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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Dec 20. 2016

L

그리움이란 시각이 아니라 후각으로 먼저 새겨지는 영역

남자는 내 어깨에 입을 맞추더니 코코넛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것이 남자의 욕망을 돋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남자는 곧이어 내 뒷머리를 감싸며 좀 더 흡입력이 느껴지는 키스를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는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향수를 뿌렸다. 흔하진 않는 것으로. 그래서 춤을 추다 내게 말을 걸만한 빌미를 제공해줄 수 있었다. 좋은 냄새가 난다. 무슨 향수를 쓰느냐. 마음 먹고 상대의 감각을 자극하겠다고 설치해둔 덫에 발을 들이밀어 뻔하게 반응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코코넛은 조금 다르다. 유혹에 적합한 향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우선 내가 지나치게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몸에 잔뜩 묻히는 그런 선택이었다. 보습의 최종병기로 코코넛 오일을 애용하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고 기온이 떨어지자, 코코넛 오일을 쓰기 편리해졌다. 밤처럼 고체화가 된 오일은 필요한 만큼 적당히 덜어내는 게 수월해졌다. 나이가 든다는 건 다른 의미로 거칠어진다는 것이었다. 수분을 머금고 있지 못해 까끌함이 도드라졌다. 몸이든 마음이든 그랬다.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남자가 내 몸에 닿았을 때 그런 촉감을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남자를 만나기 전 몸의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며 코코넛 오일을 발라두었다.   



체취, 평소의 위생관리를 포함해 건강 상태의 지표를 드러내는 타고난 몸의 냄새뿐만 아니라 스스로 골라 덧입힌 향기는 섹스의 가능 여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시간이 흐른 뒤 남자에게 다시 안겼을 때 품의 체취를 맡는 순간 이 냄새가 그리웠다고 안도감이 드는 관계라면 그의 육체만이 나를 작동시키는 요소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움이란 시각이 아니라 후각으로 먼저 새겨지는 영역이니까.    



남자는 무향에 가까웠다. 정확하게는 섹스를 하려할 때 리낌이 들지 않는 체취를 가지고 있었다.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서로의 육체적 매력을 충분히 탐색한 뒤 끌어 오르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방이 막히고 침대가 있는 공간으로 찾아들어온 게 아니었다. 남자에게서 누설되는 안전한 지표들을 일 년 이상 지켜보았다. 그 역시 남자가 마련해둔 적절한 덫이었다.



내가 그 덫에 손을 내밀었을 때 남자는 성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길 결심한 내게 남자는 간질거리는 유혹의 말로 나의 의지를 북돋으려 들지 않았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자신의 안전함을 일관성 있는 태도로 유지했다. 그 순간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달려와야 할 때를 절묘하게 알아차리는 것과 동시에 내가 우려할 만한 요소를 사전에 제거해준 것도 남자의 센스였다.



모모 호텔에서 만날까요? 라는 나의 제안에 먼저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자고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만나는 까닭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가 추구해야할 효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만날 장소를 제안하자 남자는 곧바로 예약을 했고 먼저 체크인을 하겠다고 말했다. 상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장소였다. 멀리서 날 찾아오는 경우인지라 남자는 하룻밤 묵어야 했다. 그 밤을 같이 보낼지 말지는 만나봐야 결정할 수 있었지만 혹시 몰라 분명히 밝혀두었다. 옵션은 트윈 베드로.



섹스를 한 사이라고 같이 침대에 서로 안겨 잠들고 싶진 않았다. 연인 사이라도 그런 것이 친밀함을 증명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숙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사이가 최고의 연인이다. 그런데 타인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은 불편하고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섹스만 하고 돌아 나오는 게 가장 적절하고 내가 바라는 일이었지만 낯선 도시에서 혼자 호텔에 덩그러니 남겨지고 싶지 않을 남자 입장을 생각했을 때 내가 제안할 수 있는 해결방안은 트윈 베드였다.



남자는 조심스러웠다. 문이 열리고 남자와 마주했을 때 읽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예쁨받고 싶다는 마음, 여기까지 왔는데 거절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 품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이 있길 바라는 마음. 남자가 내게 만족김을 줄 수 있을지는 해보지 않으면 언제나 미지수인 일이지만 호텔 룸 넘버를 받는 단계에서는 되돌아갈 가능성이 최소화된 사람을 고르게 된 것은 최근 나의 진화였다.



적절한 수준의 자신감과 뻔뻔함, 마르고 매끈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소년같았다. 하지만 필요한 성장은 다 마친, 그래서 소년스러움이 매력이 되는 그런 남자였다. 아무리 욕정을 해소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들 낯섬이 주는 서걱함이 둘 사이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나의 코코넛향이 나는 몸을 마음에 들어했고 함께 있는 시간동안 몸이 떨어져있을 때는 내게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내가 노트북을 꺼내 뭘 쓰고 있는지 묻지 않는 게 좋았다. 그것이 끝나길 가만히 기다렸다 내 침대에 오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도 되냐고 물었다.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는 동안에도 따라 들어와 나의 휴식을 망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남자라면 같이 밥을 먹는 것도 할 수 있었다. 이 호텔 근처에 타이 음식 잘하는 곳이 있는데 좋아해요? 남자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코코넛밀크가 잔뜩 들어간 것들만 시킬건데요. 좋아요. 마치 당신을 맛 보는 것 같을테니까. 풋. 그 말이 우스운데도 귀여워서 호텔을 나오며 그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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