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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05. 2023

나는 자랑스런 아빠의 업적 2

[나의 사람들] 나의 친애하는 아빠_2

바쁜 일상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아이를 키우며 내 자리 지키려고 더 치열하게 일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모든 일들이 빠르게 과거가 되었다. 삶의 여러 고비를 넘기고 통과의례 몇 가지를 거치며 나는 성장하는 듯했다. 내가 성장할수록 엄마나 아빠의 힘없는 어깨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오히려 내 나이 마흔에 접어들고 보니 부모님이 작아 보이는 일이 잦아진다. ‘힘든 일’이라는 건 생의 아무 때나 끊임없이 찾아온다. 이제 부모님한테는 그런 일이 좀 없었으면 싶지만 나이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는 법이다.




작년에 남동생이 결혼을 하며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엄마아빠도 막냇동생만 장가보내면 당신들 삶의 모든 숙제는 마치는 것이라는 냥 아들의 결혼을 오랫동안 바라오셨다. 그러나 남동생이 결혼하기 전, 엄마 아빠에게는 힘든 일이 또 찾아왔고 대체로 그랬듯 이유는 돈이었다. 남동생 부부가 전셋집을 구하는데 당장 필요한 계약금이 부족해서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음만큼 돈도 늘 그 자리에 있어주면 좋으련만. 아들의 새 출발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 아빠의 어깨는 또 한 번 작아졌다. 이번에는 그 작아진 뒷모습을 엄마 혼자 바라보았다. 엄마는 무뚝뚝한 딸들이 아빠에게 조금이라도 다정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종종 아빠의 근황을 전해준다. “아빠가 이러이러한 일로 힘들어하니 아빠한테 전화 좀 해.”라고 하시며 그날도 전화로 아빠이야기를 하셨다.


아빠는 평소 속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분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아빠들이 그러하겠지만 힘든 일은 혼자만 삼키고 잘 삼켜지지 않으면 술과 함께 삼킨다. 결코 말로써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사람아, 나도 힘들어.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이만큼 밖에 안 되는지 속상해”라고 엄마에게 평소답지 않은 말을 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나에게 전화로 하시며, 그렇게 말하는  아빠가 너무 짠하다며 엄마의 속상한 마음도 함께 털어놓으셨다. 그날은 아빠에게 전화를 하지 못했다. 옛날에 보았던 아빠의 힘없는 뒷모습이 아른거려 전화를 했다간 아빠에게 힘내라는 말은커녕 우는 목소리만 들려줄 것 같았다. 내 마음이 평정을 찾기를 기다렸지만 밤이 되어도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려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빠에게 내가 힘을 줘야 하는데 우리 아빠가 너무 애잔해서 전화기만 보며 망설이다가 하루가 다 갔다. 그날 밤, 나는 전화대신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앞부분 생략)

아빠, 며칠 전에 은* 일로 속상하고 힘들지...? 엄마도 아빠도 많이 힘든 거 알아.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해주고 싶은 마음만큼 못 해줄 때의 속상함을 나도 아니까 다른 때 보다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 여자들은 힘들고 속상할 때 같이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돼서 엄마랑 우리는 잘 그러는데, 아빠는 그런 방법으로 속상한 마음 달래볼 길도 없이 힘들어하기만 하고 더 술에 의지 하게 될까 갑자기 걱정이 되었어.

사실 걱정이라기보다 우리 아빠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어. 평생 이렇게 외로운 마음이 들었던 거면 어쩌지...... 마음이 아팠어. 아빠까지 세심하게 챙기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서,  애교 많은 딸이 아니라서 미안한 마음도 크고. 지금도 살갑게 전화해서 목소리 들려주며 ‘우리 아빠 힘내 사랑해’라고 말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오래도록 볼 수 있게 이렇게 글로 남길게.

“우리 아빠 힘내! 사랑해!!”

은* 일은 우리가 쉽게 해결하진 못하지만, 난 그래도 은*가 추진력 있게 잘한 거라고 생각해. 지금 당장은 계약금 날아갈까, 대출 안 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게 되지만 어떻게든 이 일이 지나고 멀리서 보면 잘 해결이 되어 있을 거라 믿어. 돈이 해결이 되던 안 되던, 은*가 더 많은 것을 배웠겠지. 엄마 아빠도 은*한 테 못해주는 것에만 초점을 두고 속상해하지 말고 은*가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를 응원해 주자.

(중략)

그리고 내가 해외취업일 시작 할 때, 회사 들어갔을 때가 서른 살이었었어. 나 그 회사 정말 너무 힘들었거든. 적응 못하고 한 달 두 달 너무 지옥 같아서 그만두고 싶었는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 어릴 때 아빠가 작업복 입고 출근 하던 모습이 떠오르는 거야. 엄마는 떡볶이 장사 하던 모습. 그런 게 머릿속에 사진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아! 우리 엄마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정말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다 생각한 적 분명 있을 텐데…….  그때마다 참고 또 참으며 이겨내셨겠지……? 그게 전부 다 자식들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참아낸 이유 중에 분명히 나도 있겠지?’

그러니까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겠더라고.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어. 야근하고 밤 11시에 들어가면서 힘들어서 택시 안에서 서울 야경 보며 서러워 운 적도 있고, 밤길이 무서워 벌벌 떨며 뛰어서 집에 들어간 적도 많았어. 근데 결국 그 회사에서 인정받아서 매년 최고로 연봉 올려줬고 과장까지 승진하고 다음 회사로 이직할 때 대우도 잘 받았어. 그때 아빠를 생각하며 힘을 냈었던 거야. 아빠가 그때마다 힘을 내라고 말을 해 준건 아니었지만 아빠가 살아온 모습 그 자체가 나를 힘든 순간마다 견뎌내게 했어.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자랑 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이만큼 날 키웠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인생이 거기서 끝은 아니지만. 지금도 엄마 아빠가 만들어준 어릴 때 좋은 추억으로, 엄마 아빠가 우리한테 해줬던 방법으로 내 아들딸도 키우고 있어. 아빠는 늘 나를 자랑스러워했지. 지금도 그 마음 변함없을 거라고 생각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견한 아빠딸, 그게 다 아빠가 이뤄낸 거야. 이제 엄마 아빠가 건강하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어. 그래야 미루고 있는 효도를 할 텐데 말이지. 효도를 미루면 안 되는데 미루게 되네. 미안해. 아무튼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술도 줄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요 아빠.


아빠의 첫째 딸로 태어나서 너무 가슴 벅차게 행복하고 고마워. 엄마 아빠가 준 사랑으로 분명히 우리 애들도 잘 키울 거야. 얼마나 멋지고 예쁘게 잘 크는지 오래도록 옆에서 봐야 해! 알았지?

(이하 생략)




정도밖에 안 돼서’라는 아빠 말에 아빠가 이뤄놓은 ‘나’라는 업적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결코 이 정도 밖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늦은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서 그런지 아빠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며칠 후 엄마와 통화하다가 요즘 아빠 컨디션이 어떤지 묻고, 얼마 전에 아빠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방문 닫고 한참 울다 잤겠지.” 하셨다.

내 메시지를 읽으며 울었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빠의 작은 어깨가 선명하게 그려져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었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어릴 땐 아빠의 등이 언제나 크고 든든할 줄만 알았다. 작아지는 아빠의 뒷모습만큼 이제는 내가 그 크기를 이어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뒷모습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때론 크게 때론 작게 보였던 아빠의 뒷모습은 항상 성실했다는 사실이다. 모는 말보다 행동으로서 자식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고 한다. 부모가 되고 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게 된다. 식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보고 배운 대로,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 매 순간 최선을 다 한다면 그것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 부모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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