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 너에게 보내는 편지
후유증
컴퓨터 속 푸르스름한 영상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네모난 화면에 한 남성의 큼직한 손이 내 가슴을 만지고 있다. 흰 마스크와 검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는 내 얼굴은 모니터 밖의 내 기억과 동화되었다. 생각보다 적나라한 비주얼에 나는 대화 내용을 받아 적다 입술을 꽉 깨 물었다. ‘딱딱합니다.’ 내 가슴을 만진 그 남성은 K에게 말했다. 곧이어 K는 성대마비를 낫게 해주겠다면서 나무봉으로 쇄골부근을 세게 눌렀다. 그러자 서너명의 사람들이 지압하는 부분이 화면에 더 잘 보이게 하려고 내 옷 깃을 끌어내렸다. 속수무책으로 가슴부위가 드러났다. 하얗게 튀어나온 쇄골을 보니 내가 처음 포르노물을 보고 구역질했던게 생각났다. '이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내 몸은 부위 별로 가격을 매기는 고깃덩어리처럼 카메라 앞에 조각나 전시되었다. 미련하게도 나는 영상 속에서 아무런 반항도,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치료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끝날 거야.’
주최자에게 받은 영상은 그때 그 시간 속의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어두운 밤 중에 고개를 돌려 편히 누워있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나는 죽겠는데, 엄마는 잠이 오나?’ 분노를 삭이려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되었다. 딴 생각을 하려 애써도 내 상반신이 보였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십여명의 사람들이 나를 찍으려 하는 기분이 들었고, 불을 꺼도 수백개의 눈들이 보였다.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추악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카메라 렌즈는 괴한처럼 불쑥 잠든 꿈 속을 급습하곤 했다.
무섭다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
© geetanjalkhanna, 출처 Unsplash
몇 개월이 지나도 열병처럼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꼭꼭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은 불쑥불쑥 고요한 날들에 불을 질렀다. 이대로 울화속에 갇혀 살다가는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았다. 밤이 되면 나를 그곳에 데려간 엄마가 미웠고, 침대에 같이 누워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새벽 3시에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영상이 어디에 업로드 되어 있지는 않는 지, 카페와 유튜브 등을 미칠 듯이 뒤져보았다. 불안한 마음에 검지 손가락의 손톱을 뜯으면서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아무런 후기나 영상 같은게 올라와 있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그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아낼 수 없으면 영구 삭제 요청을 하라고 말했고, 또 다시 몇 주가 흐른 뒤에야 그 영상은 폐기되었다는 답장을 받았다.
몇 주 동안은 고소라도 해서 피해보상을 받자는 말을 했지만 역으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할까봐 두려웠다. 또한 고소를 하고 검찰이나 경찰들에게 '뭐 이런 것 가지고 고소야.'하며 시간 낭비라며 이 사건이 그들의 커리어에 필요하지 않다는 식의 푸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도 우리 부모님과 똑같이 생각하지 않을까? '치료 도중 일어난 일이니 성추행은 아니다.'거나 '추행은 맞지만 처벌을 어렵다'와 같은 말을 듣고 싶지 않다. 1년이 지나서도 난 여전히 고소를 해서 이 사건을 매듭짓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후에 불법촬영으로 자살했다는 한 연예인의 소식을 듣고 그 계획은 완전히 무산되었다. 기사를 읽고 소름끼쳤던 사실은 피해자 측의 법률 대리인이 '2차 가해'라며 강하게 반발했어도 재판부는 법관 단독으로 불법 촬영물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오** 부장판사의 선고문에는 최**씨와 피해자의 만남 계기, 동거 사실, 성관계 장소 및 횟수 등이 모두 기재돼 있었고 이를 스물가량 넘는 사람들 앞에서 낭독했다고 한다.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누구보다 정의로울 판사가 2차 가해를 버젓이 행하다니. 기사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오는데 피해자분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되지 않으면서 이 사회의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얼굴이 나오지 않는 영상임에도 혹시 모를 경우의 수를 염려하는 데 말이다.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나쁘게 생각해서 내 신상을 털면 어떡하지?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앙심을 품고 영상을 퍼트리면 어떡하지? 영구적으로 삭제가 되었다고 해도 만에 하나 복구가 되면 어떡하지? 이 글이 명예회손으로 고소당해서 그 영상이 증거물로 세상에 공개되면 어떡하지? 판사를 중심으로 퍼져서 사람들끼리 돌려보면 어떡하지? 누군가 내 얼굴을 그 영상에 다가 합성하면 어떡하지?' 등 가해자들은 전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 후로 나는 심하게 남성을 무서워했고, 아빠 또한 마찬가지였다.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작은 가위를 호신용처럼 들고 다녔다. 늦은 밤에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느낌이 나면 재빨리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가위를 만졌다. 내가 방심한 사이 누군가가 내 팔을 잡거나 나를 기절시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성추행도 겪었는데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 나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의심했고,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길을 걷다가 반대쪽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조금이라도 몸이 닿는게 싫어 일부러 거리를 두며 걸었다. 화장실에 갈때는 혹시나 소형 카메라가 숨겨져 있을까봐 예전보다 더 주위를 살폈다. 사람이 꽉 찬 엘리베이터에 타기만 하면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집 안에서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피하지 못했다. 집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면서도 카메라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 같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가운을 입고 있어도 창밖의 커튼을 쳤다.
그렇게 1년이 지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숨 쉬고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이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힘이 없으니 차라리 내가 죽는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감춰두었던 그 날의 기억이 빠져나오면 나는 손톱으로 손목을 긁었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글을 통해서라도 울분을 토해내고 잊어 버리며 살고 싶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기억을 되돌리기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한 줄을 쓰고 모멸감에 분노하다가 끝없는 울화에 가슴을 내리쳤다. 글을 쓰다 영상이 생각나면 다시 지우려고 애를 썼다. (이 글을 쓰는데 1년 7개월이 걸렸다.)
마음이 컨트롤 되지 않을 때, 성추행이 아니라며 나를 '예민하다'고 말한 엄마의 말들이 떠오른다. 내가 애원하며 치료받기 싫다고 말할때 조금만 참으라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나는 지금도 그 시간에 멈춰있는 것처럼 그들의 웃음소리와 말들이 선명하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잘 살아가겠지? 나는 평생 이 기억을 짊어지며 살아갈 것이야. 그럼 내 고통과 아픔은 누가 보상해주지?' 나는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죄책감을 껴안고 살아갔으면 한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만큼만 고통스러워 했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갈 나에게 한 가지 위안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내 나이보다 많다는 점이다. 내가 병으로 죽지 않고 기대 수명만큼 산다면 그들은 나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이유가 생겼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그 날을 기다리며,
버티자.
그 곳에서 웃거나 불법촬영물을 재밌어하며 돌려 본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봤던 그 아이는 죽었어. 당신들이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