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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봄 Feb 18. 2021

기록하고 싶지 않은 이들의 기록지

부유하는 말을 잡아두고 싶은 순간을 떠올립니다
잠을 청하려 감은 눈 앞에 문득 떠다니는 말이나 술과 함께 지샌 그 밤의 담소들이나 그런 것들은 대게 하룻밤이 지나면 금세 사라져 있기에
나눈 말을 활자로 바꾸고 자판을 두드려 새겨놓습니다.
글 쓰는 공간을 여는 건 대부분 그런 순간들입니다.

애정해 마지않는 누군가와 나눈 말들을 선뜻 쓰지 못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터입니다.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글을 쓴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버릴 때마다 작게 소름이 돋아나버립니다.
언제 내 일상에서 사라져도 이상할 거라고는 없는 그런 이유를 가진 이들과의 추억을 기록해 두는 것은
정말 이상할 거 없다고 확인사살이라도 해버리는 것 같아서 저릿한 마음이 듭니다. 미리 헤어질 준비를 하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언젠가 그런 일이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할 때 그래서 없어지고 그러자 잊어버리기 시작할 때 그때의 내가 저린 마음이 아니길 바랍니다. 흘러가는 추억을 하나하나 기록해두지 않은 건 그 나름대로의 이별 방법이고 나는 이 쪽이 그저 덜 슬플 거라고 생각할 뿐이라고.

그리고 꽃 물 낙엽 찬 공기 내음이 순번에 맞게 몇 번 찾아오다 보면 그 이별에 대해 세기고 싶게 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자연스레 남아있을 딱 그 정도의 말들을 고운 글씨로 한 자 한 자 채워나가면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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