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어.”
폐 이식 수술을 대비하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엄마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의학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방안이 없나 엄마는 한참을 찾아보다 우연히 KSNS 영상을 유튜브에서 접하게 되었다. 간단한 지압만으로도 비염이 나았다는 독일인의 선례에 엄마는 단숨에 스본스도에 매료되었다. 엄마는 유튜브 영상을 구독하고 시청하면서 내가 나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소리에서 나오는 파동으로 치료를 한다, 어혈을 사혈해서 치료를 한다, 등등 대체요법들을 많이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도 나는 치료될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 동아줄을 붙잡은 것 같은 엄마의 표정에 하는 수 없이 승낙했다.
며칠 뒤, 엄마의 회사 직원 지인 분을 통해 우리 가족은 KSNS 부산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했다. (KSNS a.k.a 스본스도는 대체 의학으로 작은 도구를 이용해 치료하는 방식이다.) 도착한 건물 안은 차가운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곳곳에는 불상과 불교를 뜻하는 그림들이 걸어져 있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 따로 대기실까지 마련되어 있어 그야말로 극빈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대기실 안에는 푹신한 소파와 에어컨,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나는 뜻하지 않은 대우에 살며시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잠시 후에 3,40대로 보이는 남성분이 들어오시고, 내 상태를 진찰했다. 양말을 벗으라는 이야기에 나는 부리나케 양말을 벗었다. 양말 두 짝을 벗자 둥글게 양말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분은 양말과 머리끈이 혈관을 눌러 피가 잘 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K선생과 함께 제자들이 들어왔다. 영상에서 본 것과 달리 키가 컸다. K선생은 나를 소파테이블에 누우라고 한 뒤, 나의 맨발을 살펴보았다. 그는 내 꾀죄죄한 두 발을 이리저리 보더니 “발목에 양말자국이 있어서 안 돼, 못 봐줘.” 하며 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분명 치료를 받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K선생이 가고 한 남성분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별생각 없이 네뷸라이저를 흡입할 시간이 되자 아빠에게서 네뷸라이저를 받았다. ‘뭐, 엄마가 양말신지 말라고 했는데 신은 건 내 잘못이지.’ 10분 동안 네뷸라이저를 흡입하고 우리 가족은 지하 강의실로 내려갔다. 강의실 안은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스본 스도를 배우기 위해 왔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강의실 안 공기가 답답했던 나는 바로 옆 작은 음향조정실로 들어가서 숨을 골랐다. ‘아, 내가 왜 숨이 안 쉬어지면서 까지 치료를 받기 위해 있어야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올라가자고 말했지만 엄마는 여기 같이 안 있으면 어디에 있을 거냐면서 화를 냈다.
곧 이어 강의는 시작되고 한 조씩 옆 사람들에게 지압을 해주는 방식으로 강연이 흘러갔다. 사람들이 강도 높은 지압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흥미가 생겼다. 즐겁게 복숭아뼈 아래 부분을 지압하던 도중 몇몇 사람들이 나를 강의실 앞으로 불렀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일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스크린 도어 밑으로 나갔다. 그 사람들은 뭐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더니 테이블위에 누우라고 했다. 나는 졸지에 100명 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 앞에 누워야 됐다. '이게 뭐지?' 하며 상황 파악을 하고 있을 때쯤, 카메라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내 몸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마이크를 들이밀고 카메라부터 내미는 기자단 같았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몸이 석고상처럼 굳었다.
BTS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 7 'Interlude : Shadow MV
K: “얼마나 되었죠?”
엄마: “4년 됐습니다.”
K: “병의 명칭은?”
엄마: “폐동맥 고혈압입니다.”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으나 대답할 정신은 있었다. 왜 내가 아닌 엄마한테 질문했을까?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입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마 내가 '학생'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그걸 또 대답하고 있는 엄마가 더 어이없었다. 내가 아닌 엄마 입에서 폐동맥 고혈압이 나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곽시우’가 아닌 ‘난치성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K: “어때? 힘이 세졌지?”
엄마: “한쪽 성대가 마비가 됐어요. 합병증으로.”
K: “아, 그래서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는구나. 나는 또 잘 참는 줄 알았지.”
K: “힘이 세지는 거 느껴지나? 아, 말 못 하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무시하는 말투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들은 마이크를 들이밀며 빨리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내가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자 그는 나를 농아자 취급하며 장애인이라고 비하했다. 나는 엄마가 그의 입을 틀어막아주길 원했지만 보호자로 옆에 있었던 엄마는 오히려 나에게 성대마비가 있어서 말을 크게 못 한다고 말했다. 2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내 약점들이 속속히 밝혀지기 시작했다. K선생은 엄마의 말을 듣더니 쇄골 부근을 지압했다. 서너명의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내 상의를 좀더 끌어내렸다. '정말 * 같다.'
엄마: “성대마비때문에 고음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K: “똑바로 이야기해봐요.”
나: “안 아파요.”
K: “더, 더 크게.”
나: “별로 안 아파요.”
K: “지금 만져보면 근육들이 다 경직되어있어. 사용을 안 해 가지고. 아파요? 큰소리로.”
나: “아니요.”
K: “큰소리로 아파요? 안 아파요? 소리를 내야지.”
나: “괜찮은 것 같아요.”
K: “노래 부를 줄 알아?”
나: “아니요.”
K: “노래도 못해? 어?”
K선생이 노래도 못하냐며 비아냥거리며 얘기하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서 뚱뚱하거나 못생긴 걸로 웃음 포인트를 잡아서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것 같다.' 나는 잠시 인간의 선악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내가 대답할 때까지 계속 물어볼 기세로 말하던 그는 나무조각으로 내 가슴 부근을 거칠게 지압했고, "이래도 안 말해?"라며 폭력적이게 행동했다. 나는 억지로 목을 쥐어짜서 말을 해야 했고, 그가 흉통을 압박하니까 숨이 안 쉬어졌다. 너무 힘들어지자 욕이 목 구멍에서 계속 맴돌았다.
내가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을 참으면서 짜증 나는 소리로 크게 말하니까 사람들은 또 진짜 좋아졌다며 호응을 해댔다.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그냥 내가 목소리를 크게 낸 것뿐인데 마치 '다 나았다!'는 양 말하는 게 웃겼다. (아주 그냥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공간에 1초라도 더 있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던 나는 엄마에게 그만하고 싶다며 엄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엄마는 귓속말로 조금 더 있어보자며 나의 간절했던 간청을 무시했다. 그 순간 무언가 뚝 끊기는 소리가 나며 마이크 소리가 크게 증폭되는 소음이 들렸다. 삐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나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치료가 끝이 났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과 입을 가려주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졌다. 그들의 얼굴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역겨웠다. 나는 충동적으로 강의실 밖으로 뛰쳐나와 50계단이 넘어 보이는 계단을 단숨에 올라갔다.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게 끔찍했다. 계단을 올라가 대기실로 들어간 나는 한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혀를 깨물고 콱 죽어 버리고 싶다.' 그들이 나한테 대하던 태도, 말, 웃음 그 모든 게 치욕스러웠다.‘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지? 내가 병이 있어서? 아 맞다, 나 진짜로 병X이지.’ 아빠가 나를 향해 욕하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후회가 됐다.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나를 안주거리처럼 씹어댈 대상으로 생각하냐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런데 하면? 한다고 달라지는 게 과연 있었을까? 그 때의 나는 고작 18살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내 부탁을 무시했던 것처럼 왜 그러냐고 오히려 묻지 않았을까? 왜 저러지 하며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았을까? 족히 200명 이상 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과연 당당하게 말을 꺼낼 수 있었을까? 아마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거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호텔 방 안에서 사람들의 말과 시선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 날은 희귀병 선고로도 견고했던 내 존엄성이 무너져 내린 날이었다.
당신들은 치료라는 명분으로 한 사람을 매도했다. 나는 치료를 목적으로 왔지, 니들의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전한다. 너희들도 가해자야. 아 시발 웃지 마, 내 병이 그렇게 웃기냐? 당신들은 열여덟 살 먹은 어린애의 병과 삶을 희롱하고 조롱했어. 그래, 나는 너희들을 평생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살아갈 폐고혈압 환자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사과를 원한다.
-피해자들께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보냅니다. #MeToo