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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Sep 15. 2020

내 하루를 바꿀 배짱

생각해보면 안주해 있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이가 구태여 성장을 갈망하는 것을 뜻하진 않지만, 나의 모습과 주변의 것들을 바꾸려는 욕구가 있다. 바꾸지 않으면 지루해 몸이 간지럽다고, 그렇게 느껴졌다. 반년 주기로 방의 가구들 위치를 바꾸고 새로 들인 취미생활도 이 정도면 많이 했지 하며 새 취미를 들여온다.

하나를 진득하지 파지 못하고 (애초에 ‘진득하게’란 기간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다) 안정된 건 안정된 대로 흥미가 바닥을 치는 이 성격이 득이 더 많을까 실이 더 많을까.


이 변화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아하는 과정 중 하나다. 적지 않은 수로 계획에 그치고 말 때도 있지만..

아무튼 계획 작성 초반 즈음에서는 분명히 할까 말까에서 후자를 선택하는 것도 분명 적혀져 있던 것 같은데, 눈 깜박하면 결국 일을 저질러놓는 일도 다반 수다. 계획을 세우며 으이구 화상아 또 뭔 일을 저지르고 책임지려 발버둥 치려고,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성격은 선천적인 동시에 후천적으로 얻은 것일 것이다. 

내 주변에는 미대를 그만두면서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것들이 나중에 다른 데 다 쓰이게 돼있다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 거름이 될 거라 말해주는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큰 맘먹고 도전한 플리마켓에서 팔리지 못하고 남은 딱 한 개를 보며, 아쉬운 게 있어야 다음에 또 하지 않냐며 이 한 개가 다음 마켓을 열게 해 줄 거라며, 그렇게 말해 준 지인이 있었다. 나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할 수 있는 도전에 진심을 다해 내비쳐 준 다정한 걱정은 아쉽게 내 귀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아무도 날 말릴 수 없어(느낌표 오억 개) 난 내 기름에 성냥 깨비 하나 탁 불 붙여 던져주는 말들이 필요했다. 설령 그 성냥 깨비가 미쳐 붙지 못해 활활 타오르지 못하거나, 도중에 멕아리 없이 꺼져버려도 그 또한 재미지다. (오히려 매번 집어삼킬 듯이 불이 붙어버리면 또 흥미를 잃고 떠날지도 모른다 하하.) 


이왕 모아드린 성냥개비를 종이상자 옆에 비비는 대로 족족 불이 붙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지는 않긴 하다. 나 이만큼 성냥개비 모았어! 그래서 이따아아아만한 불을 일으킬 거야 똑똑히 봐! 기세등등히 저질러놓고 연기 한 줌 보지 못하기도 한다. 아, 쪽팔려...... 워킹홀리데이가 그랬고 유튜브가 그랬다. (워홀을 무슨 나는 지금 한국 서울 어느 곳의 집 한 구석에 앉아있다) 다음에는 이러지 않도록 떳떳이 자랑할 만한 결과가 나온 뒤에 떠벌려야지 다짐하지만 사람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건 분명 멋들어지게 될 거라고 그 과정을 자랑하고 싶어져 버린다. 어찌 된 게 다른 이들은 잘라내기 기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지, 언제 해낸지도 모를 성과들만 쇽쇽 가져와 내 과정뿐인 껍데기를 더욱 초라해 보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계속 과정과 계획을 만들어 내게 된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내 의지로 벌떡 일어나 뒤집어 엎어버리지 않는 이상, 내가 살면서 절대 겪을 일이 없는 일들이 쌓일 듯 많지 않은가. 그리고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호기심이 생긴다. 이만큼이나 살았는데도 아직 내가 발끝도 보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게 너무 흥미롭지 않나요. 저라도 겁을 안 먹겠냐만은 겁을 이겨내는 호기심이랄까.

책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는 걸지도 모른다. 나에겐 없는 삶을 무려 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지금도 삶아가고 있을 사람들. 


요즘은 작업실을 알아보고 있다. 스물 초반이 무슨 벌써부터 작업실인가 싶을 수 있지만 현 상황이 지루해졌다. 집 안에 나만의 작고 안정된 (경제적으로 말이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이니 내 작은 공간에 따로 들어갈 집세는 감사히도 없다.) 작업실이 있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몇 년을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으니 몇 년 뒤 이 공간에서 내 모습이 기대되지 않았다. 한글을 켜고 제목을 적었다. 제목 <작업실 계획서>. 휘뚜루 마뚜루 견적과 예상 모습들을 그리고 친구들에게 얘기해보았다. 역시나 붙지도 않은 기름에 물부터 끼얹어 버렸지만 한 귀로 넘겨버렸다. 

벌써부터 완성된 작업실에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이 과정이 한없이 즐겁다. 바뀔 환경이 기대되고 바뀔 내 모습이 기대되고 그 모든 걸 기어코 바꾸고야 말 내 배짱이 기대된다.

별 다를 거 없는 하루하루의 책임은 결국 나한테 있는 게 아닐까.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모두 결국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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