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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Sep 19. 2022

나의 작은 친구들

열두 살, 아홉 살



시간이 참 빠르다. 꼬물꼬물 팔다리를 휘젓던 아기들이 이제 안정적으로 세상을 뛰어다닌다.


큰 아이는 열두 살, 작은 아이는 아홉 살- 아직 둘이 손을 꼭 잡고 학원에 간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매번 울컥하게 가슴이 저며 오고는 한다.

공간을 마법처럼 밝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모든 것이 고마워진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도 생각한다.

나의 작은 친구들은 그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지만 아이들의 앞날에 늘 꽃길만 드리워져 있을 수는 없기에 자립하여 이겨낼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큰 아이가 일곱 살 즈음 마트에 갔다가 장난감을 사려고 두리번거리다가 주인아저씨의 무심한 큰소리에 놀라 울먹였던 일이 있었다. 어른과 같이 있지 않아서 귀찮은 존재로만 여겨졌던 아이에게 살 것이 아니면 저리 가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 아저씨에게 아이에게 무슨 핀잔이냐고 말할 수 도 있었지만 나는 아이에게 먼저 말해 주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어른들이 너에게 친절한 것은 아니야.”



언젠가 세상에 혼자 나설 아이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서운한 일들과 불친절한 사람들과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들에게서 매번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로 큰다면 아이는 결코 그런 감정들에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학습전략 검사 검사 결사 표에는 성실성과 시간관리 능력이 강점으로 우울감이 약점으로 나와 있었다.

우울함이 있다는 것이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학원 수업이 고단해서 우울하다고 했다.

다행히 일상생활에서의 우울은 아니었고 학습을 할 때 감정상태가 그러했다.

지금 다니는 학원 수업을 줄이고 싶다고 하고 다소 강압적인 학원의 분위기가 아이를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물론 5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점점 공부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하기 싫다.라는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던 아이라고 해도 슬슬 꾀도 나고 부담감도 느끼는 시기인 것이다.

​공부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공부가 적성에 맞는 아이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며 일체의 사교육은 하지 않겠다고 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 수업에 뒤쳐지면 공부에 흥미 자체를 얻기가 어려워서 또래 아이들이나 학교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학원을 보내고 싶었는데 어느새 과도한 분량으로 느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비교적 흥미를 갖고 좋아하는 과목인 수학을 남기고 다른 과목들의 학원 수업은 보류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평균 이상으로 맞추려 하다 보면 너무 많은 과제들이 생겨서 자유롭게 놀 시간이 없겠구나. 생각이 들어 전문학원에서 수학만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해주기로 했다. 새로운 학원에 등록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자기에게 친구들과  놀 시간이 더 생긴다는 사실이 일단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월요일이 되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가방을 던져 놓고 친구들과 놀러 뛰어 나갔다.

발그레한 볼이 상기된 기분을 그대로 보여 준다. 아이가 행복해하니 내 마음도 행복해진다.

공부가 아이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되도록 더 마음을 써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없다. 나는 아이에게 지는 사람이다. 애초에 싸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갈등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그저 아이가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에 도움을 주는 속 깊은 친구 같이 걸어 나가고 싶다.

나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라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고 감탄스러운 부분도 많다.

스스로 잘해나가는 모습들은 내 유년기에는 없었던 대견함이다. 아이들의 가장 큰 장점인 자기 주도적인 삶의 태도가 더 강하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바라보고, 기다리고, 응원하는 일이 엄마로서 내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숙제를 꼼꼼히 봐주고 함께 책상에 앉아 있어 주는 그런 엄마도 좋지만 알아서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좋아해 주는 이런 친구도 괜찮을 것 같다.


손아귀에 꽉 쥐려 하지 않고 설렁설렁 여유로운 안전울타리 정도만 유지하는 선에서 아이들과 신뢰를 쌓아 가고 싶다. 나의 작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의 작은 친구들- 아직은 나의 도움이 보살핌이 필요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 아니던가.

평생을 두고 친하게 지낼 나의 친구들에게 오늘도 행복하라고, 오늘도 더 많이 웃으라고 그런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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