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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17. 2023

남편은 아내가 돌보아야 하는 대상인가?

[나의 사람들] 남편


어쨌든 에이미가 남편을 소홀하게 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아요. 얘가 그렇게 바쁘지만 않았다면 자기 남편이 다른 곳에 마음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아차렸을 거예요.
-달과 6펜스-


"나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있나. 드디어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내 남편은 결혼하고 난 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금은 그 시기가 거의 막바지이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그 바람을 7년째 하고 있다. 우리는 결혼한 지 7년이 된 부부이다.


연애 때 지금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에게 대위라고 소개를 했지만 알고 보니 중위였다. '대위진'이면 대위나 마찬가지라고 자기는 절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한다. '마찬가지'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사실 그때 나는 대위가 뭔지, 중위가 뭔지도 몰랐다. 대위라는 말은 영화에서 들어본 것 같아 좀 멋있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아무튼 남편은 육군 장교였다.


결혼하고 약 일 년 후,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났고 그와 함께 남편은 공식적인 백수가 되었다. 군인을 그만둔 것이다. 애당초 군인이라고 결혼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군인이라는 직업을 좋아한 것도 아니었고, 또 연애하면서 남편은 계속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정말로 장교생활을 그만두었을 때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리고 군복을 벗은 지 정확히 1년 반 만에 남편은 다시 군복을 입게 되었다. 공군 부사관으로 재 입대를 한 것이다.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나는 공군이 된게 좋았다. 육군 장교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육군일 때는 새벽에 일어나 7시까지 출근을 했고 평균적으로 저녁 8-9시가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부사관이 된 후에는 오후 5시면 칼같이 퇴근하고 집에 왔다. 물론 이건 우리가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 세 살이었던 아이도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아이도 좋아하고, 나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행복이지'라는 생각을 할 만큼 만족스러운 일상이었다. 장교였던 사람이 부사관으로 근무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고 속상하긴 했지만, 잘 견뎌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건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남편은 만족하지 못했다. 공군이 되기 전까지 군무원 공부를 했었는데 그게 미련이 남는 듯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자기 계발을 위해 퇴근 후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남편에게 그러라고 했다. 내가 너무 흔쾌히 그러라고 하니 놀란 표정이었다.

자기는 내가 부사관생활 하는 거 만족한다면서 왜 다른 공부하겠다는 걸 허락하냐며 물었다. 방금 전까지 그래도 되냐고 물을 땐 언제고 오히려 나한테 되묻는다.

"자기가 뭐가 되든 나는 상관없어. 근데 자기는 지금 부사관으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뭐가 됐든 그리고 설령 군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군무원이 안되더라도, 그냥 자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무언가를 위해 공부하는 지금이 행복하면 그렇게 해."

내 말에 남편이 감동받았는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남자라 내가 울면 쳐다도 안 보면서 자기가 울고 있다. 약 올려 주려다가 말았다.


도서관이 10시까지 운영하니, 그래도 퇴근 후 저녁은 가족들과 먹으라 했고, 7시부터 10시까지 열심히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라고 했다. 남편은 세 살짜리 아들과 둘째를 임신한 아내를 두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짧은 각오를 남긴 채 비장하게 집을 나갔다. 그런데 그 첫날, 남편은 10시 반이 되도록 집에 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집까지 길어야 15분 거리인데, 남편이 연락도 없이 안 들어와서 전화를 했고, 그날 우리는 부부싸움을 했다.

비장하게 집을 나간 남편은 도서관으로 가던 중 차가 없이 걸어가던 동료 군인을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도서관이 아닌 술집을 갔고 술을 마시면서 오늘 우리 와이프에게 이런 감동적인 말을 들었다며 내 자랑을 했다고 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싸울 때마다 나의 무기가 되고 있다. 내가 당신한테 이렇게 실망했다고 그 후로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냐고 말이다.

이런 식의 일들이 많아졌다. 무언가 하겠다고 했을 때 믿고 지지해 준 나를 늘 실망시켰다. 그러다 나는 결국

너의 꿈이고 나발이고 가족을 위해서 참아야 하는 거 아니냐, 자기 행복하자고 가족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놈이라는 말을 해버렸다. 남편을 사랑과 아량으로 돌보겠다는 나의 초심은 통제와 구속으로 변해버렸다. 통제와 구속이라는 방법이 성공했으면 다행이겠지만 더 어긋나기만 했다. 그 후로 우리의 싸움은 날로 진화했다. 작년에는 진심으로 서로 이혼을 결심하기도 했었다.


아직도 남편 하고는 완벽하게 화해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의 못마땅한 점을 최대한 눈감아 주려고 노력하며 살고있다. 나만 노력하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는게 많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순간순간 이 원수 같은 남편이 짠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남편에게 관대해진다. 이런 마인드 컨트롤이 잘 안 되면 그냥 포기하듯 남편을 대하기도 한다. 그러면 의외로 남편이 먼저 미안하다고 다가오는 또 다른 어이없음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정리를 해 보면, 내가 남편에게 무언가 바라고 기대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오히려 사이가 좋았다. 그럴 때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편을 통제하고 구속하든, 아량으로 대하든, 애당초 남편은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돌봄'은 내 삶에 내가 원하는 남편의 역할을 세우기 위한 이기적인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 행복하게, 다만 가정 안에서 당신과 내가 좀 조화롭길 바랄 뿐이다. 묵묵히 서로를 믿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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