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많은 편이었던 나는 어디든 가면 뭐라도 사야 직성이 풀리고야 말았던 사람이었다.
작은 가게마다 들려서 마음에 들어오는 작은 것들을 사 모으는 것이 곧 사는 재미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물건을 사는 것이 그다지 썩 즐겁지 만은 않아서 필요한 것 위주로만 쇼핑 중 -
꼭 필요한 것, 두고두고 쓸 만한 것이 아니면 마음을 흔드는 물건이 잘 안 나타나고 사려고 했다가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잊어버리거나 결제를 했다가도 환불 처리를 요청한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대부분 빠듯한 통장 잔고를 반영해서 그리 산다고 하지만 워낙 물건을 사는 것에 재미를 느꼈던 내가 이렇게 되다니- 약간 사는 재미를 잃은 것 같아 울적해진다.
지난달에는 가을 옷을 좀 장만하려고 몇 군데 시간 날 때마다 옷 가게를 둘러보았는데 웬걸- 어울리는 옷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만 원짜리 티셔츠만 한 장 걸쳐도 태가 나던 시절은 저 멀리 흘러가고 어지간해서는 어울리는 걸 찾기 어려운 중년의 여성이 거울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카드 내역은 식료품, 아이들 옷으로 구성되었다.
온 힘을 다해 사고 싶은 걸 사고야 말았던 시절들은 열정적인 시절이었구나. 꺾여버린 나의 물욕이 왠지 서글퍼서 애써 무언가를 질러보려고 각종 쇼핑 앱을 다 둘러보아도 딱히 살만한 것, 사고 싶은 것이 없다. 그나마 내년 여행이 내가 최고로 비싸게 지른 쇼핑 목록이라면 목록인데 아마도 가서 아이들 잔잔 바리 장난감이나 소품들을 사고 식구들 선물만 사겠지.
이미 여행이라는 큰 것을 질러버렸으니 쓸 돈도 없기도 하다. 그래도 신발 한 켤레 부츠 한 켤레로 봄과 가을을 내내 나는 것은 너무 한 건 아닐까- 젊은 시절 나에 비해선 말이지.
결제까지 이루어졌던 앵클부츠를 취소하면서 내가 “이걸 몇 번이나 신겠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돈으로 아이들 도톰한 바지나 신발을 장바구니에 담아 놓는다.
고등학교 때는 점심값을 아껴서 매주 주말 이대에 가 온갖 아이템을 사들였던 나인데 애석하게도 점점 본의 아니게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고 있다.
어울리지도 않는 원피스에 카디건을 걸치고 계절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는다.
부지런하면 모든 것을 단정하게 잘 가꿔 입으면 맵시가 날 만도 한데 요즘 같아서는 그런 힘이 나질 않아 겨우겨우 일하고 집 정리를 하고 잠을 자기 바쁘다.
나이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같이 일하는 오십 대 언니는 매일 쇼핑을 즐기며 어울리는 옷을 찾는데 열정적인 반면 아직 짱짱한 (?) 사십 줄의 나는 이렇게 시들하다니- 너무 재미없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할 볼 필요가 있다. 어째서 마음 안에 들어와 반짝거리며 나의 통장 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인지. 멀지 않은 미래에 배달 음식값을 아껴서라도 사고 싶은 무언 가를 기다리며 나의 사는 재미가 더 이상 줄지 않기를- 정말로 살아가는 재미가 계속되기를-
물욕 잃어 슬픈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