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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윤수 Oct 24. 2024

노인재택사

염소탕

지난 번 엄마에게 섭섭한 감정이 썰물처럼 밀려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로 며칠을 산지 여러날이 되었다. 분노로 마음을 태우는 일은 말그대로 감정을 태우는 일이다. 처음에 화를 내는 것과 화가 난 상태로 계속있는 일은 조금 다르다. 화가 나는 것은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일과 비슷하다. 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라이터의 부싯돌을 튕겨 불을 붙인다. 어떤 사람은 그 불이 쉽게 붙고 어떤 사람은 쉽게 불이 붙지 않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라이터를 들고도 불을 굳이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의 라이터는 부싯돌이 무딘 라이터여서 쉽사리 불이 붙지는 않는다. 불이 붙어도 쉽게 사그라들기도 하고 말이다. 


 정신과 마음을 분노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태워야하는 재료가 필요하다. 바로 상대가 얼마나 나쁘고 틀렸고 어이없으며 못됐는지, 혹은 극한의 빌런인지를 증명하는 상대의 나쁜 태도와 행동이다. 상대가 나에게 잘못한 것을 태우고 태우다가 불이 약해질 것 같으면 다른 사람에데 얼마나 나쁘게 했는지까지 끌고와 태운다. 그리고 끊임없니 상기한다.나에게 얼마나 나쁘게 했는지를 말이다. 그러는 사이 너무도 당연하게 상대가 한 행동들은 나를 불태우기 쉽게 의미가 변형되고 왜곡되어진다. 간혹 그러는 중에 상대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분노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이렇나 에너지가 계속 불타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매우 피곤한 정신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 써야 할 에너지를 끊임없이 상대에 대해 불평하고 불만을 떠올리고 불사르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힘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에 대한 분노의 상태를 꽤나 여러날 유지하는 중이었다. 엄마를 의도적으로 모른척하는 중에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여보세요."

"어디냐?"

엄마의 목소리가 사뭇 다정하다. 아니, 다정하다 못해 간드러졌다. 어디냐? 가 아니라 어디냐아아? 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이렇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뭔가 잘못하여 내가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 뭔가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 

"이층에 있어요." 엄마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별개로 내 목소리는 사뭇 퉁명스러웠다. 예전같았으면 엄마는"너는 뭐에 꼴아 부서 터졌냐?"라며 단박에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하냐?"

"그냥 있어요." 

"그래? 그러면 저것좀 먹으러 가자."

"뭐요?" 

"염소탕. 가서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오자! 아주 맛있겄시야."

아마도 티비에서 염소탕을 먹는 장면이 나온 모양이었다. 그걸 보니 당신도 드시고 싶으셨던 거다. 하지만 염소탕이라니.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고 먹자고 이야기 해본 적도 없는 음식이다. 

치매노인과 산다는 것은 평소와는 다른, 그간의 패턴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경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다분히 본능적이고 유아적이다. 생존본능에 가까운 욕구가 노인의 몸을 지배한다. 잠이 늘어난다. 식탐이 늘어난다. 배설에 대한 조절이 어려워진다. 엄마는 식탐이 늘어났다. 언제 어느 순간에 변기물에 빨래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인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많이 울었던 사람은 나였다. 후회의 눈물이었다. 모든 것이 어쩐지 내가 잘못해서 돌아가신 것 같았다. 사실 나의 잘못은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중년부부의 삶에서 그들이 배설하는 쓰레기를 저항없이 담아야 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특히 엄마의 한풀이와 분풀이의 대상은 늘 나였다. 어린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엄마의 잘못인가 아빠의 잘못인가. 어린 나이에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생각해보기 위해 애썼다. 둘다 잘못이 있다. 엄마는 너무 집착하고 아빠는 너무 자유로웠다. 아빠가 조금만 엄마를 위한다면 우리집의 온도는 조금더 따뜻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무심하고 끊임없이 싸움의 꺼리를 만들어내는 아빠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자신의 쪽에 서있다는 확신이 들때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싸움은 말에서 몸으로, 결국 몸에 상흔을 남기는 형태로 이어졌다.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싸움소리가 나면 우리집이었다. 그러면 무조건 내달렸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아빠에 대한 원망은 아빠를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형태로 이어졌다. 엄마는 보란듯이 아빠를 제외하고 우리 셋만 고깃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아빠에게 일종의 벌을 준 것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민망함을 기억한다. 우리끼리 여러번 가서 먹었던 고깃집에 아빠와 함께 가게 되었다. 우리는 익숙하게 반찬을 먹고 주문을 했다. 그저 익숙함에서 나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조용히 물어보셨다. " 여기 와봤냐?" 

그 때의 민망함.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멈추었다. 내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어떤 얼굴일지 알것 같았다. 앗차. 하는 표정.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잠깐의 시간동안 정적이 흘렀다.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내가 고요하게 정지한 정적을 깼다. "아, 지난 번에 한 번 와봤어요." 

"아. 그래?" 아빠의 대답은 덤덤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것이 그 순간이었다. 그때의 정적, 당황스러움,민망함, 슬픔.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묻는다면 그 순간의 기억은 물론 당황스러움이다. 하지만,이 기억은 슬픔의 방에 전시되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가장 후회되는 것이 이 장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가족.

식구.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로를 격려하는 가족에서 아빠는 철저하게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의 벤치에서 끊임없이 울면서 했던 생각은 아빠를 왜 가족의 울타리안으로 초대하지 못했을까. 그런 노력 한 번을 못했을까. 였다. 그걸 내가 했어야 했는데. 그걸 왜 하지 못했을까.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아빠를 가족의 울타리안으로 초대했다면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지는 않으셨을텐데텐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골목길의 싸움소리는 더이상 나지 않았다. 

어떤 갈등은 누군가 죽어야 끝난다는 것을 알게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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