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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18. 2023

나의 아저씨, 우리 집 남자

[나의 사람들] 남편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셨나요? 집에 티브이가 없기도 하고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게 되는데, 그래도 주변에서 이 드라마 정말 너무 재밌다고 하는 것들은 따로 챙겨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되었고, 나의 인생드라마로 등극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며 남편을 생각했었다. 이지아와 이선균을 보며 우리 부부를 생각했다.

매일 퇴근길 이선균은 아내에게 "뭐 사가?"라고 문자를 하고

이지아는 그 문자를 보고도 답장을 안 한 채 휴대폰을 내려놓기도 하고, "됐어"라는 짧은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그들의 부부 관계가 얼마나 건조한지 강조하듯 그 장면을 꽤 자주 연출됐었다.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뻔한데, 참 꾸준히도 물어본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 우리 남편!" 하고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었다.


아이가 없던 신혼 때, 남편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새벽 두세 시가 넘도록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왔었다. 다음날 아침 주방으로 나가보니 발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 술 먹고 양말을 어디다 벗어놓고 잔 거야... 어휴!'

자고 일어난 남편은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이 냄새의 정체부터 밝히라고 다그쳤다. 임신 중이었던 나는 그 냄새를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지막으로 양꼬치 집에 갔다고 했다. 양꼬치를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닌데 다음날 와이프 잔소리를 들어가며 양꼬치에 대한 찬사를 이어갔다. 결론은, 너무 맛있어서 포장까지 해 왔다는 것이다. 나 먹으라고. 그 발냄새의 원인은 양꼬치였다. 양말 냄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크게 안심이 되었다. 

"아.. 양꼬치를 누가 포장을 해와. 이런 건 직접 가서 구우면서 먹어야지. 식으면 맛없어서 못 먹어."

포장해 온 양꼬치는 프라이팬에 데워서 남편이 다 먹었다. 


또 한 번은, 회식을 하고 딱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아이가 막 잠이든 10시쯤.

남편의 한 손에는 동네 빵집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 얇은 비닐이 터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자기야!! 빵 사 왔어!!"

"아니 이 시간에 뭔 빵을 사 와. 구현이 안 자고 있었음 쓸데없이 밤에 빵 먹잖아"

"자기 먹으라고"

"어휴 빵도 이런 것만 사 왔네"

회식 끝났다며 집에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면서 뭐 사갈까? 하고 문자를 보냈었는데 그냥 와도 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문 닫기 직전의 동네 빵집을 털어 온 것이다. 그 후로도 이런 식으로 빵을 사 온 적이 여러 번 있다. 근처에 파리바게뜨라도 있으면 그럴 땐 롤케이크나 파운드케이크를 주로 사 왔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빵이 들어있던 적은 거의 없다.


회식자리 마지막이 치킨집이면 치킨을 주로 사 왔다. 

"자기야, 나 치킨 안 좋아해."

그렇다. 나는 치킨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리고 밤에는 뭘 잘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체 왜 굳이 나 먹으라고 치킨을 싸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올 시간이 됐는데 안 온다 싶어 전화를 하면,

"자기야. 뭐 사갈까?"

"아니 그냥 와. 제발 그냥 와. 쓸데없이 돈 쓰지 말고 그냥 빨리 와"

알았다고 말해놓고, 그래도 빵봉지를 펼치며

"구현아~!! 아빠가 빵 사 왔다!!"

아이는 끝까지 먹지도 않을 빵을 뜯어먹으며 신나 한다.

"아... 다 씻기고 양치까지 다했는데......"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식탁 위에 덩그러니 남겨진 빵봉지나 치킨이 눈에 들어온다. 

그걸 보고 한숨이 나와서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술 먹고 집에 그냥 얌전히 들어오지 꼭 쓸데없이 뭘 사가지고 온다고.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사 온다 투덜댔었다. 치킨, 빵 이런 거 남편의 최애 음식이다. 내 말을 듣던 친구가 말했다.

"야 그래도 너 생각해서 사 오는 거 아니야? 은근 로맨티시스트인데?"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술자리가 아쉬워 집에 와서 나랑 술 한 잔 더 하고 싶어서 주로 음식을 포장해 온 것이고, 자기만 회식자리에서 맛있는 거 먹은 게 미안해서 나한테 뭐라도 사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세심히 알지 못하는 탓에 내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것만 사 온 꼴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회식 후 뭘 사 오는 일이 거의 없다. 제발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그냥 오라는 나의 성화에 조금 길들여진 탓이리라. 대신 주말이나 저녁에 가족 외식을 할 때, 여기 저번에 부대 사람들이랑 왔었는데 자기가 좋아할 것 같더라며 자기가 다녀온 회식 장소를 데려갈 뿐이다.


남들이 그렇게 말해주기 전까진 정말 몰랐다. 

왜 내 눈엔 안 보이고 남의 눈에만 보이는가, 내 남편의 장점.

그리고 왜 내 눈엔 그렇게 잘 보이는가, 다른 남자의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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