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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16. 2023

당신의 공동생활은 안녕하십니까

[나의 사람들] 나의 룸메이트 메이

집에서 대학교까지 다녔던 나는 기숙사생활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집을 떠나 같은 또래 친구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로망이라는게 있었는데, 좀 아쉬웠다.

나의 첫 룸메이트는 호주에서 만난 홍콩친구들이었다. 나보다 한 살 위, 한 살 아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한방을 썼다. 우리가 각자 자기네 나라로 돌아간 후에도 이 친구들이 한 번씩 번갈아서 한국을 방문해서 만남을 이어갔고, 내가 홍콩여행을 갔을 때도 이 친구들이 기꺼이 그들의 하루를 비워 놓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싸이월드로,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처음에 비해 대화를 나누는 주기나 많이 짧아졌고, 물리적 거리도 상당하지만 언제든 손내밀면 닿을 것 같은 인연이다. 특히 그중 메이라는 한 살 위 친구는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예민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함께 공간을 나눠 쓰지 못할 줄 알았다. 실제로, 졸업 후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잠깐 친구와 같이 산 적이 있는데 그 끝이 좋지 못했었다. 그 후로 친구와 자취를 한다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방 3개, 화장실 2개의 30평대 아파트를 7-8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게 보편적이었다. 화장실이 딸린 제일 큰 방은 '마스터룸'이라고 하여 보통 여자들 3명이 사용하고, 나머지 작은 방 두 개는 두 명씩 사용하며 거실에 있는 화장실을 공유한다. 나와 홍콩 친구들은 마스터룸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불법이다. 한 집에 사는 인원이 사실상 4-5명을 넘으면 안 되었다. 영어를 못하는데 이 홍콩친구들이랑 어떻게 잘 지내지... 걱정을 좀 하긴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심지어 우리가 한 방을 공유하는 데 있어 특별한 규칙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들을 보고 따라 할 뿐이었다. 1주일도 걸리지 않아 이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을 자연적으로 터득하고 살게 되었다.


케리라고 하는 한 친구는 중국 베이커리에서 일했다. 일의 특성상 주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집을 나갔기 때문에 아침에는 케리의 얼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평일에는 9시까지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곳의 랭귀지 스쿨을 다녔고 주말에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메이는 백화점 내 음식점에서 일을 했었지만 일정하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성경공부 모임이나, 무료 영어수업 등등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혼자서 근거리 여행도 많이 다녔다. 우리 중에 가장 자유롭게 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 각자의 외출시간에 맞게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 앞 노란 불만 켜고 출근 준비를 했다. 서로의 잠을 께우지 않도록 최대한 애썼다. 어차피 바닥은 카펫으로 되어 있어서 발자국 소리는 잘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잠을 깨더라도 누구도 불평불만을 한 적이 없었다. 평일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메이는 종종 나에게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같이 가보자고 제안했다.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혼자 돌아다니는 걸 겁내고 있던 나는 메이의 그런 제안이 반가웠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메이가 날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느 날은 내가 늦잠을 자면서 엄청 칭얼댔다. 아침 7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메이가 다정하게 와서 물었다. 그레이스 어디 아픈 거 아니냐고... 잠결에 여기가 너무 가렵다고 했더니 호주가 많이 건조해서 그런거라며 가지고 있던 알로에 젤을 발라주고 갔다. 엄마처럼 걱정해 주던 그 친구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려움도 잊고 달콤한 늦잠을 더 잘 수 있었다. 호주에 도착한 후로부터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는데 이런 친구를 처음부터 룸메이트로 만난 건 하나님이 나를 돌보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메이도 기독교였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일 오후에 영어로 성경공부 하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가주기도 했고, 일요일엔 나와 함께 한인 교회에 가기도 했다.


메이와 케리랑 함께 산지 한 달이 지났을 때쯤, 메이에게 한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메이보다 세 살 어린 남자였는데 꽤 훈남이었다. 메이는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늘 천천히 이야히하고 천천히 설명했는데 그 남자를 이야기하는 동안은 말이 좀 빨랐다. 그래도 나는 시간이 더 천천히 지나가길 바랐다. 그 남자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메이의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메이의 남자친구에게 평일 오후 메이와 보내는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그 무렵엔 나도 학교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시드니 생활에 재미를 붙여가던 중이었다.

어느 날 저녁까지 밖에서 먹고 집에 들어왔는데, 메이가 초저녁부터 안대를 끼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른 잠을 청하느라 안대를 끼고 자는가 싶어 그대로 두었다. 저녁 8시쯤 일어난 메이는 눈이 시뻘겋고 약간 부어있었다. 그날은 천천히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한 듯했다. 그냥 헤어졌다고 천천히 말했지만 천천히 설명하는 일은 없었다. 섭섭함 마음, 걱정되는 마음, 궁금한 마음 등이 얽혀 답답함에 메이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냥 메이가 쉬도록 두었다. 후에 메이가 천천히 또 설명해 줄거라 믿었다.

며칠이 지나 메이와 함께 먹을 것을 사러 마트를 다녀오는 길에, 메이가 말을 꺼냈다. 그 남자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에 대해서. 머지않아 자기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메이도 홍콩으로 돌아갈 거라는 이유로 이쯤에서 정리하고 헤어지자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메이가 한국말을 잘했거나,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시원하게 욕 한 바가지 해줬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이가 띄엄띄엄 한국말로, "나쁜 남자"라고 말하며 귀엽게 웃었다. 그 남자랑 사귀면서 나에게 한국말을 좀 배우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해 보이니 기특해서 웃어버렸다. 하고 싶었던 욕은 이내 삼켜버렸다.


그 후로 약 3년 후, 메이는 그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었다. 그 나쁜 놈이 헤어지자고 해놓고 확실히 끊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메이는 그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메이가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만큼은 좋은 추억들만 가지고 돌아가길 바랐다. 그렇게라도 메이가 한국에 와서 만날 수 있으니 그 남자에게 좀 고맙기도 했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 내가 우리 딸과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메이가 좋아요를 눌러놓았다. 그런 신호들을 볼 때마다 내 기억은 메이와 시드니 이곳저곳을 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때로 돌아가 있다. 그리고 항상 참 신기하고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로 말도 잘 안 통했던 우리가 그때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각자의 모국어가 달랐기 때문이고, 우리가 아니 특히 내가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이다. 가능한 불편한 말들은 모두 생략하고 살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매너라고 생각하는 수준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지냈기 때문에 메이와 더 깊은 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말들 때문에 스스로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공동생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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