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버린 얼굴, 혹시 ‘견디는 삶’의 증거는 아닐까요?

개인의 표정 뒤에 숨은 조직의 구조

by Nova G
"세상에, 월터경." 클레이 부인이 외쳤다. "정말 너무 가혹하십니다. 그 사람들도 좀 가엾게 여겨 주세요. 세상 남자들이 다 미남으로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바다에 살면 생김새가 나아지지 않는 건 분명해요.(...)" - 33p. 민음사


남편이 공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우리 집에 한 장교를 초대한 적이 있다. 중위였고, 중대장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교가 되기 위해 삼수까지 했다고 했다.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스스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고 했다. 형도 장교였기에, 자신만 그 길에 오르지 못하면 아버지의 실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의무복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젊은 장교는 군복을 벗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느냐고.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냐고,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냐고.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군에서 본받고 싶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인격적으로도 그렇고, 무엇보다 군인들의 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겉모습만 보고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다시 묻자, 그는 표정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그래서인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였다고. 그들의 모습이 꼭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에서 타당함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도 클레이 부인처럼, 월터 경의 해군비하의 말을 읽으며 기가 찼다. 어떻게 저토록 편협한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외모 하나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다니.


하지만 그때 그 장교를 떠올리니 생각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그렇다고 월터경의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저런 어두운 얼굴, 불행한 표정은 비단 군대라는 조직에만 존재하는 걸까. 어느 조직을 가도, 표정이 먼저 닳아버린 사람들은 있다. 문득 그 중위가 군을 떠난 뒤 들어간 다른 조직에서는 과연 본받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가 그랬기를 바란다.


그날, 그의 말 앞에서 더 이상의 질문을 멈춘 것은 나 역시 군이라는 조직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 조직은 참 어두운 곳이라고 느껴왔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멈춰 생각을 하게 된 지점은, 클레이 부인의 이 한 문장이었다.


“그 사람들도 좀 가엾게 여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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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 보이지 않는 얼굴을 마주할 때, 우리는 너무 쉽게 개인의 나약함이나 능력 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얼굴이 어떤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묻지 않는 한, 판단은 언제나 오류를 만들어낸다.

군대라는 어두운 조직 속에서 굳은 표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살아가게 만든 조직의 문화를 먼저 바라봤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이 시간이 아니라 매일을 견디듯 살아야 하는 구조라면, 바뀌어야 할 것은 개인의 얼굴이 아니라 그 얼굴을 만들어내는 환경일 것이다.


그래야만 군대 안에서, 그리고 이름만 다른 수많은 조직 안에서 더 이상의 침묵과 절망, 그리고 더 이상의 죽음(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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