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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13. 2023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시겠습니까?

[나의 사람들] 관사 아주머니

살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때, 특히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때 머릿속에 오버랩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내가 본 몇 안 되는 SF영화 중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이다. 나는 아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을 수없이 떠올리며 궁금해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그러나 영화 속 복제인간들은 과연 해방 후 모두 해피했을까? 격리시설을 탈출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 아는 만큼, 즉 경험한 만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제인간들 앞에 주어진 새로운 세상에 축복과 용기를 보내고 싶었다. 격리시설을 벗어나 펼쳐진 무한의 세계에서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행복해 보라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바람 뿐, 과연 그 복제인간들에게도 갑자기 마주하게 된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할지는 모를 일이다.


큰아이가 세 살 때 관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공군이었던 남편의 지방발령에 따라 처음으로 서울 수도권을 떠나 지방에서 관사생활을 시작했다. 공군 관사는 군부대 안에 위치해 있어 상당히 폐쇄적인(이것도 주관적인 생각이겠지만.) 주거 집단이다. 관사생활이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집 밖을 나가면 사람들은 아는 사이건, 모르는 사이건, 무조건 인사를 한다. 그리고 군인의 와이프들은 서로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언니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줌마도 아니고 정확하게 "아주머니"라고 서로를 호칭했다.


대부분의 세 살이 그렇겠지만 아이가 워낙 놀이터를 좋아했기 때문에 날이 좋은 날은 하원 후 거의 매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군인 가족들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관사에 먼저 자리 잡고 생활하는 아주머니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주워듣게 된다. 그날은 한 아주머니의 결혼과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고, 내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내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여자아이의 엄마인걸 알아서 마주치면 목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다. 그러니 그 이야기 틈에 끼어들어 적극적인 청중이 될 수는 없었다. 시선은 아이를 따라다니고 귀는 그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에 묶어 두었다.

아주머니 나이가 상당히 어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역시나,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아주머니라는 호칭은 참으로 어색하다.) 내 아이보다 한 살 많은 그 아주머니의 아는 둘째였고 위로 7살짜리 오빠가 있었으니, 큰아이가 7살인데도 20대. 대략적으로 어리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남자친구가 군대 가기 전 관계를 가진 것이 임신이 되었고, 남자친구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임신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했다고 했다. 그 후로 딸하나를 더 낳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출산한 나로서는 젊은 엄마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젊은 엄마의 체력도 부럽고 출산 후에도 늙지 않은 그들의 외모가 부러웠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 아주머니를 곁눈질로 힐끔 쳐다보았다. 참으로 앳된 모습이었다. 구체적인 나이를 알고 봐서 그런지 속으로 '아휴, 아기가 아기를 키우고 사네.'라고 생각했다.


군에 입대 후 나온 첫 휴가 때, 여자친구의 임신소식을 듣고 그 남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런 상황은 수많은 티브이 드라마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한두 명쯤은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다지 놀랍는 않았다. 당시 남자친구는 일반 병사로 공군에 입대했었다고 했다.

"당연히 저와 뱃속의 아기 때문에 생각이 많았겠죠. 그냥 군생활 마치고 전역해서 학교 복학하려고 했을 텐데 군에 있으면서 2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대요. 그 시간을 활용해서 가장 빨리,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직업을 가지는 방법을 찾아봤대요. 그래서 지금 헬기 조종사가 된 거예요."


남자친구는 고민도 없이 처자식을 위해 안정적인 직업인 군인을 택했고 병사생활에 이어 헬기 조종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크게 불만스러운 것 없이 살고 있다고. 안 그래도 그 아주머니의 가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젊다 못해 어린 부부인데 아이들도 구김 없이 너무 예쁘고 참 기특하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 아주머니가 물었다. 너무 일찍 결혼해서 사회생활이라던지 연애라던지 등등에 대한 미련이 없느냐고. 나도 묻고 싶은 걸 질문해 줘서 내심 고마웠다. 아주머니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별로 없어요. 제 성격이 원래 그런 것 같아요. 크게 욕심도 없고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않아요. 그때 그렇게 결혼을 안 했다면, 그렇다고 해서 제 삶이 대단하게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고요."


늦다면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3살짜리 아들하나를 키우고 있던 나는, 그때까지도 해보지 못한 일, 가보지 못한 곳, 더 하고 싶은 일 등등에 욕심과 미련이 많았던 터라 그 아주머니의 대답이 무척 놀라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기 선택에 후회 없이, 흔들림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궁금하고,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끊임없이 묻고 시때때로 후회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왜, 잘 모르는 사람의 지난 과거가 궁금했을까. 어째서 미련도 후회도 없을 수 있는지 궁금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편견과 오만을 마음에 품고 '왜 후회가 없겠어요. 그때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고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예상 답안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의 대답은 체념도 아니었다. 자신의 선택을 믿는 단단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가진 좋은 것에 집중하는 행복의 내공이 아닐까?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인간들은 격리시설 바깥 세상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삶은 그 다양성 속 선택의 연속이다. 때로는 나의 선택이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후회하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앞으로 펼쳐질 삶의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만일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며 또 하나의 인생을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이라고 착각하고 제멋대로 상상하던 나는 뭐랄까,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대안의 삶에 멋대로 싸움을 붙인 후 알아서 지고 있었다. 대안의 인생, 그런 건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행여 있더라도 분명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쪽 인생의 나'도 똑같이 '이쪽 인생의 나'를 시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태도에 관하여]_임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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