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by 한밤

내가 상대방의 유책을 알게 된 날, 나는 내 안에 ‘살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내가 이만하면 착한 사람이라 믿었다.

살면서 누군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나의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를 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상대방의 죽음을 그악스럽게 바라고 있었다.

그 사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신이 있다면, 아니 누구라도 제발 좀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고.

불행 속에서 마주한 내 민낯은 열렬한 원망이면서도 서러움이었다.

불행은 내가 전혀 몰랐던 나와 마주하게 만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악의와 떨어질 만큼 떨어진 것 같은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밑바닥.

그 낯설고 차가우며 수치스러운 느낌을 사실 지금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다행히 상대방은 내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날, 스스로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그래서 내 살의는 길을 잃고 흩어졌다.

그 후에 남은 것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냥 이혼하지, 왜 사람까지 죽여?’

‘죽을 만큼 힘들었으면 그 용기로 자기 인생 살지 뭘 또 죽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죽음의 집요함에 무심히 혀를 차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직접 겪고 나서야 그 무게를 감당하게 되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그 선택들엔 감정과 현실과 법과 자존심, 무너진 세계가 얽혀 있다는 걸.

그러니 자꾸 비난하지 말고,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럴 수 있다.’ ‘그런 마음이 들 수 있겠다.’와 같은 이해와 공감이 당한 사람에게는 절실한 숨구멍이다.


불행할수록 어떤 결정을 쉽게 내리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눈에 뵈는 게 없을 때는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마음이 들끓고, 몸에서 열이 날수록 그 결정은 미뤄야만 한다.

그때 내리는 결정은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함만 남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처럼,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신중함은 필요하다.

급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마음만큼은 느긋하게 먹자.

시간을 갖고 생각하고, 알아보고, 물러서서 바라보자.

어차피 그 일이 나에게 올 일이었다면 빠르든 늦든 결국 오게 되어 있다.

늦게 결정해서 손해를 본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원래 나에게 오래 머무를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털어내자.

결혼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떠밀려, 사랑에 눈이 멀어,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결정들이 훗날 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하고 놓지도 못하는 건 결국 내 인생에 더 큰 미안함만 남기고, 나는 훨씬 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누군가를 유혹할지, 유혹에 넘어갈지도 결국은 그 사람의 결정이다.

그 선택 앞에서는 제발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까지 생각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는 반드시 피해보상까지 감당해야 마땅하다.

뒷감당을 하기 싫다면 비난받을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게 인간의 도리다.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일에 쉽게 돌을 던진다.

나는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자살은 지옥행이다.”

“신을 배신한 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이 ‘타살’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느님을 믿는 나로서도 자살은 죄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은 자살을 ‘막기 위한 교육’ 일뿐이다.

신도 알 것이다.

그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그래서 나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불행으로 인해 죽은 타살자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왜 죽었냐’는 비난보다,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죽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있다면 지금 결정하지 말아 달라.

시간이 지나듯 당신의 생각도 지나갈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끝’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뭐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한번 지켜보고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처럼 살 수 없고 예전처럼 못 살아도 사실 괜찮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다 스쳐가는 거라 지금처럼 살고 싶어도 살아지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도 양면이 있기에 살아보면 또 살아지는 게 삶이다.

더 괜찮아질 수 있다고 내가 결정하면 된다.


세상은 이미 충분히 고되다.

그래서 모두가 쉬운 쪽을 택하고, 쉽게 말하며, 쉽게 결정하고 싶은 시대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지는 마음이 필요하다.

안쓰러운 공감과 이해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나은 결정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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