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늘어났다

루푸스, 편도염

by 오뉴월의 뉸슬

내가 '루푸스'라는 병을 진단받았을 때 들었던 한가지 생각은 '그건 또 무슨 병일까'라는 것이었다. 처음 '폐동맥고혈압'이라는 병명을 들었을 때와 같이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의사선생님은 내 생각을 읽은 듯 곧 루푸스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매우 위험한 병은(나한테 한해서)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루푸스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인체를 외부로부터 지키는 면역계의 이상으로 면역계가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질환이다. 선생님은 내 얼굴을 잠시 관찰하더니 얼굴에 여드름이 많고 코 주변이 붉은 게 루푸스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무 살이 되어도 줄어들지 않는 피부염증의 해답을 찾았다. '어쩐지. 이게 다 루푸스 때문이었어?'


서울대병원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폐동맥고혈압이 루푸스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류마티스내과 선생님은 루푸스를 치료하면 폐동맥 고혈압 증세가 나아질 수도 있다고 희망을 주셨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루푸스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었는 데, 하나는 매달 주사를 맞는 방법과 리툭시맙 주사(면역력을 0으로 떨어뜨리는 주사)를 15일 간격으로 두번 맞고 경과를 보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혈액 검사 결과를 보고 치료 여부를 결정하자고 하셨다.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게 나온 걸 확인했다. 선생님은 1박 2일 입원해서 리툭시맙 주사를 맞는게 좋겠다고 했다. 나도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아 리툭시맙 주사를 맞기로 결정했다.


리툭시맙 주사를 두 달에 걸쳐 맞은 후 염증 수치는 정상 범위 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안심도 잠시, 폐동맥고혈압 담당 의사 선생님이 검사 상에 편도염 증세가 의심된다며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했다. 루푸스가 의심된다고 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조바심이 들었다.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은 두려움을 앞서게 만들었다. 진료실에서 나오고 병원 진료 예약 날짜를 잡는 동안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편도염이야?'


이비인후과 예약 날짜가 다가왔고, 나는 뒤숭숭한 마음으로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몇몇 사람들의 목에 이상한 튜브가 연결돼 있는 걸 봤다. '이거 잘못되면 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던 5년 전이 떠올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편도선암이면 어떡해. 수술해야 되나?' 한 없이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을 때 내 이름이 불렸다.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내 목구멍 안을 천천히 살펴보더니 별거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가지 검사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괜찮은 것 같다며 안심시켜준 말보다 혹시라는 단어가 더 기억에 남아 입술을 잘근 씹었다.


검사 결과 이 정도는 치료를 하지 않아도 자연 치유가 가능한 정도라고 했다. 누구나 평생 몇번씩 걸리는 게 편도선염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줬다. 천만다행인 소식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즈음, 싸한 오한이 느껴졌다. '폐동맥고혈압은 그저 시작일지도 모른다. 혹시 몰라, 병이 더 생길 수도 있겠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병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훗날 더 악랄하고 약도 없는 병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본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환자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하며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치료도 불가능한 희귀병이 생기면 어떡하지?'


폐동맥 고혈압이 완치되지 않는 이상 내 몸은 계속 이상신호를 보낼 것이고, 새로운 질환이 생길 수 있다. 감기처럼 간단히 해결되는 증상도 있겠지만, 백신도 듣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점점 커지는 병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고질적인 문제인 병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언제 또 다른 병이 생길 지 알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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