도될 각종 변태들이 바닥만 기어 다니다 끝나는 게 아닌 우리의 생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서로가 가진 의외성에 대한 패턴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우리 둘은 현재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통감할 수 있었다. 내 몸 위에 올라와 있는 저 남자의 다음 행동은 너무나 뻔했고 그에 맞춰 내가 취할 자세나 표정, 신음을 그 역시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는 시무룩함을 심각함으로 위장한 채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먼저 화가 치밀었다. 저 말의 의도는 명백했다. 이 권태로움은 상호 공감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한쪽의 고군분투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마치 새로운 여자가 된 듯한 자극을 주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건 진짜 새 여자라는 무언의 지속적인 압박.
며칠 전부터 해대던 헛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순간이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룸에 갈 때 나는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고 돈 낭비라고 생각하며 빠졌었거든.”
돈 낭비 맞고, 무슨 소용인가 싶은 짓도 맞고, 성매매를 해야 할 정도로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도 아니면서 저딴 소리를 애인인 내 앞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인 건지, 내가 이딴 사고 체계를 가진 인간과 1년이나 몸을 섞었단 말인가 싶었다.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이쪽의 불편함을 드러냈더니 곧 눈치를 채고 입을 다물었지만 낯선 여자와의 일탈로 기분을 전환한 뒤 심리적 안온함은 내게서 채울 생각이라면 그 관계를 유지할 마음은 없었다.
우리가 왜 권태로워졌는지 그 과정은 떠올리지도 못한 채 내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건가? 그와 보낸 수많은 밤과 낮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같은 속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남자는 시각적 동물이라고 하니 란제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걸 제대로 눈여겨본 적이 있었을까? 그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것들을 벗겨내기 바빴고 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했을 뿐이었다.
뷔스티에와 가터벨트, 화려한 스타킹, 교복 풍의 체크 치마, 그가 유난히 자극적으로 받아들였던 흰색 셔츠 안에 비치는 새하얀 레이스 브래지어, 그를 자극하기 위해 했던 장난스러운 행동들,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해서 보여준 스트립 댄스, 코스모폴리탄의 카마수트라 가이드북을 꺼내 우리가 해보지 않은 체위를 함께 체크해 보면서 깔깔거리고, 그를 묶거나 눈을 가려 다른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보기도 하고, 침대 안에서 결코 지루할 틈이 없게 매번 새로운 걸 시도해 보는 건 내 쪽이었다.
권태와 마주한 그의 태도를 보니, 침대에서 수줍어하거나 조신한 척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의 이면을 놀라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해주었던 그를 나는 지나치게 긍정하고 높게 평가해주었구나 싶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과 그가 넌지시 바랐던 것들을 할 만큼 한 뒤에 나도 매번 새로운 걸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도 바빠져서 규칙적이고 일상적이며 뻔한 섹스를 비단 얼마간 지속했을 뿐이었다.
넷플릭스, 정크푸드와 함께 연휴를 보내면서 드라마 <이지>의 첫 에피소드를 보다가 지나간 이 옛일이 떠오를 정도로 욱한 기분이 들었다. 딱 맞는 상황은 아니지만 권태든, 섹스리스든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남자의 태도는 어째서인지 닮아있었다.
부부 동반 파티에 참석한 남자는 자기보다 훨씬 더 돈을 잘 버는 아내 대신 가사를 돌보는 상황에 행복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친구에게 말한다. 거기까지만 했다면 넘어갔겠지만 섹스도 만족스럽다는 얘기를 하자 친구는 그를 자극하기로 작정한다. ‘일반적인 성역할을 따르는 부부가 훨씬 더 많은 섹스를 하고 성생활에 만족한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 얘기를 꺼낸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아내들은 그 연구의 성차별적인 결론에 어이없어하며 가사의 분배가 성적 매력을 감소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섹스 리스한 상태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파티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자는 아내에게 혹시 자기도 그런 거라면 미리 말해달라고 그러면 상처를 덜 받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아내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 아이를 양육하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섹스를 하지 않게 된 것뿐이라고 남편을 달랜다. 그러나 그때부터 아내의 고민이 시작된다. 섹스를 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서 남편을 유혹해보지만 남편은 봐야 할 다큐멘터리가 있다며 자리를 피한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다큐를 검색하다 비슷한 철자를 가진 포르노 VOD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그 영상을 선택한 뒤 자위를 하던 도중에 아내에게 그 장면을 들키게 된다.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 아내는 그 참에 뭔가 해보려고 포르노 여배우의 행동을 따라 하며 다시 한번 유혹의 몸짓을 취하지만 남편은 이걸 놀림거리로 삼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는 자리를 뜬다.
이미 예전 같을 수 없다는 걸 서로 알고 있음에도 남편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한 아내는 아이들의 핼러윈 파티를 준비하다가 코스튬 플레이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동안 섹시한 가정주부와 목공수 차림을 하고 역할극에 빠져보자는 것이었다. 코스튬을 입고선 민망하다고 투덜거리는 남편, 목공수인데 어째서 싱크대를 고쳐야 하는 것이냐며 자신은 설정의 디테일이 중요한 극작가라는 걸 강조한다. 남편을 겨우 설득해서 역할극에 집중하도록 유도하지만 아이를 돌봐주기로 한 사람에게서 계속 전화가 오는 남편과 업무 전화가 수시로 오는 아내의 핼러윈 섹스는 실패하고 만다.
그날 밤 그간의 시도가 무색하게 갑자기 달아오른 남편이 아내에게 덤벼들고, 아내는 드디어 욕망을 드러낸 남편에게 모든 걸 맞춰준다. 그러나 둘의 행위는 섹스라기 보단 삽입과 사정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했다. 먼저 샤워를 하러 간 남편을 두고 하체만 반쯤 탈의된 채 엎드려 누워있는 아내를 한참 동안 보여준다. 피식하고 새어 나오는 웃음, 이마를 짚은 채 짓던 표정. 다음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 대신 아침을 차리고 있는 아내. 토요일이라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 곁에서 다정하고 에로틱한 기운을 내뿜는 남편. 빵을 썰려던 아내의 옅은 한숨과 미묘한 표정으로 끝나는 드라마.
남자의 성적 자신감과 성적 흥분을 유지시키기 위해 여성이 노력해야 한다는 듯, 스스로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여성의 의무이자 역할인 것처럼 교묘하게 나약하게 구는 남자의 비겁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