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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09. 2023

나의 여신님, 김태희 보다 예쁜

[나의 사람들] 수희 언니




시드니 시티 생활을 한지 4개월쯤, 무료했다. 여기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한심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룸메이트들이 하나같이 다 바빴다. 좀 마음이 맞는 것 같았던 일본 친구는 나와 룸메이트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외국인 친구가 룸메이트로 들어오길 바랐지만 나보다 세 살 많은 주영이라는 언니가 들어왔다. 주영이 언니는 거의 늘 친구와 함께 지냈다. 내 룸메이트가 갑자기 두 명이 생긴 듯했다. 나는 이럴 거면 이 둘이 왜 집을 따로따로 얻었는지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깨달은 건데, 언니들 둘이 한집에서 같이 살았으면 둘 중 한 명도 나와 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언니들이 따로따로 살면서 한 명이라도 나와 룸메이트가 되어 준 것이 큰 행운이었던 것이다.

주영이 언니 친구가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보는 이마저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라고 생각했다.


"안녕, 그레이스. 나는 수희야. 영어 이름은 쥬디인데 난 그냥 수희가 좋아."


언니는 영어도 잘했고, 김태희 보다 예쁘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했고 소위 부자동네에서 공주님처럼 살았다고 했다. 강남의 **고등학교 얼짱으로도 유명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주영이 언니가 해 준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는 꼭 아닌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니 주영이 언니는 수희 언니보다 더 공부를 잘해야 갈 수 있는 대학교를 졸업했다. 난 이 두 언니들을 가만히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 저런 관계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알뜰 살뜰 살폈다. 그야말로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사이, 맛있는 것이 생기면 꼭 챙겨두거나 알아뒀다가 서로를 위해 베풀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꼽사리를 꼈었는데, 이런 시간들이 나는 너무 좋았다. 만나고 정들면 헤어지고 만나고 정들면 헤어지고, 그런 타국 생활이 외로워 미칠 것 같았던 때였는데 이 언니들이 그런 외로움을 잊게 해 줬다. 나는 사촌 언니조차 없었는데, 둘의 애틋한 관계에 내가 끼어드니 눈치가 없던 건지 몰라도, 눈치 볼 겨를도 없이 갑자기 내 언니가 생긴 것 같아 마냥 좋기만 했다.



언니들은 참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빈틈 많고 인간적인 모습이 보살펴주고 싶은 동생들 같기도 했다. 그때 내가 25살이었고, 언니들은 28살이었다. 그때 당시 내가 상상하는 28살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나도 호주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살 거라는 데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28살에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왔다니.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영이 언니는 여행을 좋아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끝나면 뉴질랜드, 캐나다로 또 워킹홀리데이를 갈 거라고 했다. 그야말로 여행하며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한국에는 언제 갈 거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했다. 안 갈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언니는 그럼 K대학교 나온 거 안 아까워? 라고 물었는데 별로 예쁘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한 커다란 귀걸이 하나를 빼내듯이 "아니"라고 시크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어쩐지 언니의 표정이 그 이상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꼬치꼬치 더 물어봤더라도 언니는 계속해서 대답해 줬을 것이다. 그러면 수희 언니는 왜 호주에 왔냐고, 주영이 언니에 대해서는 그만 묻기로 하고 수희 언니로 화제를 돌렸다. 수희 언니는 무역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그냥 쉬러 왔다고 했다. 돌아갈 날을 딱히 정하지 않고 오래오래 기약 없이 쉬고 싶어서 3개월 밖에 안되는 관광비자보다 길게 머무를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다고 했다. 3개월도 짧은 여행이라니. 이 언니들이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수희는 자기와 달리 한국에서의 생활이 있으니 금방 돌아갈 거긴 한데 얼마나 금방일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금방이라고 말했지만 언니가 말하는 금방은 아무튼 3개월보다 길다는 거다. 그러면 왜 호주로 왔냐고 물으니, 수희는 그저 내가 호주에 있어서 온 것이고, 주영이 언니 자신은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가보게 될 많은 몇 개의 나라들 중 그냥 호주를 제일 먼저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 이유도 심플했다. 비자 받기가 제일 쉬워서. 언니에게는 그 심플한 선택이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을 만들어줬다. 아무튼 주영이 언니가 한 달 정도 먼저 호주에 왔고, 그 후에 수희 언니는 사직서를 내고 주영이 언니를 따라 호주에 왔던 것이다. 호주는 한창 뜨거운 여름이었다. 20대 후반의 연말, 한 명은 계획 없는 여행을 시작했고, 한 명은 두려움 없이 퇴사를 했다. 만약 내가 28살에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나는 호주 땅을 밟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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