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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22. 2023

명절을 대하는 엄마의 자세

[나의 사람들] 엄마 2

설날을 앞두고, 이번에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냥 원주(내가 사는 곳)로 와~ 우리끼리 우리 집에서 그냥 명절 보내자. 음식 하지 말고 제발"
처음에 이런 제안을 했을 때는 웃으면서 "그럴까??" 하셨는데
이제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래도 어떻게 그러니"라고 하신다.

우리 친정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종교가 기독교인 탓도 있지만 아빠도 장남이 아니고 무튼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렇지만 엄마는 매 명절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종류별로 음식을 하신다. 그것도 혼자 다 하시는 셈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도 항상 우리 집에서 명절을 지냈다. 할머니 할아버지 생신 때도 그랬다. 어릴 때부터 나와 동생은 이게 참 불만이었다. 아빠가 첫째도 아닌데 왜 이게 당연하게 된 건지. 우리 집에 오는 친척들 조차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먼저 와서 엄마를 돕는 사람도 없었다. 너무 익숙한 일이라 당연한 일이 돼버린 것이다.


 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를 도왔었지만 그때에도 이거 왜 우리가 해야 하냐고 투덜댔었. 지금은 아빠가 옆에서 도와주면서 우리처럼 투덜대시는 듯하다. 그러면서 꽤 많이 도와주신다.

막내고모네 가족은 제주도에 살지만 시댁이 춘천이니다 보니 명절 때 춘천에 오고 하루 저녁 이상은 꼭 우리 집에 온다. 매 명절 때마다 제주에서 오는 건 아니지만 막내고모네가 오는 명절에는 엄마는 음식을 더 많이 신경 써서 하신다. 춘천에 혼자 사는 큰고모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불쑥불쑥 온다. 그만큼 우리 집이 편하다는 뜻이다.

혹여나 큰고모가 안 오고 있으면 올사람이 안 온다며 또 내내 생각하고 음식을 남겨둔다.

"엄마 그냥 보쌈 치킨 그런 거 사 먹자. 고모도 그러자고 하잖아. 힘들게 음식 하지 마"
엄마의 대답은 여전하다.
"어떻게 그러니."
"아니 엄마 힘드니까 그렇지"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돌아가시고 오빠집에 오는 건데, 작은 고모한테는 이제 우리 집이 친정인셈이야. 친정 오면 먹을 게 있어야 기분 좋을 거 아니니"라고 하신다.
고모들한테는 엄마아빠가 친정이라는 말에, 갑자기 목구멍까지 콱 막힌 듯 울컥했다.

나도 결혼을 하고 나니 친정이란 존재가 주는 든든함이 엄청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누구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애쓰는지. 엄마가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사를 안 지내기 때문에 엄마는 음식을 정해놓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명절 기분 나는 음식들을 한다. 그중에 나를 비롯하여 친척들 모두 좋아하는 양념게장은 꼭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이 아파 특히 게장은 만들기 힘들 텐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 집(친정)에 친척들이 모여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오가며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땐, 나 역시 행복하다. 분명 엄마가 만들어준 행복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번에는 연휴 전부터 유독 엄마가 보고 싶었다. 갓 5살이 된 딸아이를 하원시키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불쑥 물었다.

"이현아, 춘천 할머니 보고 싶지 않아?"

"응 보고 싶어. 그런데 갑자기 왜?"

"아니, 엄마도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 반찬 만들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이 꼬맹이 말이 너무 웃기고 기가 막혔다.


아이들만 데리고 일찌감치 친정에 와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이현이와 했던 대화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박장대소를 하며 밥을 먹었다.

역시나 엄마의 게장은 너무 맛있어 밥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만 봐도 이렇게 행복해지는데, 엄마한테 음식 하지 말라는 말을 그만둬야 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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