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뽀삐뽀, 자기 효능감 상실 위험
출산을 약 두어 달 앞두고 휴직을 했다. 막상 휴직을 앞두니 불안감이 앞섰다. 일하고 싶어 미친 사람처럼 당분간은 회사에 출근을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아니 내가 이렇게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인생의 첫 긴 멈춤을 앞두고 어찌할 줄 모르는 방황하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보통의 우리의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앞만 보고 달려간다. 나 또한 그랬다. 학창 시절에 이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성취를 위해, 나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이제 나보다는 아기와의 만남과 아기와의 시간을 위해, 나의 아기라도 어쨌든 타인을 위한 멈춤이 잠시 필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긴 휴직 기간 동안 그럼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뭘 하긴 뭘 하겠나, 육아를 해야지. 왜인지 당분간은 나를 설명할 길이 없을 것만 같은 막연한 공포심이 들었다. 내가 자기 효능감을 찾는 유일한 환경은 직장이었는데, 앞으로는 그 성취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앞으로 잠시동안은 '엄마'가 아니면 도당최 나를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은연중에 아스라이 사라질 것만 같은 나의 정체성. 그렇게 불안함을 안은채 휴직을 했다.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지독한 버릇 탓에 휴직을 하고나서부터는 공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할 일을 찾았다. 매일같이 누워있으면 상실감에 사로잡힐 것만 같아서. 그래봤자 모든 게 아기맞이와 관련된 일이었지만 뭐라도 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간간히 직장 동료들로부터 나를 찾거나 나의 부재가 크다는 연락이 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이 들기도 했다. 아, 큰일 났다. 기껏 휴직이 시작된 지 1~2주도 되지 않았는데 대체 1년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차라리 빨리 출산을 해버리고도 싶었다. 아기와 바삐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육아에서 자기 효능감을 찾든, 아님 육아가 맞지 않아 다시 복직을 하든 뭐라도 지금 보이지 않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나의 휴직기간이 끝나면 누가 아기를 봐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조차 지금 하고 있지 않다. 여느 맞벌이 부모들이 이런 고민을 하겠구나 싶었다. 나름 고귀하고 아름다웠던 임신기간을 거치고 출산을 하면 냉혹한 현실을 맞닥트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에게 선택지는 몇 개 없다. 양쪽의 부모님이 온전히 아기를 봐주실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터를 고용하든, 내가 휴직을 연장하든 둘 중 하나였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쿨하게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내가 복직을 할 수 있을까, 주위에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는 엄마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내가 영원히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지금도 갑갑해하는 나인데 과연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휴직생활을 이어가던 중, 별안간 상실감에 허우적대는 내 모습에 대한 반문이 들었다. (이렇게 보니 임산부는 정말 호르몬의 노예인 게 맞는 것 같다.) 이 조급함과 불안감은 대체 나 아니면 누가 만들어내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밖에 없지 않은가. 먼저 사서 마음고생하는 성격인 탓에 누군가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도, 누군가의 반대도 없었던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나였다. 아직 경험해보지도 않아 판단을 하기도 이른 시점인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지 모를 해방감도 들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시간 또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수도 있겠다는 자유의지에 대한 해방감이었다.
회사에서 나와 잘 지내던 여자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평소에 그 선배들의 과거 휴직 여부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사실 그들도 이미 경험했을 멈춤 기간이 아니었을까. 불안했을 수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지금을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다 거쳐갔을 지금을 난 왜 조급함에 속아 시간을 낭비하며 불안에 떨고 있을까. 나중에 되돌아보면 분명 내가 얼마나 이 멈춤 기간을 멋지게 보냈는지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고 싶을 텐데 말이다.
혹시 모른다. 이랬던 내가 육아가 체질이라 복직은 무슨 아이와 온종일 붙어있고 싶어 할지도. 그 속에서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굉장한 자기 효능감을 가져버릴지도. 시간에 맡겨보자. 자연스러움에 맡겨보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어떤 감정을 경험할지 나조차도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하루하루를 쪼들리게 살 바에야 시간의 흐름을 타고 하루하루에 충실해보자. 그게 지금의 위험에서 빠져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