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았다, 임신.
어느덧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다. 입덧으로 정신없이 괴로워하고 한편으로는 정신없이 일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던 상당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둘째는 안 되겠다.’
연애를 할 때부터 우리의 미래 가족계획에 자녀는 암묵적으로 항상 둘이었다. 둘 다 형제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와서 그런지 그냥 가능한 두 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남편이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왜냐고 묻는 내 질문에 남편은 임신기간 내내 고통받는 내 모습에 이걸 굳이 한 번 더 겪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순간 그래도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서운함을 내비친 나였지만, 그와 동시에 나 또한 속 깊이 어딘가에서는 ‘사실 나도 오빠랑 같은 생각이야.’라는 메아리가 들리는 듯했다. 첫째 아이에게 무엇보다도 큰 선물을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에 자녀는 무조건 둘 이상이어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이미 언젠가부터 스리슬쩍 금이 가고 있었나 보다.
남편의 말을 들은 이후 나의 임신기간에 대해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입덧으로 힘들어하던 와중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남편이 도맡아 하게 되었고 (사실 원래부터 남편이 나보다 집안일을 잘하긴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몸에 약간의 이상증세가 있으면 남편에게 호소했으며, 그럼 남편은 내 눈치를 보거나 나를 신경 쓰기 바빴다. 그래, 인정 인정. 힘들 만도 했다. 산모보다 힘든 사람이 어딨냐고들 하지만 그걸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사람은 티도 못 내고 얼마나 속으로 괴로웠으랴. 그래서인지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춰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하려고 했지만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온 이후에는 집안일을 거드는 것이 되려 걱정을 끼치는 일이 되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의 미안함을 해소하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
휴직하기 전 어느 선배가 나의 임신 소식을 듣고서는 이런 말을 했었다. 자기는 생각해 보면 임신 기간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었다고. 이유를 물어보니, 임신 기간에 남편과 매일 저녁 두 손 꼭 잡고 산책을 다니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내가 입덧의 최고조로 고생하고 있던 때여서 그런지 ‘아 그러시구나’ 하고 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나의 임신기간이 그저 고생스러웠다고만 할 수는 없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 오히려 행복 투성이었을지도.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는 나의 태동이 있을 때마다 무서워서 배도 잘 못 만졌다고 한다. 남자들은 그게 좀 무서울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남편은 임신 기간 동안 나보다 더 뱃속의 아기와 많은 교감을 했다. 내가 나의 모성애를 의심하고 있는 시기에도 매일 밤 배를 쓰다듬으며 뱃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는 모습에 내심 고맙기까지 했다.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엄마 대신 아기에게 사랑을 듬뿍 주고 있는 아빠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임신 기간 중 손과 발이 잘 붓지 않는 체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틈이 나면 남편은 내 손과 발을 주물러주기도 했다. (물론 내가 주물러달라고 강요한 적도 많다.) 옛날부터 가족의 손길이 닿으면 극도의 편안함을 느끼는 나였던지라, 임신기간 중에 나에게 제일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남편의 손발 마사지 타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이 발을 주물러주러 옆에 오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설렜다. 그 순간만큼은 몸이 좀 불편할지언정 ‘임신은 좋은 거구나’라는 달콤한 생각에 빠졌다.
예전에는 임신 중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남편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남편의 사랑을 체크할 수 있었다는데, 요즘엔 사실 그럴 일이 적다. 먹고 싶은 게 떠오를 때는 어플을 켜면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구하기 힘든 모든 종류의 음식, 과일들이 어플에는 즐비하다. 그래서 먹는 것 갖고 서운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남편과 함께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면, 거의 나의 입맛에 맞추어 함께 식사하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내가 먹고 싶은 간식도 함께 맛봤다. 그럴 때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그의 취향에 은근히 감사할 수 있었다.
문득 출산 전 마지막으로 뷔페를 가고 싶어 뷔페를 가자고 한 날이었다. 마침 집 근처에 뷔페가 있어 저녁식사를 하고 산책 겸 걸어 돌아오는 중에, 남편은 별안간 우리가 신혼이 짧았던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실제로 신혼이 짧아서 아쉽지 않냐는 주변의 질문을 들을 때면, 임신 덕분에 신혼이 더 즐거웠다고 대답한 나였다. 정말 그렇다. 물론 조금 예상치 못한 빠른 순간에 찾아온 아기였지만, 이 아이 덕분에 우리는 함께 새로움에 새로움을 더했다. 신혼 때 우리 둘끼리 무언가를 맞추려고 애쓰며 다투는 시간은 사라졌고, 둘이 아닌 셋이 되기 위해 또다시 설레어한 시간이 대신 찾아왔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남편에게 너무 고마운 시간이었다고도 고백했다. 남편은 이미 알고 있다며 우쭐해했다. 먹고 싶었던 다양한 음식들을 한 번에 맛본 날, 나의 임신기간 중 다양하고 복잡스러웠던 감정들이 어딘가 한켠에 고스란히, 그리고 차분히 예쁜 감정들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는 둘이 아니라 셋이 된다. 그래서 둘째는? 물론 아직 모르겠다. 첫째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선물 받은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도 여전히 그냥 하늘의 뜻에 맡겨버릴 가능성이 높다. 나보다 가족이 중요하니 나 하나쯤은 희생해도 된다는 모성애까지는 솔직히 아직 없다. 그러나 나의 육체적인 힘듦과, 초조함, 불안함을 무릅쓰고, 나름의 방식으로 임신기간 내내 나를 지켜주었던 사랑하는 남편과 아직은 내 뱃속에 있는 또 다른 심장의 주인공이 내 옆에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함께 그다음으로 맞을 가족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며칠 뒤면 이 뱃속의 태동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열 달간 항상 누군가와 같이 있다가 다시 혼자가 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그래도 기대된다. 그래도 좋았다 임신. 많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