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편해

살아갈 이유가 없다

by 오뉴월의 뉸슬

출판사에서 거절 메일을 받은 후, 내 하루하루는 '우울함' 그 자체였다. '반성과 공상이 따르는 가벼운 슬픔'이라는 뜻과 달리 우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호우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대로 그냥 죽었으면' 하며 암연했고, 잠을 청할 때는 편안하게 죽음에 들기를 기대했다. 우울은 거대한 장벽이 나를 가로막는 듯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눈 뜨는 것이 괴로웠고, 어두워지면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생각에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이나 TV 예능조차 흥미가 가지 않았다. 입 맛은 사라지고 밥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음식을 거부했다. 열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고, 저녁 6시에 일어나 서너시간 후 다시 또 자는 패턴을 반복했다.낮과 밤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샤워는 물론 이를 닦거나 세수를 하지 않았으며, 떡진 머리는 나의 인생처럼 엉켜버렸다.


하루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다 커터칼을 꺼내들었다. 칼날을 뺐다 넣었다하며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손목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긋는 시늉을 하다, 순간 여기에 진짜 칼이 와서 갈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가락이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자 나는 손톱으로 상처를 냈고, 손톱자국이 하얗게 팔에 드러났다. 실제로 상처가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는 곧바로 손가락보다 더 긴 칼날을 손목에 대보았다. 커터칼의 차가운 금속이 느껴지자 바로 커터칼을 던졌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처음 느껴본 강렬한 자해 충동에 얼굴이 홧홧해졌다.


'펑펑 울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울분을 토해내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면 코 막히고 뒷처리가 불편해. 귀찮아.' 안 좋은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나는 왜 메일을 보냈고 책을 쓰려고 했을까? 무엇 때문에?' 책을 내고 나서 나는 삶을 포기하거나 이어나가는 결정을 하려고 했었다. 책은 나의 목숨, 연명줄이었기 때문에 나는 오로지 출간만을 목표로 달려왔었다. 그런데 그 목표가 무너졌다. 내가 살아온 이유가 없어지니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죽지 않고 버텨온 이유는 단 하나, 책을 출판하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라져 버리면 내가 힘들게 달려올 필요가 없잖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부족한 걸까.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걸로는 부족했나.' 하고 싶은 게 없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슬펐다.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병이 없었더라면 이 모든 게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처음부터 아무것도 몰랐다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에 희귀병 진단을 받았을 때 죽었더라면 편했을 텐데. 나는 죽지 않고 버틴 내 자신이 싫었다. '그냥 그때 죽어버렸다면 이 많은 고통을 견디지 않아도 됐었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있었을까. 그냥 죽어버릴까?' 천국이든 지옥이든 아무렴 좋았다.


귓가에서 자꾸만 '포기하면 편해.'하는 속삭임이 들렸다. 나는 그 목소리를 피하기 위해 이불 속으로 파고들다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걸 끝내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았다. 일생을 편하게 누워있고 싶었다. 내 삶도 내 꿈도 같이 불태워버리면 했다.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일이 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또 아파할 것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절망을 한번 더 겪고 싶지 않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어떨까?' 나는 졸린 눈으로 창틀에 걸린 일출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