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모든 게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변한 건 상대방의 유책을 알고 그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가는 내내 우리의 결혼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사과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민낯이 벗겨진 그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로 나를 위협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안녕하리라 생각했었던 우리 가정은 그저 내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그는 다정한 척, 신실한 척, 성숙한 척 연기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그의 본래의 찌질하고 기이한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아무도 불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지만 나는 이런 불행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내 가정만큼은 견고할 거라 자만했던 대가치고는 혹독했다.
이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았을 때, 모두가 내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결국 같은 말을 했다.
“모른 척하지 그랬어?”
“그날 안 갔으면 다정한 남편, 부러울 것 없는 사모님 소리 들으며 살 수 있었잖아.”
그들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내가 참았다면, 그는 여전히 다정한 남편을 연기하고 나는 껍데기뿐인 행복 안에서 경제적으로는 안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말한 대로 내가 더 큰 리스크를 초래한 건 아닌지 후회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저 내 선택이 옳다고 믿어야 했다.
사실 나도 무서웠다.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걸 붙든 허상이 나를 덮쳤다.
어쩌면 아이를 핑계로 계속 참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고 사는 게 과연 능사일까?
모른 척 사는 것 또한 이혼하는 것만큼 뼈아픈 고통을 동반하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더 어려운 고행이 될 수도 있다고 짐작해 본다.
나는 내 선택이 공연히 흔들릴 때마다 그날을 떠올리며 묻는다.
“꽃밭이라 믿으며 계속 속아가며 살아갈래, 자갈밭이라도 진실을 보고 살아갈래?”
내 답은 언제나 같다.
“그날의 진실, 꽃길을 내가 만들 거야.”
내가 사람들의 예언대로 이혼녀의 불행한 삶을 살아갈 이유는 없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인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게만 살았던 것이 아니듯, 남들이 보기에 불행해 보여도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이 진짜일 것이다.
물론 돈이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물질을 소유하는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슬픔이 지나가고 이제 나는 새벽마다 거실에서 춤을 춘다.
혼자가 된, 비로소 나를 되찾은 해방감과 기쁨에 겨워.
그러니 지금 당장 불행해 보인다고 내 인생을 나조차 함부로 단정 짓지 말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도, 남들이 안타까워하는 삶도 모두 겉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 불행에 둘러싸인 채 살아간다.
그 안에서 어디에 초점을 둘지 선택하는 것은 각자의 과제이다.
나는 오늘도 선택한다.
진실의 자갈밭 위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나만의 꽃길을 만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