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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Dec 28. 2022

걱정인형

[나의 사람들] 엄마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다시 물음표가 된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만의 사유를 낳는다.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결혼 전, 오래 연애했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주말이 되어 집에 가면 엄마는 그동안의 나의 안부를 묻고 이어 남자친구의 안부까지 물었다. 엄마 아빠한테 인사까지 시키고 몇 년을 만난 사이였으니 엄마는 내 남자친구를 이미 사윗감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정이 많은 우리 엄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째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남자친구였기에 딱히 좋은 소식을 전할 만한 게 없었다.

“그냥 똑같지 뭐.” 하고 대답했더니 곧바로 엄마의 한숨이 이어졌다. 나도 타지 생활하면서 엄마 아빠 걱정 안 시키려고 열심히 사는데, 엄마는 왜 가족도 아닌 내 남자친구 때문에 한숨을 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헤어질 이유들을 찾았던 것이. 그럼에도 헤어짐이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남자친구와는 긴 연애 끝에 헤어졌다. 꼭 엄마 때문에 헤어진 것만은 아니다. 그저 헤어질 만하니 헤어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엄마는 남편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욕심내지 말라고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욕심은 이미 엄마가 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나보다 네 살이나 어렸기 때문이다. 남편과는 3년을 넘게 연애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혼했다.


작년 봄, 엄마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남편이 직업 군인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였다. 어른들이 걱정하실까 봐 최대한 숨기려고 했지만, 마냥 숨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 생각하여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것이 내 마음 편하자고 한 철없고 이기적인 행동이었을까. 엄마는 그때 사위 걱정에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고 했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한 것이, 남편이 직업군인을 그만두는 일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육군 장교였던 남편은 신혼 초 7년의 육군 생활을 정리하고 전역하였다. 그 후 여러 가지 시도 끝에 공군에 임관하여 다시 직업군인이 되었는데, 그걸 또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걱정인형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도 잘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찾아와 이런저런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를 의지하는 친척들도 많았고, 마음이 약한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안 좋은 일을 대할 때마다 힘닿는 데까지 해결해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모습을 어떤 사람들은 오지랖이라고 하기도 했다. 힘든 일이 지나고 나면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바라볼 땐 오히려 엄마의 속이 더 곪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의지로 사람들을 돕지 못하는 경우엔 혼자 걱정하며 마음고생하기를 자처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라도 엄마를 걱정시키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수없이 하곤 했다. 그러나 그건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자식 일을 두고 사소한 걱정 하나 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10년도 더 지난 일을 지금 상황과 비교해 보면서 속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뭘 그렇게 걱정해. 항상 걱정 많은 우리 엄마, 나라도 걱정 끼치지 않고 살려 했는데 모든 일이 내 마음 같지 않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그런 게 인생인 듯 해. 그렇지만 지금 엄마를 걱정시키는 일이 훗날 엄마를 웃게 할 거야.’


남편의 이직 문제를 두고 걱정했던 그때로부터 일여 년의 시간이 또 흘렀다. 그간 우리는 또 다른 크고 작은 걱정거리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그 사이사이 기쁘고 행복한 일들로 웃기도 했다. 그날의 걱정들은 이미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지나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하며 살아간다. 세상 어느 누가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인형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걱정이 기쁨이 되고 기쁨이 걱정을 만들고, 그 반복과 순환이 삶의 사건들을 통과할 때마다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안다면, 그리 걱정하고 살 일이 아니다.

걱정인형 엄마를 떠올리며 또 한 번 생각해 본다. 나는 앞으로도 엄마를 전혀 걱정시키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내가 어떻게 그 과정을 통과해 나가는지, 어떤 삶을 완성시키며 살아가는지 응원하며 지켜봐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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