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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잍호텔 Nov 13. 2022

우울 주머니



제목을 달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런 얘기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없이 의식에 흐름대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붙여 넣는다. 그럴 때면 내 마음속에 담겨 있는 환영 같은 것들이 천천히 수면 위로 부유하기 시작하는데 그것들을 양손을 마주쳐 잡아내려고 한다.

요즘에는 시든 꽃처럼 활력도, 기쁨도 없는 모양으로 살아내고 있는 잔혹한 환절기를 보내고 있다.

그저 남들의 즐거운 삶을 기웃거리며 대리만족을 하면서 남들이 갔던 곳이나 먹었던 음식을 흉내 내고 있는지도 몰라. 하며 더 시들어 버리는 기분.

겉으로 어쩔는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어두운 기질이 있는 편이라 쉽게 우울해진다. 자꾸 환기 시켜주지 않으면 금세 곰팡이가 쓸어 버리는 지하방 같은 자아라니. 너무 억울하다.

친구 중에 별것 아닌 농담에도 배를 붙잡고 웃어대는 친구가 있었다. 나도 그땐 따라서 눈물이 나도록 웃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웃어 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나는 걸로 보아 꽤 이런 무덤덤하고 재미없는 감정 상태로 지내온 것 같다.  이쯤 되니 제목이 떠올라 ‘우울 주머니’라고 제목을 달았다.

‘울음주머니’로 살던 시절에서 ‘우울 주머니’ 가 된 것은 인생의 상승곡선일까, 하향곡선일까.

이 주머니는 늘 터지거나 열리는 게 아니긴 하지만 종이 재질이라 쉼 없이 무언가로 왁스 칠을 해주지 않으면 쉽게 물러 터지거나 샌다. 새는 거야 어떻게든 틀어막는다고 해도 터져 버리면 큰 사고를 치고는 하니 평소에 부지런히 왁스 칠 같은 정비를 해주지 않으면 나도 나를 잘 모를 정도로  터져 버릴 때도 왕왕 있어 왔다.

누구에게나 있을까. 이 우울 주머니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면 다행일까. 타인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 게 무의미 한데 위안이 된다.

즐거운 나의 인스타와 위배되는 속마음은 여기에 남겨두고 인스타처럼 즐거운 하루를 보내야지. 그렇게 하는게 나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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