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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Sep 22. 2020

쫄보의 글쓰기

글을 남기는 것에 있어 최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어떤 플랫폼이라도 타인이 내 글을 볼 수  있다는 게 베이스에 깔려있으니, 무의식적으로 완벽하게 본심을 까놓고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글에서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게 전제 하인 일기장에서조차 일상을 왜곡하고 꾸며내서 쓴다 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하물며 넷상에서의 글은 어떨까. 

좋아요 등 의 알림을 최대한 보지 않고 아예 계정을 로그아웃 해봐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해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남기기를 고민하던 나는 일종의 꼼수를 쓰기 시작했다. 여러 글쓰기 장소를 모색한 결과 핸드폰 메모장이 가장 필터 없이 써진다는 걸 깨달았다. 노트북이나 컴퓨터 키보드면 효과가 떨어진다. 반드시 핸드폰 메모장에 핸드폰 키보드 조합이어야 한다. 각을 살리고 준비를 갖추면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친구와의 카톡방에서 ㅋㅋㅋㅋㅋ를 연타하듯 딱 그런 자세로 써야 꾸밈없게 남길 수 있다. 우리가 ㅋㅋㅋ를 보낼 때 ㅋ는 몇 개 보내지, 중간에 자연스러워 보이게 ㅌ을 섞을까 말까, 너무 많이 보내서 사람이 헤퍼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진 않지 않은가.


그래서 브런치나 블로그 등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올릴 때는 메모장에 먼저 글을 쓴 뒤, 그대로 복사해 플랫폼에 붙여 넣기 후 업로드한 뒤 뒤끝 없이 로그아웃 버튼을 누른다. 반응이 어찌 안 궁금하랴 싶으면서도 단순하게 내 눈에 안 보이다 보면 호기심도 떨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요즘은 블로그의 임시저장 기능도 자주 쓰고 있다. 다른 플랫폼이 비해 어쩐지 일기장에 더 가까운 듯한(그럼에도 오픈된 공간이지만) 블로그도 아주 편한 마음으로 글을 남기진 못하는데, '임시저장'은 확실히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가감 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나열하다 블로그에 정식 게재하고 싶어 지면 이 역시 큰 맥락의 수정 없이 Ctrl+C, Ctrl+V (복사 붙여 넣기 단축키)를 누르고 깔끔히 창을 닫는다.


이 과정이 정착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저렇게 플랫폼으로 글을 옮긴 뒤, 그 곳에서 다시 글을 재검 수정하거나 하는 식도 해보곤 했었다. 다만 그렇게 하는 순간 우습게도 또 다시 필터가 씌워졌다. 이전에 이 곳에 남긴 몇 글도 그런 식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지금 스크롤을 내려 다시 내 글을 읽어본다면 이건 누구의 이야기를 써 놓은건가 싶을 지도 모른다. 난 하고싶은 이야기가 아직 아주 많지만 구태여 시선이 무서워 색감을 조정하고 싶진 않다.


공개된 곳에 글을 올리면서 그 정도 자신감도 없냐고? 맞다. 난 쫄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머릿속 생각을 무언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안 분출해내기엔 머리안에서 그대로 터질 것만 같아서 쫄보임을 인정하고 올리고 튄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세상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척이 아닌 정말 그러한) 으른이 되어있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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