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허영, 체면 사이에서 나를 찾아가기
자신의 저택을 세놓기로 한 계획이 알려지는 것은 월터 경에게 감당하기 힘들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26p. 민음사
우리 회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회사였다.
계약서상 근로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였지만, 회사가 정한 내부 규정은 10시 출근 5시 퇴근이었다. 그런데 막상 입사해 보니 그마저도 형식에 가까웠다. 실상은 자율 출근, 자율 퇴근이었다. 점심 무렵에 출근해 일을 마치면 2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5시에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금요일은 비공식적인 재택근무의 날이라 사무실을 나 혼자 지키는 날도 많았다. 집보다 회사가 좋았던 나는, 아무도 없는 금요일 출근이 그렇게 좋았다.
출근길에 법인카드로 커피를 사고, 점심도 그날 먹고 싶은 걸 골라 먹었다. 아침마다 내 돈으로 커피를 사 마시던 나를 보고 대표님은 왜 법카를 쓰지 않느냐며, 커피랑 밥 정도는 마음 편히 먹으라고 했다.
강요된 회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회식은 주로 점심시간에 했고, 아이 둘을 키우는 내 상황을 모두이해해 주었다. 출장에서도 나는 늘 배려를 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은 나도 출장을 가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방학이 되면 눈치 보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이었고,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늘 이렇게 답했다.
“우리 모두 아이를 키워서 잘 압니다. 전화만 잘 받으면 됩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서도, 키즈카페에서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일해도 대표님은 단 한 번도 직원들에게 불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금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직접 나오시거나, 그것도 어려울 때는 직원들에게 미안해하셨다. 주말도 아니고, 금요일인데도.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그렇게 일해서 회사가 돌아가요?”
우리 팀에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과 새벽 다섯 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과의 시차를 고려해 각자 가장 효율적인 시간에 일했을 뿐이다. 그 둘이 처리하지 못한 일이나 한국 업무시간에 필요한 일은 주로 내가 맡았다. 최근 1년 동안 나는 주 1~2회만 출근했다.
그런 회사가 지금, 재정적 어려움으로 문을 닫기 직전에 있다. 국제정세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나는 결국 퇴사 권고를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어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틀 정도는 깊은 우울 속에 머물렀다.
내가 슬펐던 이유는 단지 회사를 잃어서가 아니다. 퇴사를 앞둔 나의 처지가 월터 경처럼 ‘감당하기 힘들 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경력도 있고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마음만 먹으면 같은 업계로 이직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미 다른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은 병에 걸려버렸다.
월터 경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해 보이게 될 자신이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위상이 달라지는 일이 그에게는 훨씬 견디기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의 근무형태를 보고 남편은 신의 직장이라 했다. 나의 지인들은 최고의 직업이다,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것도 다 너의 능력이 아니겠냐, 거기 나 좀 취직시켜 달라 등등 부러움의 말이 끊이지 않았다.
‘신의 직장’이라는 말, 능력의 증거처럼 따라붙던 평가들, 그 모든 것을 함께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이 내가 미련을 두고 있는 이유이다.
나는 또 한 번 깨닫는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나를 영원히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나 역시 내 가치를 회사라는 곳에 조용히 세워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월터 경이 저택을 잃으며 체면을 잃었다고 느꼈듯, 나 또한 소속감이라는 것에서 그런 허영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러움 속에 있는 내가 아니라, 아무 설명 없이도 나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곳을 향해
조금 느리게, 다시 걸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