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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21. 2023

나는 문제아가 아니라고요 (2)

[나의 사람들] **대학 호텔경영학과 권예*

예상했던 대로 잠시 후에 과장님이 또 나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됐기 때문에 마음의 각오를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말씀 안 하셨다.

"수고했어. 쟤네 문제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해. 특히 권예*"

"네, 감사합니다."

나한테 수고했다고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받았던 스트레스가 완화되는 듯했다. 수고했다는 말에 감동받았다. 저 인간이 나한테 감동이라는 걸 주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과장님은 수고했다는 말 보다 권예*를 잘 관리하라는 말이 주목적이었겠지만.

학생들이 출국하는 날은 잠까지 설쳤다. 싱가포르에 무사히 도착해서, 기숙사까지 잘 들어갔다는 확인을 하고 그제야 곯아떨어졌다. 새벽 4시였다.


현지 담당자와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출결 사항을 전달받았고, 기숙사생활도 문제없이 잘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한테는 일일이 다 전화할 수는 없고 하루에 한두 명씩 보통 남학생 대표 한 명, 여학생 대표 한 명 이렇게 전화를 하며 수업은 만족스러운지 문제없이 잘 생활하고 있는지 등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추가로 한 명 더, 권예*학생에게는 수시로 전화했다. 처음의 의도는 특별관리 대상으로서 이 학생의 행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는데, 자주 통화하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곳 생활을 전해줬다. 예*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을 때도 있었다.

"오늘 실무교육 시작했는데 어때요?"

"구려요. 여기 시설 진짜 허접해요."

그 학교 시설이 별로인 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예지의 말을 들으니 어느 정도 일지 느낌이 왔다.

"그래도 안 빼먹고 열심히 참석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먼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다른 학생들은요? 다 잘 지내나요?"

이제 나머지 학생들의 안부도 예지를 통해 들었다. 한 명씩 다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해 봐도 대체로 "네"라는 대답만 할 뿐 예*처럼 구체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네. 애들도 뭐... 다 잘 지내요."

"영어는? 영어도 많이 늘었어요? 3개월 차부터는 호텔에 면접도 보러 다닐 거예요."

"여기 왔다고 3개월 만에 영어가 뭐 얼마나 늘겠어요. 꾸준히 계속해야죠."

얘는 이제 내 머리 꼭대기에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할 말을 먼저 해버린다.

"그래서 주말이나 학교 끝나고 많이 돌아다녀요."

"ㅎㅎ 그럼 클럽도 갔다 왔어요?"

"네 벌써 오자마자 갔다 왔죠."

오자마자 갔다 왔다니... 이 말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미 갔다 왔는데 별 탈 없이 지나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를 더 하고 말았다.

"그래도 늘 조심해야 해."

"네 알아요."

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참는 듯,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걱정했던 이유는, 그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한 달간 미국으로 단기 인턴십을 갔던 대학교 여학생 셋이서 클럽을 갔었는데, 한 명이 아침까지 연락이 안 돼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다. 함께 갔던 두 명의 친구가 다른 한 명이 연락이 안 되자 불안해진 마음에 회사에 연락을 했고 출근하자마자 난리가 났었다. 별일 없을거라 믿었지만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현지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사라졌다는 그 친구의 행방을 확인해 보니, 아침 늦은 시간에 들어와서 아무일 없다는 듯 자고 있었다고 했다. 큰 문제없이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담당자는 뭐 하는 거야? 알았어 몰랐어?"라는 질책을 들어야 한다. 연차가 쌓이고 일에 내공이 붙으면서 나중엔 그런 일이 생기면 '아 그렇구나'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왜 그렇게 전전긍긍했었는지. 그때의 나에게 돌아가서 릴랙스 하고 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서약서 받아 놨잖아. 개인행동 하다가 문제 생겨도 네 책임 아니야.'


3개월이 지나가면서, 학생들의 면접 현황들을 속속 전달받았다.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찍은 단체사진도 보내왔다. 이 학생들이 내 자식이라도 되는 냥 대단하고 기특해 보였다. 그리고 바랬다.

'다 취업돼라. 그래서 우리 회사 실적 좀 올려줘라.'

1~2주가 더 지나면서부터 한 명 한 명 근로 계약서도 전달받았다. 연수 기간이 끝나기 전에 취업이 확정되어서 현지에서 취업비자로 전환이 되어야 했다. 이때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했다. 학생비자에서 취업비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싱가포르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와야 하는데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종종 싱가포르 재 입국이 거절되기도 했다. 그맘때 나는 교회에 가면 싱가포르에 있는 내 담당 학생들을 위해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었다. 학생들을 위한 기도이자, 나를 위한 기도였다.

하나님이 간절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건지, 연수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스무명 모두 싱가포르의 호텔에 취업을 했고 취업비자 전환도 문제없이 통과했다.

대부분 F&B 분야로 취업을 했고, 취업한 호텔은 제각각이었다. 영어실력도 작용했겠지만, 아마 학생들의 외모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그렇다. 주로 진행했던 취업 분야가 호텔, 관광, 서비스 업종이 많았던 탓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외모지상주의가 심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화상으로 면접을 진행하는 도중, 면접자에게 전신이 다 보이도록 일어나 보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화상 면접이 시작되고 지원자의 얼굴만 보고 대충 짧게 끝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 결과는 뻔했다. 대체로 싱가포르 창이공항이나, 호텔 면접을 볼 때 그랬는데, 그들의 변명은 자기네 유니폼이 사이즈가 큰 게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때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 면접을 중단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까지 해서 합격을 하더라도 지원자를 싱가포르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종 선택은 지원자의 몫이었고 나는 불쾌한 감정을 배제시키고 다음 절차의 일을 했을 뿐이었다.


싱가포르의 5성급 호텔에 취업된 학생들도 몇 있었다. 영어실력은 솔직히 우위를 가리는 게 무의미했고, 소위 예쁘고 날씬한 몇 명은 싱가포르의 5성급 호텔에 근무하게 되었다. 나의 "관리대상"이었던 예*는 세 개 정도의 호텔에 합격했었고 그중에는 프런트 데스크 포지션도 있었다. 예*는 쉐라톤 호텔 F&B 포지션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 나는 이 학생들이 해외취업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대한의 청년들로 보였다. 그리고 기도를 이어갔다.

'제발 3개월만 버텨라!'


아무래도 거기까지는 욕심이었던 것 같다. 1개월 후에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힘들다, 일이 맞지 않는다, 생각했던 거랑 다르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였다. 그들의 결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었다. 근무한 지 1개월도 안돼서 퇴사를 한다고 하면 차후에 진행하게 될 지원자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며 그만큼 취업처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의 **대학에 대한 인식도 영향이 있으며 우리 회사의 이미지도 안 좋게 남겨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회사 좋자고 어린 학생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3개월은 근무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을 해보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회사에 보고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돌아오기로 결심 한 학생들을 위해서 항공권을 알아봐 주고 그동안 수고했고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 줬다. 그리고 이건 결코 포기의 귀국이 아님을 명심하길 바랐다.


현지 연수기간 중 학생들의 부모님이 컴플레인을 걸어온 적도 없었고, **대학 해당 학과 담당 교수님도 프로그램에 전반적으로 만족해했다.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대학 호텔경영학과 싱가포르 취업/연수 프로그램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귀국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혹시 다시 싱가포르 취업을 희망한다거나,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국가로 취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언제든 우리 회사가 도와줄 수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영업일까지 알아서 한 셈이다.


나의 시련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싱가포르에 남아 있던 학생들 중 한 여학생이 남학생 한 명을 폭행건으로 신고를 한 것이다. 폭행을 당했다는 여학생으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았고, 가해 남학생의 행동에 대해 학교에도 알릴 것이며 처벌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결국 그 남학생은 경찰에 잡혀가 이틀정도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남학생 어머니한테 전화 오고, 여학생 어머니한테 전화 오고. 이 사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내가 늘 두려워했던 그림들이 펼쳐졌다. 차라리 예상 가능한 컴플레인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행사건이라니. 먼 타국에서 감옥살이라니. 그 와중에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렸다는 사실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분노하기도 했다. 나는 일단 그 여학생을 위로하는데 급급했다.

내막을 들어보니, 이 두학생은 연수기간이 끝나갈 무렵 기숙사를 나와서 동거를 했다고 한다. 둘은 사귀는 사이였고 같이 살면서 싸우게 됐고 그러다 남학생이 여학생일 때린 것이다. 상상도 못 한 일에 나는 전의를 상실했다.


이 일을 둘째치고 현지에서 근무를 지속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또 안부를 확인차 전화를 했다. 이 난리통에도 남아서 근무 중인 학생들도 챙겨야 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동거한 커플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러다가 예*하고 통화를 하면서 묘하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랑 그렇게 자주 통화하면서, 왜 얘기 안 해줬어?"

"말할까도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서요. 선생님이 알아서 좋을 것도 없고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잖아요.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지금 이문제도 선생님이 해결해야 해요?"

맞는 말이었다. 되려 말문이 막혔다. 예*한 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 말 않자 예*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선생님, *훈이만 잘못한 거 아니에요. 물론 때린 건 잘못 한 거긴 한데요. 그 이유만으로 얘가 불이익당하는 게 있다면 그건 너무 억울할 거예요. 아 몰라요.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요. 난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신* (여학생 이름을 말하며) 걔가 선생님한테 얘기한 게 너무 어이가 없어요. 지는 안 때렸나. "

나는 아무튼 고맙고 건강 챙겨가며 일하라고, 잘 지내라고 이야기하고 통화를 마쳤다.


이 일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가 되었다. 둘이 동거하다 생긴 일이라는 걸 회사에서 알게 된 후로 여학생의 어머니는 사무실로 전화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여학생 어머니도 딸이 남자친구와 동거했던 걸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경찰에서 풀려난 *훈이와도 나중에 통화를 했는데 걱정 끼쳐서 죄송하다고 했다. 다행히 일하는 곳에서 잘 배려해 준 덕분에 다시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급여가 좀 적어서 그렇지 일도 재밌고 일하면서 영어도 더 많이 느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의 걱정을 안 하려고 무지하게 애썼다. 매일매일 퇴근하고 술을 마셨다.


어느덧, 싱가포르에 남아 일하고 있는 친구들의 근로 계약기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남은 학생들 모두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예*만 빼고.

예*는 F&B 파트 매니저로 승진하면서 계약을 연장하고 취업비자도 한 단계 더 높은 것으로 재발급받는다고 했다. 축하의 말도 전할 겸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했다.


"이렇게 잘 지낼 거면서, 처음에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어?"

"네? 제가요?"

"그래~ 괜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클럽가도 되냐, 외박해도 되냐 그래서 내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알아?"

"아 선생님. 그걸 왜 걱정해요. 저는 그냥 확인하고 싶었어요. 물론 클럽 가고 외박하는 거 내 자유죠. 근데 혹시라도 이게 규정상 안 되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오리엔테이션 때 계속 이건 안된다. 이런 건 안된다. 이런 건 주의해라 그런 말을 하도 많이 하셔가지고..."

"아, 내가 그랬었어? 근데 왜 그랬는지 알겠지?"

"ㅎㅎㅎ 네. 고생 많으시네요. 저는 싱가포르 가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거든요. 죄짓는 거만 아니면요. 근데 이게 학점이랑 졸업도 걸린 거라서 확인한 것뿐이에요."

그때 어떤 생각이 확 스치고 지나갔다. 또 불안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돌발질문을 해버렸다.

"근데, 너 남자친구는 없니?"

"네 없어요~"

예*는 엷게 웃으며 말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대화였다. 내가 또 괜한 걸 물었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싱가포르 호텔 취업/연수 프로그램 2기" 설명회 자료를 만들었다.

예*의 허락 없이 예*가 한 말을 자료에 넣었다.


"**대 호텔경영학과 선배의 성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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