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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메이징 그레이스 Jan 10. 2023

나의 여신님, 명문대 출신의 시급

[나의 사람들] 수희 언니


언니들은 여행하고 휴식하러 호주에 왔지만 나는 영어를 배우러 왔다. 호주에 온 목적은 다 달랐지만 우리는 모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라는 게 참 재밌는 비자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합법적으로 일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고 여행도 할 수 있다. 호주에서 돈 벌면서 영어공부하고 호주의 자연도 실컷 여행하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형편은 넉넉지 못하지만 영어에 목이 마른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온다. 한 번에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호주는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1차 산업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국가이다. 그런 반면 인구가 적어 일손이 항상 부족하다. 그러니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비자인 셈이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나 같은 사람들은 시드니 시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그때 당시 시드니 시티에서 한국 학생들의 평균 시급은 8~9불이었다. 주로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주방보조로 설거지나 청소를 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호주의 최저임금보다 못한 수준이었지만 가진 영어실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일자리라도 구하면 다행이었다.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호주의 시골 농장으로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들리는 말로는 영어는커녕 한국말조차 한마디 안 하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돈은 많이 번다고 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호주 입장에서 보면 아주 똑똑한 비자이다.

“우리나라 와서 일 좀 도와줘. 그런데 기본적인 영어는 해야 일을 할 수 있으니, 영어공부도 할 수 있게 해 줄게 대신 딱 3개월 만이야. (지금은 기간이 늘어난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천혜자연을 품은 나라야. 돈 벌어서 우리나라 이곳저곳도 많이 여행하고 즐기며 번 돈 다 쓰고 가렴.”

이게 워킹홀리데이비자의 실체이다. 하긴, 그 실체를 알았더라도 나는 호주를 갔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워홀러들 중에는 나와 같은 생각이 같은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Masuya라는 일본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랭귀지스쿨을 다니고 주말과 목요일 저녁만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나도 처음에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스시가게에서 8-9불 받으며 일을 하다가, 랭귀지 스쿨의 같은 반 일본 친구에게 소개를 받고 Masuya에 이력서를 냈다. Masuya에서는 딱 합법적인 최저임금을 받았고 거기에 보너스로 팁도 받았다. Masuya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한국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언니들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주영이 언니는 시간당 10불짜리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수희언니가 말했다. “K대 나와서 시간당 10불 번다고 좋아해. 너무 귀엽지 않니?” 그러거나 말거나 주영이 언니는 샌드위치가게에서 일하게 된 걸 아주 만족해했다. 샌드위치도 실컷 먹고, 또 팔고 남은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와서 나와 수희언니에게 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 샌드위치는 정말 맛있었다. 언니에게 여기서 오래오래 일하라고 말했다.

수희언니는 대학교 1학년때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호주식 영어도 금방 흡수했고 영어를 잘하니 적당한 일거리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이스한 언니의 미소는 조금 부족한 영어도 커버해 주는 특별한 무기였다. 수희언니는 주말에 대형 쇼핑몰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시간당 15불이나 받았다. 언니도 나처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일요일만 일을 했다. 나는 주말에 근무 스케줄이 없으면 언니가 일하는 곳에 놀러 가 사람 구경도 하고 언니의 말동무도 되어 주었다. 시티를 조금 벗어난 외곽의 쇼핑몰이었는데 그 동네는 한국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시급은 우리 중 최고로 많았지만 주말만 일을 하다 보니 수입이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언니는 주중에 일을 해야겠다며 새로운 일을 찾아봐야겠다고 했었다. 나보다 훨씬 늦게 호주에 왔지만 금방 적응하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새로운 일도 구할 수 있는 언니가 부러웠다. 그런 언니가 부럽다고 했더니 언니는 또 웃으며 얘기했다.


"그레이스야,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하는 영어는 다 쉬운 말들이야. 내가 하는 영어 너 못 알아들은 적 있어? 없지? 나도 어려운 단어는 잘 모르고 어려운 영어는 못해. 진짜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랑 얘기하면 내 영어실력 금방 들통나. "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 어쩐지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야단스러웠다. 그날도 수희언니는 자기 집에 안 가고 주영이 언니랑 우리 집에 있었다.

"그레이스야, 언니 서류 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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