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얼굴에 들키지 않는 나이는 과연 올까?

by Nova G
앤은 자신이 얼굴을 붉힐 나이는 지났기를 바랐지만, 감정의 동요로부터 자유로운 나이를 지나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75p. 민음사


서울로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출근길이었다.

버스에 앉아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 남자가 금방이라도 말을 걸 것 같았다.


“어! 이게 얼마 만이야? 여기서 다 만나네. 어디 가는 중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결혼 전에 반년쯤 만났던, 모자를 자주 쓰고 다녔던 그 사람과 너무 닮아 있었을 뿐이었다.

마음속으로 내 뺨을 몇 번이나 때리며 정신을 차려보았지만, 끝내 망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동네와 그가 살았던 동네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아직도 거기에 산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대체로 별생각 없이 살지만, 아주 가끔 화장도 안 한 채(사실 매일 안 하지만) 가장 무방비한 얼굴로 집을 나선 날이면,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된다.


‘설마, 이 꼬라지로 마주치지는 않겠지.’

(제발 화장 좀 하고 다니자)



하지만 그런 일이 전혀 없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다.

외할머니의 팔순잔치 날이었다. 두 돌을 앞둔 첫아이를 돌보느라, 팔순잔치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편한 차림이었고 뿌리 염색 시기도 놓쳐 정수리 쪽 머리 색은 엉망이었다.


한정식집 입구의 예약 현황판에서 유난히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박혔다.

“○○주유소”

전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주유소 이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가 예약한 방 바로 옆방에 "○○주유소"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모임의 성격까지 단번에 알아챘다. 그의 여동생 상견례자리인 듯했다.


엄마가 아이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이는 개구진 얼굴로 나에게 달려와 안겼고,

그 뒤로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가 뒤이어 나오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유, 아이가 아주 똘똘하게 생겼네. 너무 예뻐요. 나는 언제 이런 손주 안아보나.”


그러고는 ○○주유소라고 적힌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의 어머니였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고 나서려는데, 아, 그가 걸어온다. 이쪽으로.

나는 급히 시선을 바닥으로 접어 아이의 신발을 신겼다. 끝내 그와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아이의 신발을 신기며, 내 의식은 온통 내 정수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내 정수리. 내 흰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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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지만, 그런 순간에 되살아나는 감정 앞에서 나조차도 놀라게 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나이가 들어야 이런 감정에 무뎌질 수 있을까. 얼굴을 붉히지 않을 나이는 과연 몇 살일까.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면 모든 게 자연스레 잊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 튀어나오는 이런 내 모습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고 그 남자들이 그리운 것은 분명 아니다.


잊히지 않는 건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시절의 나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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