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꼭 뜨개질을 했다.
큰아이를 낳고 뜨개방에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게 가장 큰 낙이었는데 여럿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며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 육아에 지친 나날들에서 해방될 수 있는 단 두 시간이었으니까.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입힐 조끼도 뜨고 작은 모자도 여러 개 떴었는데, 그때 뜬 옷들을 입힌 어린 시절 아이 사진을 보면 추억이 두배 더 녹아있다. 아이가 젖을 먹다 잠이 들면 적적한 밤에도 뜨개질은 계속됐다.
고요하고 외로왔던 육아의 시간에 마음의 위안이 되어 주었다.
어두컴컴한 라이브 바 아르바이트 시절에도 추운 겨울 난방기도 틀지 않은 채 꽁꽁 언 손으로 뜨개질을 했었다. 끊임없이 손을 놀리면 시간도 잘 가고 추위도 이겨낼 수 있었다.
뜨개질은 나에게 명상이었다. 또 나를 어루만지는 행위였다. 생각들을 정리하며 자주 나를 습격해 온 외로움과 무료함, 무기력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집 창고 안에 켜켜이 쌓인 뜨개실과 도구들을 이따금 볼 때마다 뜨개질을 하던 시간들이 스치듯 떠오른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감각, 그때의 마음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나는 이번 겨울 다시 뜨개질을 시작할 것 같다. 오랫동안 놓았던 잊고 지냈던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을 거다.
어제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 밤새 놀다가 술기운에 펑펑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왕왕 소리를 내며 크게 울었다. 아침이 되어 그 기억에 부끄러웠지만 가슴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진 기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실은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나니 속을 다 들어낸 나 자신이 초라해진 것 같지만 이제 다 풀어 버리고 과거는 추억으로 좋게 남기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자꾸 옛날이 떠올라 창고 한편에 먼지가 소복이 쌓인 내 뜨게 용품들도 이제는 다시 꺼내 든 의욕이 생긴 걸 보면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