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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Dec 27. 2022

엄마의 출근

나의 사람들_출근길에 만난 모르는 사람


  큰아이가 돌쯤 되었을 때 복직을 했다. 복직 후 처음에는 남편이 아이를 도맡아 돌보다가 시부모의 도움을 받기로 하면서 시댁 근처로 이사를 했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였지만, 편하게 회사생활을 할 수 있었다. 모두 시부모님 덕분이었다.

  아침 7시에서 7시 10분쯤 되면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아이를 데리러 오셨다. 그러면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서 그대로 보내거나, 아이가 좀 일찍 일어난 날은 옷이라도 갈아 입혀 보냈다.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가고 나면 나는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나갔다. 반월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사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 후 역삼역에서 내렸다. 사당역은 늘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전쟁 중 피난민들이 모여 있다면 딱 그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까스로 2호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의도치 않게 옆 사람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된다. 내 앞에 서 있던 여자는 딱 봐도 나 같은 워킹맘이었다. 매일 출근길에서 자주 보았던 사람이다. 우리 회사보다 출근 시간이 빠른지 늘 시간에 쫓기는 모습이었고 분주하게 전화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하루는 그 여자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야, 니 새끼 열난다. 어떻게 하냐. 니 새끼 많이 아픈데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느껴지는 목소리의 톤으로 봐서는 그 여자의 친정엄마거나 시어머니로 추정되었지만, 너무도 편안한 말투로 보아 나는 친정엄마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래도 시어머니일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그 여자의 통화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니 새끼’ 라는 표현이 몹시 거슬렸다.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여자의 심기를 건드려 보겠다는 의중이 뻔했다. 뒤에서 듣고 있던 나조차도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그때 시간이 잘해야 8시 20분쯤, 병원문도 안 열었을 시간이고 엄마는 아픈 아이를 어쩔 수 없이 할머니 손에 맡기고 출근했을 것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와 달리 여자의 목소리는 나와 한 뼘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들리지 않았다. 이따 다시 전화한다고 했던가, 어디에 약이 있으니 일단 그 해열제부터 먹이라고 했던가. 여자는 지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하지만, 말투는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차분했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르긴 몰라도 도움을 청할 곳을 찾으러 이리저리 묘안을 짜내는 중이었으리라.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저절로 아이를 돌보고 계실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시어머니는 내가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아이의 상태를 언급하며 퇴근을 재촉 하거나 출근을 안 할 수 없겠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하였을 때도 시부모님은 아이를 계속 봐줄 수 있으니 일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셨다. 

  그 후 늘 재취업을 갈망하면서도 아이들 걱정에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나를 보곤, 친정엄마는 당신이 아이들을 봐줄 테니, 나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하신다. 양쪽 어른들 모두 말씀만 들어도 눈물 나게 감사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상, 나는 전업주부의 생활을 계속 하고 있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지하철에서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목소리와 말투가 생생하다. 어떤 사유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던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이 비단 그 여자뿐이겠는가. 매일 같이 출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워킹맘들과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경력이 단절된 여자들을 생각하면 우리네 여자들이 짠하고 애처롭다.

  시부모님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으며 회사를 다녔던 나도 고충이 있었고 늘 마음이 불편했다. 여자가, 아니 엄마가 일을 하는 데에는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그 여자의 남편은 하루 중 언제쯤에나 등장했을까. 그 여자는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퇴근은 할 수 있었을까. 출근 도장만 찍고 회사에 온갖 눈치를 봐가며 불편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아이에게로 달려가지는 않았을까. 그 여자는 그 후로 몇 달, 몇 년을 더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었을까. 아니면 지금도 매일 아침 그 지하철을 타며 전쟁을 치르는 중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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